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167) 등대생활 29년 이규억
2004/01/10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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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167) 등대생활 29년 이규억

등대의 불빛은 생명의 불빛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길 잃은 배가 아니더라도 등대의 불빛은 길이요 희망이요 생명의 빛이다.

등대인생 이규억(53). 부산해양수산청 항로표지관리소 소장. 29년째 망망대해만 바라보며 등대를 껴안고 살아왔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등대는 부산 태종대에 위치한 일명 영도등대. 1906년에 세워진 국내 10번째 등대다.

그의 등대인생은 73년부터 시작된다. 첫 근무지는 울주군 간절곶 등대. 군제대후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곧바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었다.

처음에는 불 키는 것밖에는 없었다. 등대는 겉에서 보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장비가 모두 첨단으로 바뀌었다.

영도등대의 밝기는 83만 촉광. 어두울 때 24마일 거리에서 알아볼 수 있는 밝기다. 여기서 대마도등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대마도에서도 영도등대를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등대 높이는 해면상 57M, 기초상 13M. 기초상은 바닥에서부터 불켜진 높이를 말한다. 유인등대는 모두 흰색이다. 멀리서도 눈에 잘 보이게 하기 위한 색깔이 바로 흰색.

등대생활 29년동안 그는 2년 주기로 계속 다른 등대로 옮겨 다니면서 근무해 왔다. 관절곳 등대에서 오륙도로, 오륙도에서 가덕도로, 가덕도에서 영도로….

2000년 10월 1일자로 온 이곳 영도등대는 이번이 5번째.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에는 직원으로 왔는데 이번에는 소장으로 왔다.

영도등대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소장인 그를 포함해서 모두 3명. 24시간 2교대 근무다. 소장도 물론 직원과 똑같은 근무형태로 돌아간다. 오늘은 모처럼 휴가를 받았는데 인터뷰 때문에 갑자기 불려 나왔단다.

자택은 영도구 청학동. 영도등대에서 가까운 거리지만 그는 근무가 끝나고도 집으로 퇴근하지 않고 등대 숙소에서 지낸다. 집에는 휴가나 휴무일 외에는 가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도 숙소에 남아서 대기상태로 근무를 하는 셈이다. 등대에 만에 하나 이상이라도 생기면 전직원이 다 달라붙어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대불 밝히는 시간은 일출과 일몰기준. 아침에 해가 뜨면 자동으로 불이 꺼지고 저녁에 해가 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진다. 근무자는 등대에 있지 않고 사무실에 있다.

불켜지는 장비가 사무실에 있기 때문에 등대에 내려가지 않고도 이상유무를 훤히 알 수 있다. 사무실에서 등대를 수시로 살피면서 점검한다. 불에 이상이 있으면 그때그때 즉시 체크해서 바로 잡는다.

식사도 직원들이 자체 해결한다. 직접 쌀과 부식거리를 가져와서 해먹는다. 소장인 그도 물론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한다. 소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하나도 없다.

29년 세월을 등대인생으로 살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른다. 한마디로 세상물정에 어둡다. 다른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6급 신분. 공직경력 29년에 6급이지만 등대인생으로 만족한다. 등대는 바로 자신의 일터이자 그가 가장 자신있게 할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관리하는 영도등대를 믿고 배가 안전항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곳을 항해하는 배가 문제없이 잘 드나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장비가 모두 기계이기 때문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에 등대근무는 항상 긴장을 해야 한다. 저녁에 불은 잘 켜졌는지 다른 이상은 없는지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일기예보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장마나 태풍이라도 오면 3명뿐인 전직원이 비상근무로 들어간다.

악천후일때는 등대가 켜져 있어도 멀리 있는 배가 등대불을 못보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음파표시(무신호)도 같이 내보낸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레이다망이 좋기 때문에 짙은 안개가 끼어도 항해하는 배들이 사고없이 장애물을 잘 피해 다닌다.

등대의 역할이 단순히 불을 밝히는 것만이 아니다. 등대에는 전파표지가 있다. 전파표지는 전파를 이용하여 등대의 송신국에서 발사하는 전파를 배에 설치한 수신기로 위치를 측정하는 항로표지다. 전파표지는 등대나 등표 등 빛을 이용하여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먼 거리나 지형 등에서도 항상 이용할 수 있다.

전파표지에는 장거리 무선항법시스템,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 무선방위신호소, 선박자동응답장치 등이 있다.

등대에서 발사하는 전파를 수신하면 항해하는 배의 위치를 스스로 알 수 있다. 등대가 안보여도 위치측정이 가능하다.

영도등대의 색다른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쓰레기 문제. 수시로 들락거리는 관광객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느라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란다.

등대와 사무실 주변 계단에 낙서를 남기기도 한다. 심지어는 하얀 등대의 벽에다가도 낙서를 하는 얌체족이 종종 있다. 그러면 직원들이 낙서를 지우고 페인트칠을 하느라 애를 먹는다. 다행이 요즘은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등대지기로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애환도 많다. 파도가 심할 때 항해중 고장이 난 소형선박을 등대소에 놓고 가는 경우가 있다. 그때 직접 그가 내려가서 배를 고친 적이 있다. 그의 손으로 고친 배가 다시 움직일 때 느끼는 보람은 말로 표현 못한다.

망망대해만 바라보며 29년째 살아온 그가 단 한번도 외국을 나가 본적이 없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외국은 커녕 제주도도 못가봤단다. 24시간 근무체제라서 느긋하게 며칠씩 시간을 낼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가족과 항상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이 고통이다. 명절때도 비상근무 때문에 거의 쉬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등대인생으로 살아오면서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등대는 바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등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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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1/07/23 09: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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