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107) IMF 미대생 강선영의 거듭나기
"아르바이트 하랴, 공부하랴, 너무 바빠요". 동양화과 공동 졸업작품전 전시장에서 만난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졸업반 강선영(23)의 첫마디다. 이번 전시회에는 '기도'라는 제목이 붙은 선영양의 120호짜리 대작도 들어 있다. 일정한 크기로 자른 여러 종류의 한지 5천여개를 접어서 붙인 작품이다.

선영양은 2년전까지만 해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미대생이었다. 속된 말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대주는 돈으로 비싼 등록금 내고 용돈 쓰면서 지내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첫 작품전이 열리던 대학 3학년 메이데이때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이 선영의 전시회장에 오지 못했다. 아빠의 지방선거 출마와 겹쳤기 때문이다. 섭섭했다. 하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런데 진짜 불행은 다른데 있었다. 아빠가 낙선 충격으로 쓰러진 것이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힘들다가 생활이 피면 기쁨은 두배로 커진다. 그러나 부족함 없이 살다가 힘들어지면 고통 역시 두배로 커진다. 선영이 그랬다. 대학 3학년이 될때까지 부모님 덕분에 아무 걱정없이 호의호식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당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그날 이후로는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낙선 충격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췌장암에 걸렸다. 선영은 작품전이고 뭐고 더이상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를 살리는 길이 발등의 불이었다. 아빠의 병으로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아빠는 청렴결백한 분이었다. 못사는 사람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집에 가면 항상 장애인등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와 있곤 했다. 지방 도의원도 지냈지만 돈을 쓰기만 했다.
어렵고 억울한 사람들을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아빠는 낙선 충격으로 쓰러진후 자식을 모아놓고 후회를 했다. "미안하다. 다시는 정치 안하겠다"라고 말하며…

아빠의 병원비로 집까지 차압당하고 있는 재산도 다 날렸다. 어머니는 아빠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 했지만 결국 6개월만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선영은 전시회 핑계로 아빠의 임종도 보지 못했다. 아빠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등록금도 내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하루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4학년 등록금을 내지 못하고 휴학을 했다.
1년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 강사도 했다. 3학년까지라도 마쳐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1, 2학년때는 별생각없이 학교 다니다가 그제서야 후회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림을 더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 안좋아 밝았던 성격도 우울해 지고 말수도 크게 줄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등록금이 너무 올라 한학기분 밖에 마련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스스로 벌어서 등록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몸도 마음도 강해졌다. 그전에는 그림도 대충대충 했는데 지금은 그림이 너무 재미 있고 즐겁다. 성적도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다. 어려울때 만난 남자친구가 큰 힘이 되어 준다. 선영은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른다. 오빠의 부모님이 너무 잘해 준다.
집안 형편이 어렵고 보잘것 없다고 냉대할줄 알았는데 오히려 오빠의 어머니는 선영을 친딸같이 아끼고 보살펴 준다. 4학년에 복학하면서 용돈까지 받고 있다. 덕분에 더욱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다. 휴학기간에 미팅에서 오빠를 만났다. 친구들이 우울해 있는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미팅 장소로 끌고 나갔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자신을 생각해주는 친구의 성의를 차마 거절할수 없어서 따라나갔다가 오빠를 만났다. 오빠를 만난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오빠는 그녀를 위로하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뒤로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설수 있었다. 우울했던 생각도 예전처럼 밝아졌다. 선영에게 잘해 주는 오빠의 어머니. 선영은 그냥 엄마라고 부른다. 오빠의 부친 또한 선영을 친딸못지 않게 보살펴주고 용돈까지 챙겨주는 고마운 분이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주는 엄마. 그렇게 좋으냐고 묻자 "그럼요" 대답한다. 시장을 보러 갈때도 친구같은 엄마와 손잡고 다닌단다. 고향에 계시는 선영의 어머니도 좋은 신랑감에 좋은 시부모님감 만나서 한시름 덜었다고 좋아하신다.
선영의 고향은 울산.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림을 잘그려서 초중고시절 대회에 나갈때마다 상을 휩쓸었다. 고등학교때 성적이 떨어질 정도로 그림에 푹 빠졌다.
그녀는 이제 울지 않는다. 자신의 기둥이 되어주는 든든한 오빠가 있고 두분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도 예전보다 더좋아졌다. 그림도 열심히 그린다. 오빠가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해 준다. 보통은 구상을 즐긴다. 야경을 많이 그렸다. 서울 야경을 그리기 위해 밤에 한강변을 숱하게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녀는 앞으로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지금까지 익힌 실력으로 공모전에도 많이 응모하고 싶다. 졸업하면 미국에 가서 그림공부를 더할 생각이다. 물론 결혼도 하고…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초상화도 배워 놓았다.
부족함 없이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졌던 선영은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 밝은 세상으로 뛰어 나왔다. 불행끝 행복시작. 더욱 강해진 선영으로 다시 태어나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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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9 19: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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