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바람의 꽁트] (5) 대낮에 교외까페를 왜가니?
2004/12/21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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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나이 서른살. 아직 총각. 직장3년차. 기다리고 기다리던 꿈의 토요일. 배병재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사실 어제저녁부터 잠을 설쳤다. 오늘이 바로 그녀와 단둘이서 교외로 데이트를 가기로 한날이기 때문이다. 자가용을 가지고 갈까. 아니면 그냥 버스를 타고 갈까.
 
고민을 하다가 자가용을 몰고 가기로 했다. 병재는 요즘 사랑에 푹빠졌다. 상대는 바로 스물네살의 이필녀.올봄에 여대 무용과를 졸업했다.  혼기가 꽉찬 두 청춘 남녀가 차를 몰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는 날이다. 병재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병재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단둘이서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간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형제가 없는 무녀독남이다. 3대독자다. 어머니는 칠순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침을 먹고 필녀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필녀가 역시 휴대폰으로 전화를 받는다.
 
 "내가 정확히 10시에 집앞에 갈테니까 그때보자"

 
 "오케이"

병재는 필녀의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병재는 오늘 필녀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병재는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병재는 운전을 하면서도 마음이 들떠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병재는 혼자 말을 하면서  쉼호흡을 한다. 필녀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빨간색으로 통일했다. 빨간 스타킹에 빨간 치마에 빨간 부라우스에 빨간 모자. 필녀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본다.
 
 거울속에 들어있는 또하나의 필녀가 방긋 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를 보낸다.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듯 거울앞에서 한바퀴 빙돌아 다시 한번 거울속의 필녀를 보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낸다. 역시 굽이 높은 빨간색의 하이힐이다.
 
 완벽한 변신. 화려한 치장을 하고 아파트를 나왔다. 경적이 울린다. 병재다. 필녀는 방긋 웃으며 차에 올라탄다.  병재는 서울시내를 빠져나가는데 한시간이 걸렸다. 카스테레오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온다. 볼륨을 높인다. 병재가 입으로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다. 필녀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흥이난듯 어깨춤을 춘다.

"어디로 갈까"

 병재가 한마디 던진다.

 "아무데나 상관없어"

 "나중에 후회하지마"

"내가 어린애냐! 후회하게"

필녀가 눈을 흘기며 말을 받는다.
 
  "우리는 양평으로 달린다"

  병재가 큰소리로 외치면서 필녀의 눈치를 살핀다.

"운전사 맘대로"

필녀도 질세라 맞받아치며 껄껄거리고 웃는다.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토요일오후면 항상 막히는 길이다. 병재는 사실 친구들로부터 여러번 얘기를 들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확실하게 잡아두는 비결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병재는 귀가 솔깃했다.친구의 말을 들어보고 경재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오늘은 친구한테 한수 배운 노하우를  실험에 옮기는  날이다. 바로 이름이 아름운 까페를 찾아가는 것이다.
 
 병재는 양평으로 가는 길을 달리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평소에 병재는 저기 저렇게 많은 까페에는 어떤 사람들이 들어갈까  하는 호기심이 풀리지 않았다. 병재의 깊은 속을 필녀는 알리가 없다. 필녀는 애인과 주말을 맞아 신나는 드라이브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필녀는 오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다. 병재는 양수리를 지나간다.
 
오늘따라 병재의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듯 날씨마져 구름한점 없이 쾌청하고 하늘은 푸르고 높아 보인다.
 
병재는 주변을 살펴본다. 분위기 좋고 멋있는 이름의 까페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병재는 필녀보고 아름다운 이름의 까페를 찾아보라고 한다. 필녀가 눈을 두리번 거린다. 라이브까페도 많다. 그러나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북선이 산으로 왔나. 항공기 까페. 열차까페. 그저 그렇다.
 
요트까페. 바로 그거다. 병재는 요트까페를 가기로 했다. 필녀도 거기가 좋겠다고 가자고 한다. 들어간다. 벌건 대낮인데도주말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꽤 많다. 라이브 가수가 직접 노래를 한다. 손님들이 술을 마시며 노래를 따라부른다. 병재는 이곳에 잘왔다고 생각한다. 필녀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병재는 술을 많이 마셨다. 필녀는 병재가 걱정스럽다. 가수와 노래와 술이 있는 요트까페에서 사랑하는 남녀커플은 그런분위기에 한껏 취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술에취하면 운전은 어떻게 하란 말이야.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오직 사랑하는 두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음악과 낭만이 흐르는 분위기 만점의 요트까페에서 주말을 즐기는 병재와 필녀는 오늘밤에  인생의 역사가 달라질것 같은 예감이 든다.  술에 취해 꾸버꾸벅 졸던 병재가 부시시하고 눈을 뜬다. 필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병재를 바라본다. 병재는 일어나서 나가자고 한다. 필녀가 따라나온다.
 
 배가 고프다. 도저히 이대로는 운전할수도 없고 미치겠네. 필녀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미 해는 서산에 지고 날은 저물어서 어스름이 깔렸다. 병재는 비틀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안되겠다 이러다가 사람잡겠다. 필녀는 여관을 잡았다. 방에 들어갔다. 희한한 방이다.
 
필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로만 듣던 물침대가 있는 방이다. 병재는 방에 들어오자 마자 물침대위에 큰대자로 뻗어버렸다. 필녀는 병재의 겉옷을 벗겨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필녀는 오늘밤 여기서 잘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필녀는 병재가 자는 모습을 보고 여관을 나왔다. 강가에 앉아서 찬공기를 마시며 생각에 잠겨있다. 한참 있으니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필녀가 다시 여관에 들어갔을때 병재는 잠에서 깨어 앉아있었다. 병재는 지금이라도 서울에 올라가려면 가자고 한다.
 
 그러나 필녀는 알고 있다. 병재가 술에 취해서 운전을 할수가 없다는 것을. 필녀는 그냥 오늘밤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일찍 가자고 한다. 배가고프다.  여관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2인분을 주문한다. 두사람은 식사를 끝내고 밖에 나간다.
 
 팔짱을 끼고 강변을 거닐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다시 여관방에 들어온다. 병재가 나가서 맥주 2병과 오징어안주를 사온다.  병재는 종이컵에 술을 따라 필녀에게 주고 자신도 따라 마신다. 낮에 워낙 술을 많이 마셔서 잘 들어가지 않는다.
 
병재가 먼저 물침대에 올라가서 눕는다. 병재가 몸을 움직일때마다 물침대가 출렁거린다.
 
필녀는 샤워를 하고 나와 옷을 입은채로 병재옆에 눕는다.  두사람이 올라가 누우니 물침대가 심하게 출렁거린다. 두사람은 술이 확깨고 정신이 든다. 출렁거리는 진동에 두사람은 안떨어지려고 서로 몸을 껴안는다.
 
 "정말 사랑한다. 우리 결혼하자"

병재가 청혼을 한다. 말없는 필녀가 병재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는다.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물침대위에서 두사람은 서로 껴안은채로 누워있다. 이제는 자야겠다. 병재는 일어나서 불을 끄고 다시 눕는다.
 
잠이 안온다. 병재가 먼저 필녀의 가슴을 만진다. 필녀가 움칠하다가 가만히 있다. 필녀의 가슴이 쿵덕거리며 뛰는 것이 병재의 몸에 전달된다. 필녀는 지금 겁을 먹고 있는 것 같다. 침대는 흔들거리고 출렁거리고 두사람은 몸을 서로 껴안고 있다.
 
필녀가 묘한 쾌감을 느끼며 사르르 잠이든다. 두사람이 잠에서 깨어났을때 모두 알몸이었다.  필녀가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온다. 필녀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다.  병재는 표정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침착한 모습의 필녀를 보니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병재는 옷을 주워입고 나서 필녀에게 잘잤느냐고 물어본다. 필녀는 씽긋 웃고 만다. 두사람은 아침일찍 서울로 올라왔다.  필녀는 그뒤로 주말마다 병재를 찾는다. 요트까페에 가자고. 병재는 그날 자신이 물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재는 이제 그곳에  가기 싫어졌다.
 
그러나 어찌된일인지 필녀가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병재가 다녀간 이후로도 이름이 아름다운 교외의 까페에 주말이면 어김없이 팔짱을 낀 남녀들이 각자의 꿍꿍이 사연을 간직한채 몰려 들어오고 몰려나간다.   
 
김명수
[ 피플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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