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이름으로 제302호> 무인도에 가고 싶던날... - 대한민국 대표 인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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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가고 싶던날...

2006/09/13 00:00 입력

업무상 전화를 많이 받는 직장이라 난 전화벨 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전화기는 거의 받기만 하는 집 지키미 일 뿐 여자라면 흔히 있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십분 씩 수다를 떨고 하는 일이 내겐 없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남편에게도 딸애에게도 휴대전화 좀 많이 쓰지 말라고 전화세가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전화에 대한 그런 강박관념은 업무 적인 일 말고도 내 가슴을 종종 얼어붙게 만든다. 결혼 15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네" "네" 하고 힘들게 받게 되는  전화 때문에 며칠을 밤잠을 설친다. 사람이 사람의 가슴에 무게를 지어 주는 일.... 결혼을 한 여자라면 한남자의 아내로 한집안의 며느리로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고 어느 누구에게나 며느리란 타이틀이 버겁게 느껴지는 일 이지만 난 아직도 시댁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이 어쩔 수 가 없다 . 그렇다고 시댁 식구들이 모질거나 악하게 구는 것은 아닌데 대부분 내 가슴에 자리한 돌무더기는 시어머니와의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다. 15년이란 세월을 살면서 많이도 깍여 지고 무디어졌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대도 아직도 닥치면 내 가슴에 매달린 돌무덤은 나를 짓누르고 내 숨통을 죄여 하루 일을 망치고 밤잠을 설치게 한다. 아무리 타협하려 들어도 외곬로 뭉쳐진 아집은 자식들과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그런 탓에 맏며느리가 아니면서도 난 어머님 일이라면 늘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며 살아야 하고 가까이 사는 죄로 날벼락은 언제나 내가 맞는다..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닌데 언제나 사소한 일이 불씨가 되어 돌아가며 비수를 찔러대는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를 이젠 좀 무시하고 지나갈 법도 한 대 난 아직도 그러질 못하고 산다. 가끔 난 우스갯소리로 남편한테 "내가 전생에 당신집안에 있는 아주 큰 가마솥을 훔쳤나봐 그러니 이렇게 고달프게 살지?' 하면 남편은 웃으며 "그런 모양이네? 하며 너그럽게 웃어넘긴다. 남편 역시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얼마나 가슴이 아릿했을까?.. 어느 남자든 자기 집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남자들은 없으니.. 그러면서도 웬만한 일들은 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살라고 한다. 그것만 봐도 난 다른 여자들 보다는 행복한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이 효자이긴 하지만 , 소위 말하는 마마보이 같은 남편은 아니니까.. 언제쯤이면 자유로워질까?.. 며칠 잠잠하다 싶으면 한번씩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마음이 시끄러워 질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풀러 찜질방으로 간다 내게 있어 유일한 탈출구가 찜질방이기 때문이다. 정말 닦아낼 수 면 있다면 다시 꺼내어 닦아내고 얼룩진 부분들을 씻어버리고 싶은데... 가슴속에 들끓는 증오의 감정들을 숨기느라.. 하나둘 쌓여 만들어진 돌무더기를 이젠 조금씩 덜어내려 때론 표정연극을 하기도 했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선 마음 먹은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처럼 '왜 나만 며느리노릇을 해야 하냐고? 내가 맏며느리냐고 ?   속에 있는 말 다하고 살고 싶지만 성격상 그러질 못하니 다치는 것은 늘 내 가슴이다. 가끔은 나도 우악스럽게 소리 지르고 큰소리 내고 하는 여자들이 정말 부러울 때가 있다. 요것 조것 계산하고 따져서 자기 이로운 쪽의 일만 하는 사람들이... 찜질방에 앉아 버석거리며 책을 읽다보면 전화로 인해 치밀었던 울화들이 모두 땀으로 송글 송글 배출되어 나온다. 상처를 주고 받으며 미워했던 순간들 ... 연민과 걱정보다는 짜증이 앞서는 지옥 같은 마음... 아무리 가까이 가려해도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를 두고 가여운 것엔 눈물을 잘도 흘리 면서 살갑지 못한 내 성격도 탓해본다. 70년을 넘게 다져온 성격이라 감히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외곬로 뭉쳐진 아집 때문에 자식들이나 주변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당신은 알고나 계신것인지? 한번씩 브레이크를 걸때마다 내 가슴에 매달려있는 돌무더기는 높아만 진다. 찜질 방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둘러 본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그저 평온하기만 해 보인다 그들 모두가 품고 있는  가슴속 저마다의  사연은 잘 알 수 없지만 일단 겉으로 보이는 얼굴로 봐선 아무걱정도 없이 그저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온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그들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은 어떠할까? 책 한 권 들고 앉아 뜨거운 찜질방 안에서 땀을 흘리는 내 표정도 아무 걱정 없이 그저 평온하게만 보여질지... 무인도에 가고 싶었던 오늘도 난 고작 찜질방에 앉아 책을 본일 밖엔 아무것도 한일이 없다. 자운영. 2004년 01월 21일

[ 피플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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