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렇게번다] (82) 군장비 2천여종 납품하는 ‘덕인산업’ 장남인 사장 2
2004/06/07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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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렇게번다] (82) 군장비 2천여종 납품하는 ‘덕인산업’ 장남인 사장 2
 
고무 팩킹 하나라도 잘못되면 기름이 새는 것은 물론, 포의 방향이 잘못 될 수 도 있기 때문에 정확하고 완벽한 제품임을 자체 시험이나 확인을 통해서 납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품을 생산하다보니 부품 하나 하나마다 사람 손이 많이 가고 생산량은 많지가 않은 것이다.
 
"제조업이라고 무턱대고 만들어서 영업을 잘해 파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군에 납품을 하는 군수업자로서 제품의 완벽성을 우선 추구해야 하는 게 우리 같은 업자들의 고충입니다"
 
소품종 대량생산이라야 제조원가도 떨어지고 기업이 수지가 맞는데 이쪽은 다품종을 소량생산 하다보니 머리가 아픈 것에 비해 수입은 시원치 않으며, 그러다 보니 기업 창업연수에 비해 매출은 형편없는 실정이라고 장사장은 말한다.
 
육사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동아대 경영학과 야간에 들어가 1학년 마치고 사병으로 입대했다. 그의 군수산업에 대한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공병으로 폭파주특기를 받은 것이다.

폭파병으로 월남 비둘기 부대에 차출되어 월남어 교육을 받은 그는 월남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작전 때마다 심리전요원으로 불려 나갔다. 월남군과 연합작전을 할 때도 빠지지 않았다.
 
비둘기부대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왔는데 군대생활이 남아서 다시 두 번째 월남에 파병됐다.

사병이 군복무중에 두 번씩이나 월남에 파병됐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두 번째 월남에 파병 되었을때는 폭파병에서 보병으로 주특기가 바뀌었다. 그 유명한 맹호부대 1연대 재구대대 3소대 3분대 부분대장.
 
비행장을 사수하는 부대로 매복전투를 많이 나갔다. 그런데 하루는 전망대 근무중 새벽에 포탄이 떨어져 비상이 걸렸다. 출동을 하면 그가 소속된 소대가 첨병소대로 가장 먼저 적진에 들어간다.
 
"부상을 입던 그날도 적진을 뚫고 우리소대가 첨병으로 들어가 적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월맹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어요. 앞뒤로 꽉 막혀 진퇴 양난에 빠진 월맹군이 더 이상 전진을 포기하고 기수를 돌려 퇴각하면서 퇴로를 차단한 우리 첨병소대를 뚫고 나가면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포탄이 떨어져 소대장 이하 우리소대 전원이 사망 또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전사자만 해도 소대장님을 포함하여 10명이 넘었으니
까요. 그때 저도 큰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지요"

 
포탄이 떨어진 현장에서 그가 살아남은 것만도 기적이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 밑에는 옆으로 30Cm나 움푹 패인 큰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 대가로 그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니 훈장과 맞바꾼 흉터가 아닌가.
 
"그래도 다행이 국가에 팔을 바친 국가유공자가 되어 두 아들이 학교는 공짜로 다닐 만큼 혜택을 입었다"며 껄껄 웃는 장사장의 사무실 한쪽에는 당시 상황을 증언이라도 하듯 팔과 맞바꾼 '화랑무공훈장'이 빛나고 있다.
 
그는 그때 입은 부상으로 무려 2년 가까이 군병원에서 있었다. 필리핀 클라크 공군병원에서 8개월, 그리고 한국 대구통합병원에서 1년을 있다가 제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대하고 군수산업에 뛰어들어 그동안 누가 알아주든 말든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특정 제품을 스스로 개발해 냈을 때 가슴이 뜨거울 만큼 그 희열이 대단했다고 말하는 장사장.
 
그러나 이제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도 오히려 개발비만 많이 들지, 이것이 제품화 돼서 납품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점점 의욕이 떨어지는 것이 겁이 난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 세월 후회는 절대로 안 한단다.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에 있어서 만큼은 아직도 만족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입산 군 장비들을 국산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전혀 기술이 없어 외국의 포 등을 해체작업을 통해 어떻게 조립하고 연결을 했는지, 하나하나 공부해가면서 부품국산화에 전력을 쏟았다고 한다.
 
국산화에 전력을 다할 무렵 남의 것을 베껴가면서 물건을 만들다 보니 하자가 나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그런데도 박대통령은 하자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업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말고 제대로 된 부품이 나올 때까지 다시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국산무기는 전무한 실정이어서 무기를 해체해 보고 코끼리가 비스킷을 집듯이 하다보니 불량품이 많았다는 것이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기술을 전수하듯 대통령 명에 의해 오직 군수물자의 국산화에 방산업체들이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올림픽이 열리던 88년에 '88전차'를 100% 국산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덕인산업이 자체 개발한 실적을 보면 군에 납품하고 있는 오-링(5955)외 59종, 조달본부에 들어가고 있는 완충기(1248)외 14종, (주)로템에 납품하는 충격장치외 8종, 삼성테크윈에 들어가는 K9방수포외 9종, 통일에 들어가는 END BALL외 11종, WIA에 들어가는 DUST COVER외 15종, 대우종합기계(주)에 납품하는 FACE SEAL외 4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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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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