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279) 성악을 가르치는 펠덴클라이스 선생님으로 변신한 소프라노 이혜경
2006/06/16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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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279) 성악을 가르치는 펠덴클라이스 선생님으로 변신한 소프라노 이혜경

70년대 가장 잘나가던 성악가가 지금은 성악을 가르치는 ‘펠덴클라이스’ 선생님으로 변신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19살 때부터 오페라 대곡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아온 소프라노 이혜경(49)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     © 피플코리아
78년 세종문화회관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에도 그는 무대에 섰다. 23살 때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페스티벌 무대에서 오페라 ‘심청전’에 주역으로 출연하였던 화제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음악팬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축농증과 기관지염이 악화되어 82년 급성 천식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무대를 등졌기 때문이다.

예고 3학년 1학기 때 곧바로 독일 음대에 들어간 그는 70년대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혜성같이 나타난 동양의 음악천재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가 급성 천식에 걸려 혹독한 고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오페라가수 보다는 좋은 선생님이 되라고 그렇게 모진 고생을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악가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그의 운명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펠덴클라이스였다. 펠덴클라이스는 동작을 통한 의식개발.

그가 독일 음대에 다닐 때 이미 펠덴클라이스를 공부한 오페라 담당교수가 그를 펠덴클라이스 창시자인 펠덴클라이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소개 받기를 거부했다.

그 누가 인생을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성악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급성천식으로 쓰러져 무대를 등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으려고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을 돌면서 세계의 유명교수들을 다 찾아가 보았지만 노래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꼭 노래 잘한다고 좋은 교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거기서 깨달았다. 바로 그때 그 교수가 생각났다.

83년 데트몰트 음대 오페라 담당 페터 야코비 교수의 소개로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 ‘모세 펠덴클라이스’(1904-84)를 만난 것은 절망에 빠진 그를 구원해준 한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펠덴클라이스를 통해 그는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다.  

펠덴클라이스는 프랑스에서 노벨상 수상자인 졸리엇 퀴리의 조수로 활동했던 핵물리학자로 부상을 당해 무릎 절단의 위기에 직면했으나 인공지능, 생물학 이론을 응용해 스스로 개발한 재활법으로 정상인처럼 다시 걷게 되었다. 그 후 49년부터 자세교정으로 병치료를 돕는 ‘펠덴클라이스 메소드’를 체계화해 전 세계에 보급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     ©피플코리아
펠덴클라이스는 우리 몸의 신경시스템과 움직임에 관한 상호작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동작, 사고, 생각, 감정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인식은 아주 획기적인 것이었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펠덴클라이스 방법이 연구 발전되어 왔다.

모든 해부학, 물리학에 관한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펠덴클라이스에게도 ‘자세’는 특별히 중요한 단어였다. 우리의 전체적인 몸 상태의 그림은 바로 육체적, 정신적 자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우리의 두뇌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동작이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가 높은 매개물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펠덴클라이스는 자신이 고안한 방법을 두뇌 정글 속의 모험이라고 설명하였다. 아주 편안한 동작들의 연습은 우리의 몸 균형이 올바른 자세를 취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고 우리의 의식을 넓혀주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그의 방법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움직였던 동작 외에도 아직 한번도 상상이나 경험해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의 동작들, 혹은 잊혀진 경험을 우리에게 느끼게 하였고, 새로운 방법을 습득하게 해주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두뇌의 무한한 가능성의 아주 일부분만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배웠던 반복적인 동작들과 삶의 형태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한번 틀에 박힌 동작들은 우리가 사는 동안 계속 반복되고, 그 이상의 발전을 방해하고 어렵게 한다. 우리가 배우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방해는 몸과 머리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무지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우리가 잘 아는 질병들은 정신적인 압박감, 골격 시스템의 틀린 자세, 만성적인 근육통, 동작의 제한, 조로증 등이다.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예방하고 상황에 맞게 정상적인 동작들을 형성시키게 도와주는 것이 그의 방법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가능한 것을 더욱 유연하고 우아하게 발전시킨다.

▲     © 피플코리아
그의 방법은 새로운 정보와 자극과 설득을 통해 영감을 준다. 그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첫째로는 단체수업으로 ‘동작을 통한 의식공부’와 두 번째로는 한 사람씩 무릎높이의 침대에 눕혀놓고 하는 치료방법이 있다.

환자들은 치료를 받으며 몸의 서로 연관된 동작을 섬세하게 느끼며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펠덴클라이스는 자신의 환자들을 ‘학생’이라고 불렀다.

펠덴클라이스의 간단하면서도 뛰어난 그 방법을 전수받은 제자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쟁쟁한 사람들이 많다. 북미, 이스라엘, 유럽 등지에서 뛰어난 두뇌들을 가진 제자들로는 지휘자 이고르 마르케비치, 프로 골퍼 릭 액튼,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 다비드 벤 구리온,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 등이 있다.

펠덴클라이스로 큰 효험을 본 이씨는 94년부터 쾰른에서 펠덴클라이스 제자에게 이를 집중적으로 배워 4년만에 메소드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함께 배우던 65명중 3분의 2가 의사들이었고 피아노, 클라리넷, 플루트 교수와 무용수, 조각가, 테니스 선수, 골프 교사, 물리치료사도 있었다. 

펠덴클라이스를 통해 성악과 테크닉을 접목해서 성악공부를 개발한 그는 지금 성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독일에서는 펠덴클라이스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탓에 유일하게 그 혼자 보급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73년 독일로 건너가 94년에 처음 국내에 들어온 그는 그때부터 펠덴클라이스를 한국에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사방팔방 다니면서 특강도 하고 세미나도 했다. 그러다가 지쳐서 지금은 인연 닿는 사람만 가르치고 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많이 망가진 학생들에게 펠덴클라이스를 통해서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주고 있다. 

성악하다 목소리가 망가진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정신적 고통을 겪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도 펠덴클라이스는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성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기초를 잡아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크게 유명해지거나 대가가 되는 것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서 그는 먼저 인간이 되라고 강조한다.

기후가 습한 독일에서 항상 노래하다 보니까 감기가 오고 그것이 축농증으로 되었다가 다시 기관지염으로 가더니 급기야는 급성천식으로 악화되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산소마스크를 쓰고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그는 ‘아,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병원에 실려 가서 몇 달 있다가 독일 북해 바닷가에서 3개월 간 휴양을 하는 등 4~5년을 혹독하게 고생했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 침술을 배워온 독일인 의사한테 몇 달 간 침을 맞으면서 기적같이 나았다. 천식으로 고생할 때 한국을 드나들며 한의사, 스님, 단전호흡 선생님 등을 찾아가 고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다가 한때는 단전호흡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성악을 했고 동생도 성악 전공. 중학교 때 피아노를 하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성악을 했지만 그가 별 어려움 없이 곧바로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집안의 음악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천식을 앓기 전에는 솔직히 입만 벌리면 노래가 나오는 줄 알았다. 곡만 주면 노래가 그대로 나왔으니까 연습이 필요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성악도 연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     © 피플코리아
‘호흡이 중요하고 자세가 중요해서 쟤들이 저렇게 연습을 많이 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공부도 방법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무조건 노력만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공부시키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방법을 모르고 연습하면 자기 발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 자신을 망칠수도 있다는 것이다.

“습관적인 동작을 연속해서 하는 것이 바로 연습 아닙니까? 그런데 그 습관이 나쁘면 얼마나 안 좋겠어요? 성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호흡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어떤 것이 좋은 호흡이냐고 물으면 성악 하는 학생들이 잘 몰라요. 자신의 몸을 알아야지, 그걸 모르면 어떻게 올바른 연습을 할 수 있겠습니까?”

펠덴클라이스를 통해서 자신의 몸을 알게 하고 몸을 다룰 줄 아는 의식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4년간 성악 강의를 맡기도 했던 그는 당시 그가 그토록 보급시키고  싶어 했던 펠덴클라이스는 정작 성악과가 아니라 무용과에서 가르쳤다. 그것도 고작 1년만.  

지금은 원광대 대학원 예술치료학과에서 펠덴클라이스를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너무 좋단다. 그러나 학교 시스템이 받쳐 주지 못하다 보니 한국에서 펠데클라이스를 보급 시킨다는 게 너무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펠덴클라이스를 통한 동작 치료는 자기가 배워서 스스로 병도 고치고 예방도 하고 의식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분야에서 더 이상 뛰어넘지 못할 경계선이 있다면 바로 그 한계선을 이걸 통해 훌쩍 뛰어넘을 수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 몸이 한 군데라도 아프면 의식이 그쪽으로 항상 가 있다. 아픈 곳과 연결된 부분은 병이 되는데, 펠덴클라이스를 통해 그런 병든 근육을 잡아주고 골격 시스템을 잡아준다.

“막히는 시작의 원인이 어디냐,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아픈 부분은 그대로 놔둬요. 그 부분은 쉬게 해주고 건강한 쪽에 들어가 그 쪽에서 아픈 부분을 배우게 해요. 그만큼 편안하게 치료하지요. 독일에서는 중증장애인도 펠덴클라이스로 치료합니다.”

걷는 모습만 봐도 그 사람의 자세가 무엇이 잘못 됐는지 금방 알 수 있다는 그는 호흡과 동작이 곧 그 사람을 나타내는 인격이라고 말한다.

“생긴대로 논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 말이 맞다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정신과 그릇만큼 움직이게 되거든요. 글을 쓸 때도 필요 이상으로 힘을 준다면 그 이유를 찾아야 돼요. 이는 치료보다는 자기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바로 펠덴클라이스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는 허리 어깨 손목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랐다면서 펠덴클라이스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무궁무진하게 활용 할 수 있지만 마음껏 보급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9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과 무용원에 4년동안 출강했던 그는 99년 봄 서울 압구정동 세실아카데미에 국내 처음으로 펠덴클라이스 클리닉을 개설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수강생 중에는 성악가 김영미, 송관선, 김청자씨, 피아니스트 손희령, 배예자 등 음악가 외에도 치과의사, 학생 등이 있었다.

“펠덴클라이스는 불면증 환자나 임산부에게도 너무 좋아요. 직접 해보면 알아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내가 아파봐야 알지요.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고통 받는 게 때로는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도 해요.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멀리 제주에서까지 그에게 성악을 배우러 온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인연이 닿고, 찾는 사람에게만 가는 거구나’ 생각한다.

“지하수를 팔 때 흐르는 맥만 따라가면 어디를 파도 물이 나오지요. 성악가가 성악으로 맥을 파고 있다면, 골프는 골프로 진리의 맥을 파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진리를 파고 들어가는 사람끼리는 서로 통하듯이 맥을 아는 사람끼리는 역시 맥을 알아요. 안 그래요?”

처음에는 펠덴클라이스를 보급하려고 전국을 돌아다녀봤지만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실정이 못 받쳐주다 보니까 이제는 지쳤다고 한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음대나 예고나 과목으로 들어가서 기초적으로 의식개발을 해주는 것. 이걸 학교에서 하면 너무 좋겠다는 열정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성악가로 잘 나가다 펠덴클라이스를 통해서 성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라고 한순간에 그렇게 성악을 못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선생이 되라고 그랬나 봐요.”  

그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연습해 나가는 하나하나의 과정 그 자체라고 힘주어 말한다. 연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방법이 좋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방법으로 연습하고 노력해 나가는 하나하나의 과정자체가 쌓이다 보면 그게 바로 목표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선생 만나는 것도 자기 복이라는 것이다. 천식으로 고생할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 수십 명을 만났어도 도움을 못 받고 나서 그걸 깨달았고 그래서 펠덴클라이스를 접하게 됐다.

올 겨울에는 초등학교시절부터 예원학교를 같이 졸업하고 예고 공동수석 입학을 거쳐 지금까지 단짝친구로 지내고 있는 성악가 김영미씨와 미국에서 같이 성악캠프를 할 예정이다. 

“요즘 성악은 안하지만 노래는 여전히 좋아해요. 그러나 욕심 부려서 하고 싶은 것은 없어요. 물 흐르는 대로 살아요. 노래하게 되면 하는 거고, 책 내게 되면 내는 거고, 정말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요. 건강 외에는 가진 게 없어요. 워낙 낙천적이거든요.”

물 흐르는 대로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고통을 당했으면 저렇게 변했을까’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워낙 성격자체가 낙천적이라서 있는 그대로 적응을 잘한다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독일에서 같이 펠덴클라이스를 공부한 일본 스님은 도를 닦는데 도움 되기 위해서 이걸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분야나 기초가 된다는 말이죠.”

나를 만들고 닦는 그릇에 펠덴클라이스를 비유하는 이혜경씨.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무늬를 바꾸고 자신을 담을 그릇을 바꿔라. 그릇을 바꾼 다음 노래도 운동도 담아라.

끝으로 그는 이제 우리는 교육이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제대로 쌓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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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3년 08월25일 09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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