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실버] (26) 나누고 베풀며 산다… 무재해에 미친 ‘군복에 빨간모자’ 사나이 65세 조정운 단장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살다 보면 누구라도 인생에 중대 고비가 되는 갈림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건설현장안전관리담당회사인 (주)에스제이 세이프티 조정운(65) 사장은 보통을 뛰어넘어 특별하고도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절정의 클라이맥스가 왔다 싶으면 다시 극적인 상황으로 이어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그의 삶은 수많은 관객을 사로잡는 스릴영화보다도 더 스릴 넘치는 파란의 연속이었다.
‘1․4후퇴’ 때 생사가 갈리는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12살 어린 나이에 고향 이북을 떠나 날아드는 총알을 피해 피난길에 오르는 것으로 그의 첫 시련은 시작된다.
입영 영장을 받고 정상적으로 군에 입대하였으나 엉뚱하게도 쥐도 새도 모르게 북에 침투하여 특수임무 수행을 목적으로 창설된 HID요원으로 차출되어 6개월을 사람 죽이는 훈련만 받으며 인간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던 극단적인 삶을 살던 암흑의 시절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HID 제대 후 20대 후반의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속된 말로 돈을 긁어모으는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쥐는 ‘화려한 시절’도 있었다.
태권도, 레슬링 등 무술 합이 11단에 HID출신 국가특수임무수행자로 손가락 하나만으로 상대에게 힘을 주어도 살인 무기가 될 수 있는 그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무에타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현재 한국무에타이 고문직을 맡고 있다.
60대 중반의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자의 손목을 잡고 누르는 손아귀 힘이 대단하다.
젊은 날 한 때 서울 중부경찰서 인접 방산시장 주차장에서 재건대(넝마주이)원 120명을 거느리기도 했다.

그가 자부하는 한 가지. 어떤 어려움, 무슨 상황이 있더라도 그는 가정을 지켰고, HID 이후 사업해서 돈 벌어서 거느리고 있던 부하조직원들에게 모두 풀었다.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며 그는 또 한 번 인생의 큰 전기를 맞는다.
1984년 삼성건설에 들어가 안전관리현장에서 20년을 근무하면서 무재해에 미친 사나이로 인생의 올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건설현장안전관리회사인 (주)에스제이세이프티를 김덕기 사장과 함께 이끌어가면서 소외된 사람들과 더불어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조단장. HID 때부터 지금까지 조정운 사장은 초지일관 단장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고 주변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
군대생활 3년만 해도 그 영향이 평생을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가 보낸 ‘HID 5년’의 후유증은 더 말해 무엇하랴.
“원래는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HID에 차출되고 나서 인간존중의 이념이 사라지고 성격에 문제가 오더군요.”
호송교관으로 HID담당 키퍼를 했다는 그는 이북침투교육을 맡으면서 인간존중의 이념대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정신이 박혀 버렸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조정운, 아니 조단장은 역시 달랐다.
그는 천안서부역광장 뒤에서 2003년10월부터 매주 토요일 점심 밥, 국에 3찬정도로 식사와 빵․음료수를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2년째 해오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는 이제 제법 널리 소문이 퍼져 천안아산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수원 평택에서까지 200여 명씩 찾아와서 식사를 하고 간다.
천안시에서도 그의 아름다운 선행에 기꺼이 동참하여 200평의 부지를 제공했고 주․부식은 삼성물산에서 지원해주고 에스제이세이프티직원과 천안아산지역 HID 요원들이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근무시절부터 조정운 단장과 함께 일을 해오고 있는 (주)에스제이 세이프티 김덕기 사장은 “조단장님이 살아오신 부분 중에서 HID 조직 등 관련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응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본인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목적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쪽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HID 요원들에게 무료급식 자원봉사 등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는 체험을 함으로써 삶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사회 적응을 돕도록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HID 요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지원사업으로 에스제이 세이프티는 사회 독도망언규탄대회, 양양산불진화, 아산호 수중정화, 수상인명구조활동, 충청지역 장애우 여름캠프, 장애우 열기구, 모터보트 체험 등 프로그램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조정운 단장은 에스제이세이프티 회사의 궁극적 목표는 건설현장 근로자들이 현장에 들어올 때보다 더 업그레이드 돼서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전과 생명은 직결된다는 말로 무재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는 대원들의 인성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군부조직처럼 운영한다고 덧붙인다.
삼성에 입사하기 전에는 악랄하기로 유명했다고 털어놓는 조 단장은 혈혈단신으로 사업에 성공하여 밀가루, 설탕 등 전국 78개의 먹는 품목 유통망을 모두 장악하고, 28살에 승용차 3대를 굴리고 카폰을 사용했을 정도로 잘나갔다고 한다.

매일 아침 명동 사보이호텔에 그가 나타나면 테이블 지정좌석이 있을 정도로 VIP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움켜쥐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낌없이 벌어서 거느리고 있던 조직원들에게 아낌없이 풀었다고 자부한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워낙 좋아했다는 그는 도사, 세파트, 진도견, 애완견 등을 총 망라한 사단법인전견등록협회를 발족시켜 70~76년 회장직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하고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80년 당시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살인교사를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법정에서 꼼짝없이 중형을 받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는 침착하게 그동안 그가 해온 방위성금, 불우이웃돕기, 수재의연금, 라면 8톤 트럭분량 구호물품 등을 보내면서 그때마다 기록으로 찍어둔 사진을 증거로 법정에 제시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기록으로 찍은 사진증거가 없었으면 꼼짝 없이 법망에 걸려들어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죄를 무게로 다는 저울이 있다면 그동안 저지른 죄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운 것이 더 많아 그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살겠다는 각오로 HID 입대하기 전에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벅지에 무궁화 문신을 새겼다. 듣고 보니 그의 몸에 새겨진 무궁화 문신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기로 다짐한 애국심의 표현인 셈이다.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권총을 차고 실탄을 가지고 다닌 적이 있다는 일화를 털어놓을 때는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1965년 HID 제대할 때 실탄과 권총을 가지고 나와서 76년 2월29일 불법무기 자진신고 때 권총을 반납했다고 한다.
1974년 미국 포드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불심검문에서 외투 속주머니에 지니고 있던 권총이 경호원들에게 발견되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니 듣기만 해도 아찔하다.
더 이상 누릴 것이 없으면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는 법인가. 세상 부러울것 없이 그토록 잘나가던 그가 1969~1975년까지 6년 동안 마약중독에 빠진 적도 있다는 충격적인 과거를 털어놓는다.
인생을 철저하게 파멸시키는 마약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 혼자 개 12마리를 키우면서 요양생활 10개월만에 마약을 끊고 완전 새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산 속에서 홀로 요양하는 과정에서 너무 괴로워 무덤 앞에서 로프를 들고 목을 매 자살하려고 하니까 그의 곁을 지키던 진돗개가 느낌으로 알아보고 달려들어 온몸을 핥아대는 바람에 마음을 돌렸다.
그래서 내가 이정도 일로 살아남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기보다 죽을 각오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내려와 베풀면서 살기로 다짐을 했다.
타고난 운동 실력에 라이카 카메라를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다닐 정도로 어려서부터 사진을 좋아했고 고등학교때 한라산 등반을 다녀올 정도로 산을 좋아한 조 단장은 성균관대학교 재학시절 레슬링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한국대학생산악회 기획부장을 맡았다.
성균관대학교 2학년 때 영장을 받고 이철희 장군이 첩보부대장 하던 시절 군에 입대하였는데 훈련소에서 HID로 차출되어 특수훈련을 받고 속초 202지구대로 배속되었다.
무재해에 미친 사나이. 그는 무재해를 염원하는 깃발을 품고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원정등반을 95년, 98년 두 번이나 다녀오기도 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8명으로 구성된 삼성 원정등반팀을 이끌고 출발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70일이나 걸리는 대장정을 한 번도 아닌 두 차례나 했다는 것이 전설처럼 들린다.

20년 몸담은 삼성을 퇴직하고 2003년 10월부터 (주)에스제이 세이프티에 몸을 담고 있는 그는 충청남도 아산 탕정에 머물면서 삼성물산건설부문, 현대산업개발, 삼성전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감시단장으로 140여명을 이끌고 24시간 풀가동하는 현장근무를 총괄지휘하고 있다.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회사입니다. 근로자들의 불안전한 활동이나 상태를 사전에 예방하고 방지하는 활동으로 안간의 생명을 살리는 회사라고 할 수 있죠.”
산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히말라야 등 원정등반을 하면서 찍은 작품을 모아 충무로에서 두 번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김덕기 사장은 “삼성건설직원치고 조단장님으로부터 사진선물 한 장 안 받은 사람 없어요.”라고 말한다.
조 단장은 근무현장에서 승용차로 5분이내 거리인 아산시 탕정면 호산리 원룸에서 3년째 부부가 함께 지내고 있다.
그동안 40년 세월을 떨어져 살다가 3년 전 위암수술을 받은 이후 같이 살다보니 신혼기분이 든다고 한다.

인생을 초, 중, 장, 노년의 4계절로 볼 때 노년기에 접어든 그는 남은 인생 마무리 잘하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는 평생을 군복차림에 빨간모자를 눌러쓰고 호각을 들고 현장에 나타난다. 삼성 근무시절에도 그랬고 에스제이 세이프티 사장으로 근무하는 지금도 그렇고 무료급식, 인명구조 활동 등 어디 어느 장소라도 늘 한결같은 차림이다.
오늘날까지 살아오면서 죽을 고비도 숱하게 겪었다는 그는 지금도 방탄조끼를 입고 비상식량을 비롯하여 비상용품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비상식량. 구명조끼, 구명로프까지 비상시에 쓰기 위해서 차에 싣고 다닌다.
젊었을 때 나쁜 일도 많이 했다고 고백하는 그는 남은 인생 마무리정리를 잘하고 가고 싶다면서 힘이 닿을 때까지 베풀고 나누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지난 과거보다도 앞으로 남은 인생을 알차고 가치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노후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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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 김명수기자
www.peoplekorea.co.kr>
2006년 10월08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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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종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