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468) 죽은 자와의 대화 …굶주림에 시달리다 32살에 요절한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최 …
2011/01/31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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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468) 죽은 자와의 대화 …굶주림에 시달리다 32살에 요절한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최 고은  

1979년생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는 순간 기자는 온 몸이 얼어붙는 한기를 느꼈다.

▲ 이웃집 현관문에 “며칠째 굶었다. 밥 좀 있으면 달라”는 쪽지를 남기고 숨진 시나리오 작가 최 고은(32)씨. 그는 끝내 밥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온기 잃은 냉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 피플코리아
이웃집 현관문에 '눈물' 맺힌 한 마디 “며칠째 굶었다. 밥 좀 있으면 달라”는 쪽지를 남기고 숨진 비극의 주인공은 단편영화 '격정소나타' 연출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최 고은(32)씨.

예술계의 카이스트라 불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시나리오 전공)를 졸업한 최 고은 작가는 2002년에 개봉된 단편영화 ‘연애의 기초’로 데뷔한 시나리오 작가 겸 연출가였다.

2006년 졸업 작품으로 자신이 감독 및 각본을 맡은 ‘격정 소나타’로 제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단편의 얼굴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설 연휴를 코앞에 둔 2011년 1월 29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자신의 월셋방에서 숨져있는 최 씨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와 같은 다가구주택에 사는 또 다른 세입자였다.

현관문에 붙어있는 쪽지를 보고 서둘러 밥과 김치를 챙겨 1층에 사는 그의 집 문을 두들겼으나 그 때는 이미 최 씨가 숨진 상태였다.

그런 쪽지를 남겨놓을 정도로 살고 싶은 의지가 강력했을 그의 처지를 입장 바꿔 생각하니 실로 눈물이 쏟아지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세상이 무섭다. 사람이 무섭다. 권력자, 재벌, 정치인… 이 땅을 쥐고 흔드는 가진 자들이 무섭다. 사회의 무관심이 무섭다. 힘있고 가진자들, 그들 곁에서 굶어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이웃이건만 왜 품어주지 못할까.

기자도 죽음의 위험을 느꼈다. 실미도 684부대원 현장을 취재하러 나갔다가 한 밤중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빠져 4시간을 표류당하는 아찔한 경험도 했다.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면 살고자 하는 의지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 최 고은 씨의 심정을 백번 천 번 이해한다.

‘배고프다. 며칠 굶었다. 밥과 김치 있으면 문좀 두들겨 달라.’

이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대는 아는가.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만큼 믿고 의지하며 살아온 이웃사촌이 고맙다.

기자가 용기를 냈다. 현실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최 작가의 심정으로 돌아가 그녀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살고 싶었습니다. 너무나도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무섭습니다. 사람이, 가진 자들이, 권력이 무섭습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꿈이 꺾이고 말았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영화화 되지 못했다. 제작사와 계약을 하고도 작품이 무산되면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며칠째 굶어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삶을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눈물이 말랐습니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눈물이 납니다.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선진국을 상징하는 G20 정상회의를 주도한 나라에서 어찌 이런 일이… 세계 20대 강대국, 세계 10위 무역규모,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허울 좋은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최 고은 작가의 아사(餓死)는 이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온기를 잃은 냉방에서 지병과 굶주림으로 숨진 고 최 고은 감독이 유언처럼 남긴 메모 쪽지가 이 땅의 살아남은 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같은 주택 세입자 송 씨의 현관문에 붙은 쪽지는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하였다.

최 작가가 붙여놓은 쪽지에는 이웃사촌으로 허물없이 지내온 송 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쪽지는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없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1층 드림.’이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었다.

송 씨는 이웃사촌인 최 씨에게 가끔 쌀과 김치를 건네주었고 밀린 전기세도 대신 납부했다.

사건이 알려진 그 날도 송 씨가 최 감독의 쪽지를 보고나서 쌀과 김치를 가져갔다. 하지만 최 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송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안양시 만안경찰서 측은 최 씨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가 수일 째 굶은 상태에서 치료도 못 받고 냉방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최 고은 작가 역시 대박을 꿈꾸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시나리오 계약 후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제작이 무산 되면서 손에 들어온 돈은 계약금 중 일부인 몇 백만 원이 고작이었다.

캐스팅과 투자가 확정되어 영화가 들어갈 때까지 받아야 할 남은 돈은 받을 수가 없었다. 일은 계속 하지만 돈은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 바닥을 떠날 수가 없었다. 꿈 때문이다. 언젠가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대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꿈이… 언제가 될지, 혹은 영원히 그런 날이 오지 않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꿈이다.

정 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굶주림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눈을 감은 시나리오작가 최 고은 씨의 아사에 대해 "경제 10위권 선진국 진입 문턱에 있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탄식했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재오 특임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고 최 고은 작가를 추모하며 "최 고은씨 하늘나라에는 편히 가셨나요"라며 "그곳에선 치료도 받고, 남은 밥과 김치가 부족하진 않나요"라는 글을 올려 네티즌들의 빈축을 샀다.

이웃 주민에게 남은 밥과 김치를 달라는 쪽지만 남긴 채 숨질 정도로 힘든 생활을 했던 고인에게 또다시 하늘나라에서 남은 밥과 김치를 먹으라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최 고은 작가는 2009년 '제3회 대단한 단편영화제'에 초청돼 자신이 감독 및 각본을 맡은 '격정 소나타(2006)'에 대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고인은 당시 인터뷰에서 "힘들어도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만든 영화가 격정소나타"라고 밝혔다.

최 씨의 작품은 평단의 극찬을 받으면서 영화 제작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제작이 무산되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생활고에 시달려오다가 이제 막 자신의 능력을 뽐낼 나이에 안타까운 변을 당했다.

그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온 최 고은 작가는 이웃사촌에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특히 2층에 사는 송 씨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최 씨는 2009년 가을 송 씨가 살고 있는 다가구주택 1층으로 이사 왔다.

이사 온 최 작가는 전기세가 3개월이나 밀릴 정도로 생활이 궁핍했다. 두 집은 공동 계량기를 쓰고 있어서 최 작가가 전기세를 못 내면 송 씨가 모두 부담해야 했다. 3개월이 지나서 송 씨는 전기세를 내지 않는 최 작가에게 따지려고 1층 최 작가 문을 두드렸다.

그 때 최 씨의 딱한 사정을 알았다. 쌀이 떨어져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돈이 없어 전기세를 못 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그가 딱해서 쌀과 김치를 조금 가져다 줬다. 송 씨는 이날 이후 몇 차례 최 작가의 방을 드나들면서 쌀과 김치를 주곤 했다.

송 씨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딸 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해서 계속 도와줬다.

최 작가는 그런 송 씨가 한없이 고마웠다. 그래서 가능하면 송 씨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구라도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뛰어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옛말이 없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 씨는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며칠을 굶어 죽어가면서도…

그래서 더욱 송 씨가 고마웠다. 두 사람은 몇 차례 쌀과 김치를 주고받으면서 더욱 친밀해졌다.

어느 날부터 최 작가는 송씨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송 씨가 공장일로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얼굴 마주치기가 쉽지 않으면서 최 작가는 송 씨 현관문에 '쪽지'를 남겼다.

이후 송 씨는 밤 늦게 집에 들어오더라도 현관문에 붙은 쪽지를 보면 쌀과 김치를 가져다 줬다.

쌀과 김치를 부탁하면서도 최 작가는 송 씨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다. 송 씨는 최 작가가 숨진 채 발견되기 4~5일 전에 만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 씨는 2월에는 돈이 생기니까 꼭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이번에 돈 생기면 병원도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 작가는 병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작가는 송 씨에게 남긴 마지막 쪽지에 적은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됐다.

최 작가는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준 송 씨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간직했다.

최 작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친다. 없는 형편에 도와주려고 노력한 이웃사촌을 인정사정없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언론 보도를 보면 속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최 씨는 말한다.

올해에는 전기세도 같이 내며 살고 싶었는데. 도움을 준 이웃사촌 사모님의 은혜를 꼭 갚고 싶었는데…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32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최 고은 작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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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 김명수기자 www.peoplekorea.co.kr>

2011년 02월18일 17시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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