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실버] (9) 공립 최장수 교장선생님 신현각
2005/08/21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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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지키는 가장 큰 뿌리는 가정이다. 가정이 튼튼해야 사회가 튼튼하고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를 이룰 수 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     ©피플코리아
가정을 받쳐주는 또 하나의 뿌리는 학교 선생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같은 자녀들의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의 달인 5월에서도 한가운데인 15일에 스승의 날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83세의 신현각 노인은 평생을 공립 초등학교 교단에 몸바쳐온 '영원한 훈장님'이다. 새파랗게 젊은 19살에 교사로 출발한 그는 역시 새파랗게 젊은 30살에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은 이후 무려 36년을 교장으로 지내다 교직 생활 46년만에 정년퇴직하여 10년 넘게 청양군 노인회 지회장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사립학교도 아닌 공립학교에서 36년을 교장으로 지낸 사람은 아마도 그가 유일할 것이다.

교직 생활 46년중 딱 1년을 빼고는 고향인 청양에서만 근무한 것도 특이하다. 모교인 비봉초등학교에서만 22년을 교장선생님으로 지내온 내고장 교육 평생지킴이.

30세에 교장으로 첫 발령 났을 때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로 가는 대신 교감으로 있는 지금이 더 좋다면서 집앞의 학교에 계속 근무할수 있도록 교장 발령을 취소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결국은 교장으로 발령이 났고, 그래서 그는 집에서 4Km 떨어진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통수단도 바뀌어 자전거 다음에는 오토바이로 다니다가 나중에는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운전경력 17년을 자랑하는 오너드라이버. 8순을 넘긴 노인이 아직도 핸들을 잡고 직접 운전을 한다는 자체가 신기하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아 오면서 대통령포장, 문교부장관표창, 대통령 국민포장, 대통령 국민훈장 동백장 등 큰상도 많이 받았다.

일제압박에서 해방되던 45년에도 그는 교장업무를 대행했다. 일본인 교장이 쫓겨나면서 공백기에 그가 교장업무를 임시로 본 것이다. 그때가 25살. 아무리 임시라지만 25살에 공립학교 교장업무를 보았다는 자체가 놀랍다.

배일감정이 하늘을 찔렀던 8·15 해방 당시 그는 면장, 지서장과 함께 학교에서 참배하던 곳에 불을 지르는 과격성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군들이 철수 직전에 참배하던 곳에 불을 지른 그를 보복 살해하려고 총을 들고 쫓아다녔다. 그때 등뒤에서 총을 쏘아 대면서 추격해오던 일본군을 피해서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기적이다.

39년 첫교사 발령때 월급은 38원. 그중에서 2원을 한달 용돈으로 쓰고 나머지는 부친에게 보냈다. 50년 교장으로 첫 발령 받자마자 6·25가 터졌다.

교사 첫 발령부터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받은 월급명세서와 발령장, 임용증, 인사기록카드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간직하고 있다.

62년 인사기록부를 보니 양봉이 특기라고 적혀 있다. 40여년전 취미겸 부업으로 시작한 양봉을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다. 당시 교사 박봉으로는 살기 어려워 벌치고 꿀쳐서 아들딸 7남매 모두 교육시켰다. 양봉을 하면서 벌한테 쏘인적도 숱하게 많은데 오히려 그것이 그의 건강을 지켜주는 보약이 되었다. 그때 '천연 벌침'을 많이 맞은 덕분에 아직도 건강하다고 한다.

그의 46년 교직생활 중에서 45년을 고향인 청양에서만 근무했다. 나머지 1년은 경기도에서 소학교교사자격증을 취득해서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수원 향남공립심상소학교. 그러나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자원해서 1년만에 청양에 왔다. 말하자면 수도권학교를 스스로 버리고 시골벽촌으로 소위 빽써서 내려온 셈이다. 이유는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내고장 교육 지킴이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지금도 고향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어르신이다. 비록 교단은 떠났지만 청양군 교육계의 가장 원로가 된 요즘도 그는 노인학교 강사로 자주 나가고 있다. 청양군경로당 200여개를 관리, 지도, 감독하고 노인복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

건강수칙 제1호는 규칙적인 생활과 제때 밥 챙겨먹기. 식사를 한끼라도 건너뛴 적이 거의 없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밥은 꼭 챙겨 먹는다. 그 덕분에 병원에 간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그는 교장선생님으로, 아니면 노인회 지회장으로 청와대에 단골초청을 받는 귀하신 몸.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이승만에서 김대중까지 역대 대통령을 모두 만났다.

40대 중반의 전임교장 대신 30세인 그가 첫 교장 발령을 받아 후임으로 갔을 때 '저렇게 젊은 교장이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그를 보는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그가 잘해낼수 있을지 주목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그는 주위의 우려를 씻고 공립초등학교 최연소, 최장수 교장선생님이라는 기록을 동시에 세우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교장선생님으로 많은 공덕을 쌓았다.

그의 모교 비봉초등학교에는 그의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가 우뚝 서있다. 송덕비는 사후에 세우는 것이라는 관례를 깨고 학부모 일동이 세워준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공덕을 베풀었으면 학부모들이 발벗고 나서서 송덕비를 세워 줬을까.

비록 교단은 떠났지만 8순이 넘은 지금도 그는 자가용을 몰고 손수 운전을 하면서 노인회 지회장으로, 영원한 훈장님으로 지칠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다는 기쁨에 집에 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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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eople365.pe.kr
 
2002/05/13 09: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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