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152) 실속있는 컨텐츠 벤처기업가 박정규
2003/12/26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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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152) 실속있는 컨텐츠 벤처기업가 박정규

"벤처운영의 기본은 실속이죠". 첫마디가 딱부러진다. 3CO 엔터테인먼트(www.3co.co.kr) 사장 박정규(30). 거품이 판치는 일반 벤처와는 달리 그는 실속있는 컨텐츠 벤처기업가로 통한다.

"3CO 엔터테인먼트는 대중문화를 토대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믹스를 통한 종합 문화그룹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전사들의 집합체입니다"

무슨말인지 얼핏 이해가 안간다. 기자의 표정을 읽은 듯 그가 말을 계속한다. 밤샘 근무를 밥먹듯 하면서도 한결같은 정장 차림이 그의 깔끔한 성격을 말해준다.

"3CO는 만화, 무협, 애니메이션의 전문 기획자 및 전업작가들이 갈고 닦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중 문화산업 전분야 진출을 목표로 하는 컨텐츠 기업입니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사이트들이 수십억씩 투자하는 상황에서 3CO는 최소 자본으로 인터넷 만화방과 알찬 내용의 컨텐츠를 확보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탄탄한 기획력과 전문 인력으로 무장한 작지만 실속 있는 벤처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젊은 나이에 엔터테인먼트 벤처를 차려 성공신화를 꿈꾸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는 서울 특별시에서도 아주 특별한 곳, 바로 서대문 형무소가 있던 그 자리에서 태어났다. 독립군을 처형하던 역사의 현장에서 태어났다는 자체가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준 것이 아닐까.

그러나 태어난지 3일만에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엄마 품에 안겨 성남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와서 현재까지 눌러 살고 있다.

"성남이란 곳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난이 뭔지. 왜 사람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아직도 우리 사회는 힘이 좌우하는 사회라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애절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자랐으니까요"

초등학교 때 장래 꿈은 육사출신 정치인. 당시 우리 나라 대통령은 육사를 나온 사람만이 하는 것으로 착각하던 시절에 누구나 있을 법한 해프닝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형이 보던 박노해 시인의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라는 책을 읽고 나서야 정치인의 꿈을 접었다.

어려서부터 가난을 끼고 살았다. 겨울이면 냉방에서 자야하는 자식들을 보며 울먹이던 어머니와 일터에 나가지 못해 긴 한숨으로 가슴을 삭이던 아버지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의 부모들. 그러나 당신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잘못된 전철이라는 것을 철이 들어서야 알았다.

자신이 그토록 꿈꿔온 정치인이나 권력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며 얻어진다는 것을 알고 정치인이 되겠다고 살아왔던 18년의 삶이 너무도 억울해서 며칠 밤을 울었다.

그래서 대학 학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의를 만류를 뿌리치고 도서관학과를 선택했다. 사서. 세상을 등지고 살고 싶던 그에게 세상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과 남을 위해 봉사를 할 수 있는 직종이라고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70만 그 중에 선택된 30만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40만. 나는 선택받지 못한 40만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야학도 다니고 화염병도 던지고 세상을 향해 투쟁도 열심히 해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촌에서 가투(거리투쟁)를 하다가 백골단(전경 체포조)에 쫓겨 달아나다 들어간 곳이 만화가게였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될줄이야…. 잠시 몸을 피한다고 들어가서는 만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만 날을 홀딱 새고 말았다.

"그때 처음 본 만화가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아주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제가 만화방에서 만화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선배들은 제가 잡혀 간 줄로 잘못 알고 동대문 경찰서를 기습 습격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그는 그날 이후로 만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오늘의 엔터테인먼트 벤처회사가 있기까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9개월 된 딸(효정)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마누라, 그리고 저희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하고 살고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내라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아내를 얻기 위해 쏟아 부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너무도 컸기 때문입니다. 원래 제 주량은 소주 2잔 아니면 맥주 반병인데 아내는 소주 2병에 맥주는 셀 수 없는 술 고래였어요. 둘이 만나면 술을 마셔야 하는데 정말 죽겠더라고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마셨어요. 제가 앞으로 살아가며 마셔야 할 술을 그때 다 마신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그때 상황이 벌어지면 다시 하고 싶을 정도로 마누라님이 매우 고맙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어린딸 효정이에게는 항상 미안해요. 제가 사업을 시작한 것이 임신 4개월 째라서 태교 한번 해 준 적 없고, 아빠 구실을 제대로 못했거든요"

몇 달 전에는 새벽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는데 딸아이가 일어나 저를 빤히 보더니 갑자기 울어서 깜짝 놀란 일도 있다.

"아이가 낯선 사람을 보면 운다는 집사람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딸애가 아빠를 낯선 사람으로 알 정도로 일을 하는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직도 내가 생각하는 그 길은 열리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는 왜 벤처에 뛰어들었을까. 남벌 아마겟돈으로 유명한 스토리 작가 야설록 프로덕션에 기획실 팀장이란 파격적인 대우로 입사한지 2년 6개월 동안 만화와 무협소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란 하수도 문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잡지 단행본 M&A등 많은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모두 실패.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치밀한 기획과 철저한 마케팅으로 준비한 사업이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왜 꼭 정해진 시장에 상품을 쏟아 부어야만 하는가? 만화라는 것이 단순히 오락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 등등.

그러다가 문뜩 새로운 장르 새로운 시장을 두드려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자는 결론이 나왔다.

"회사에 기획안을 냈지요. 그러나 회사는 여러 가지 일들과 겹친다는 이유로 제가 올린 사업을 보류 하더군요. 하지만 당시 제가 보기에 인터넷을 통한 대중문화 시장은 빠른 시일 안에 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어떤 사업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회사에서 하지 않는다면 혼자 나가서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는 3년 후에 다시 찾아 뵙겠다는 말을 던지고 회사를 떠나 사업을 벌인다.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인 대부분이 그렇듯 처음 사업을 시작하며 제 수중에 있던 돈 45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일단 카드로 노트북을 구입하고 사무실은 PC방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돈없이 출발한 사업. 그림 파일은 새벽에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PC방에 있는 스캐너를 이용하여 민첩하게 처리했다.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한달이고 두달이고 그 집에 찾아가 부탁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다. 추운 겨울 안양에 사는 모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밤늦게 찾아갔는데 그만 지하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지하철 역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급한일이 있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부인에게 전화를 하는데 왜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게 10여번을 남몰래 우니까 어느 정도 사업을 위한 컨텐츠가 확보되더라고요. 일단 컨텐츠가 확보되면서 동시에 사이트를 구축하고 최대한 작가와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을 한 결과 이 작가가 저 작가를 소개 해주는 인맥이 형성되게 되더라고요"

여기서 그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라, 그러면 상대는 나의 진실한 조력자가 될 것이다'라는 인생의 진리를 하나 얻었다.

그는 가끔씩 마음이 답답할 때 경마장을 찾는다. "고2때 처음으로 뚝섬경마장에 갔습니다. 어린 마음에 세상 사는 것이 너무 어려워 어딘가 탈출구를 찾고 싶어서 갔는데 말들이 역동적으로 뛰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후련해 지더라고요"

당시 100원을 가지고 베팅을 했는데 그가 찍은 말이 결승점 50M를 남기고 달려오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이후 마음이 답답하면 경마장을 찾다보니 벌써 15년이 되었다.

"몇달 전에는 작가에게 고료를 지급해야 하는데 수급이 제대로 안돼 10만원을 가지고 경마장에 간 적이 있어요. 정확히 250만원을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돈을 따기 위해 경마장에 찾아간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어요. 물론 250만원 벌었지요. 정확히 말하면 259만원을 땄어요. 아마 3경주였을 거예요". 그러나 그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했다.

"돈을 따는 순간 기도 했지요. 하느님 다시는 경마장에 돈 벌러 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사업 꼭 번창시켜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요즘 회사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자금흐름도 나름대로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이제 회사에 당당하게 찾아갈 결과물을 산출하기 위한 작업만 남아 있습니다". 그가 던지는 말속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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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1/04/19 10: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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