[클릭이사람] (260) 세상에서 가장 별난 직업을 가진 ‘말띠인생’ 현병돈
세상에서 가장 별난 직업을 가진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현병돈(38)씨가 아닐까 싶다. 말과 함께 살아가는 말띠 인생. 몇 년을 하루같이 말과 함께 살아온 탓인지 말처럼 듬직해 보이는 외모가 인상적이다.
그가 사는 곳 역시 말의 본고장 제주도로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에 위치한 마사회 경주마 육성목장 생산지원팀에서 경주마들의 2세를 생산하는 교배를 담당하고 있다.
말 많은 제주에서 백말띠로 태어나 말(馬) 많은 마사회에 근무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말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라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오로지 말(馬)과 함께 있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하루하루를 활력 넘치게 살아가는 그를 유채꽃이 만발한 4월 제주에 찾아가 직접 만나보았다.
그가 하는 일은 경주마들의 혈통을 이어가는 일. 마필 한 두에 몇 억을 웃도는 종모마(씨수말)들의 교배를 담당하고 있다.
지금 제주는 경주마들이 신방을 차리는 교배시즌. 한마디로 경주마들이 2세를 생산하기 위해 ‘올인’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춘정의 계절이다. 그러니 교배를 담당하는 그의 손놀림도 당연히 바빠질 수밖에…
흔히 경마를 혈통경마라고 하는데 경마에 있어서 혈통이 그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계 경마 선진국을 보더라도 경마장에서 이름을 날린 역대 명마들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경마의 미래가 그의 손에 달려있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 토박이. 그는 96년 5월8일 제주 육성목장 기능직으로 이곳에 들어와 지금까지 있다. 대구 보건전문대 방사선과를 졸업한 그가 전공과는 엉뚱하게 마사회에 들어온 이래 8년째 줄곧 씨수말 교배업무만 담당하고 있다. 특이한 직업을 갖고 있는 것 못지않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이력 또한 특이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의장대에서 군대생활을 한 그는 제대 후 당시 성업을 이루던 카지노에서 근무를 했다. 최근에 막을 내린 인기드라마 ‘올인’을 즐겨봤던 이유도 바로 그런 이력 때문이다.
그러다가 잘나가던 선배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다. 그런데 부도가 나서 어느 날 우연치 않게 마사회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5년간 몸담았던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1년 6개월 동안을 거의 백수로 지내다가 마사회 기능직으로 입사를 했다. 막상 마사회에 들어오고 나니까 그동안 거칠게 살아왔던 사회생활과는 정반대였다.
그가 마사회에 입사했을 때 모 부장이 “자네 성격으로 3개월 이상 근무하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부장이 퇴직할 때는 꿋꿋하게 잘 견디는 그를 보고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칭찬을 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는 당시 그를 걱정해 주고 배려를 해주던 그 부장을 잊지 못한다.
마사회에 들어와서 뜻하지 않은 사고도 많이 쳤다. 한때 욱하는 성질 때문에 직장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될 일을 많이 저질렀다면서 그는 이 지면을 빌어서 사죄드린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동안 직원들이 너그럽게 감싸주고 이해해 주는 등 조직의 따뜻한 면도 보았다고 고백한다.
96년 10월 13일 결혼. 아내 역시 제주출신으로 부부가 모두 제주 토박이. 아내는 거칠게 살아온 그에게 “직장에서 진급도 원치 않는다. 사고만 치지 말아 달라”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출근 때마다 당부한다. 아내의 유일한 잔소리가 그것이란다. 얼마나 거칠게 살아왔으면 아내가 그런 말을 할까.
아내의 잔소리가 먹혀든 탓인지 언젠가부터 사고를 치는 버릇이 없어졌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 얼굴이 자주 그려지고 그러다보니 성격이 조금 차분해 졌단다.
나이트에서 일할 때 조카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났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 나이트가 끝날 때쯤 술을 먹다가 해수욕장에 가다가 큰 사고를 냈다. 아내 될 사람을 태우고 가다가 그가 몰던 차가 다리 난간을 받아 여자가 다친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 데려다 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가 몰던 차는 완전히 부서져서 폐차가 되고, 그는 크게 다쳤는데, 조금 다친 여자친구를 병원에 데려가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것이 그녀를 감동시켜 흔들리는 마음을 꽉 잡은 것이다. 직장이 없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반대를 하던 장모의 마음까지 마사회에 들어옴으로써 자기편으로 돌려놓았다.
전화위복으로 직장 얻고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고 돈까지 얻었으니 다친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행운이 되었다. 더구나 말띠가 마사회에 들어와 말과 함께 살고 있으니 이 또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8년째 근무하고 있는 육성목장 교배소는 한국 경주마 육성의 산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서 교배된 말을 합하면 어림잡아 3천5백두나 된다. 모두 경주마로 그가 교배시키는 씨수말은 한때 국내외 경마사에서 이름을 떨치던 명마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10억대 씨수말도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지금은 원당목장에 가있는 라시그니가 바로 그 말이다. 8년째 경주마들의 교배를 담당해온 그로부터 말의 사랑학 강의를 들어본다.
말은 사랑을 나누는 교배 시간이 짧게는 5초, 아무리 길어도 20초를 넘지 못한다. 500kg을 육박하는 큰 덩치의 말이 한순간에 교배가 끝나는 것을 보면 싱겁기 짝이 없다.
교배할 때 말들은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 짧은 5~20초를 위해 교배를 준비하는 시간은 대략 15분. 먼저 체구가 작은 시정마(제주산)를 이용하여 씨암말의 시정상태를 확인하고 씨암말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 씨수말의 안전을 확인한 후 교배를 실시한다.
씨수말마다 사랑을 나누는 행동도 가지가지. 씨암말을 제압하기 위해서 씨수말이 괴성을 지르거나 앞발을 들고 기립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씨암말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면 입을 벌름거리고 혀를 내밀어 뒤집어 보이거나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표정을 한다.
흥분이 절정기에 이른 바로 그 순간에 교배를 시킨다. 씨수말의 안전을 위해서 그를 포함하여 교배 지원만 전문으로 해온 6명의 직원들이 교배를 도와준다.
현재 제주 육성목장에 20여두의 씨수말이 있는데 경주마 생산자협회 소속의 76농가가 보유한 1천100여두의 씨암말의 교배를 지원하고 있다.
3월15일부터 7월 7일까지 교배시즌동안 씨수말이 오전 오후로 다섯 시간의 시간차를 두고 하루에 두 번 교배를 한다. 보통 교배시즌에 씨수말 한두가 50두의 씨암말을 상대한다.
교배소에서 사랑을 나누는 말들의 공통점은 교배를 하고 난 직후 힘이 빠져서 기진맥진해도 씨수말이 암말 앞에서 마지막까지 쓰러지거나 맥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기의 정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안간힘을 쓴다. 상대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굴종 당한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교배소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말은 단연 시정마. 씨암말에게 다가가 애무만 하다가 사랑을 나누는 골인 지점을 앞두고 강제로 끌려 나가는 일종의 바람잡이 숫말이다.
날이면 날마다 받는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다는 시정마가 안쓰럽다. 끌려 나가는 것도 억울한데 어떨 때는 신경이 곤두선 씨암말의 뒷발에 인정사정없이 걷어차인다.
취재를 하는 짧은 순간에도 시정마가 애무를 하다가 씨암말이 휘두른 뒷발차기에 앞가슴을 사정없이 얻어맞고 맥없이 끌려 나간다. 그런 시정마를 위로해 주는 차원에서 그는 교배가 끝난 후 시정마를 잘 보살피고 먹이도 더 챙겨준다. 더러는 교배가 끝난 후 조랑말을 데려다가 교배시켜 시정마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한다.
씨수말은 교배를 싫어하는 법이 없지만 씨암말은 거부를 많이 한다. 그럴 땐 교배소 직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배를 성공시키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래도 거부하면 진정제를 이용해서 강제로 신방을 차린다.
암말이 씨수말을 사정없이 걷어찰 때도 있는가 하면 씨수말이 교배하고 나서 마음에 안 들면 반대로 암말의 엉덩이를 뒷발로 걷어차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사랑싸움으로 이거야 말로 몸주고 뺨맞는 격이다. 말뿐만 아니라 교배소 직원들도 신경이 날카로워진 말들에게 걷어차여 부상을 입는 경우도 간간이 있다.
그는 말을 달래는 법과 흥분시키는 노하우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고조로 흥분시키는 비법을 알고 있다.
경마선진국 일본에서는 씨수말 한번 교배료가 최고 억대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경마와 축산 발전을 위해서 마사회에서 무료로 지원을 한다.
경주는 혈통경마. 그런 까닭에 유명세가 없는 씨수말은 인기가 없다. 가장 인기 있는 씨수말은 현재 ‘사이코배블’과 ‘디디미’. 하지만 추첨을 통해서 교배마를 선정하기 때문에 생산농가들의 희비가 순간에 엇갈린다.
말도 따지고 보면 성격이 급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신을 닮은 것 같아서 말이 좋다. 싫으면 싫다고 하는 것도 그렇다. 말의 표정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는 감으로 알아듣는다. 모든 교배소 직원들이 말의 큰 눈빛을 보면 무엇을 말하는지 척 알아듣는다. 말이 영리해서 사람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말과 말을 한다고나 할까.
그가 가장 바쁜 때는 바로 요즘. 그 뿐만 아니라 생산지원팀이 총 출동하는 교배시즌으로 완벽한 교배를 위해서 신경을 많이 쓴다.
앞으로도 그는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어 한다. 회사도 좋지만 말과 함께 살다보니 정이 흠뻑 들은 말에 더욱 애착이 간단다.
경주마 생산농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한국경마와 경주마 생산농가의 명운이 그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주마의 2세를 생산하는 마사회 소속 씨수말의 80%가 있는 곳. 그들이 사랑의 신방을 차리는 한국 경주마 육성의 산실에 바로 현병돈, 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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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3년 04월13일 18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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