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244) 영화스틸작가 권순미
2005/10/27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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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244) 영화스틸작가 권순미

영화 촬영 현장에는 어김없이 스틸작가가 있다. 거기에는 배우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중요한 장면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권순미(42)가 있다. 영화판에서 17년째 스틸작가로 활동해온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     © 피플코리아
그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화촬영 현장을 찍는 프리랜서다. 영화가 개봉되기 앞서 각종 광고나 홍보용으로 뿌려지는 사진이 바로 그를 비롯한 스틸작가들이 촬영 현장을 누비고 다니면서 찍은 스틸사진이다. 

홍보가 생명인 영화계에서 스틸작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도 홍보가 받쳐주지 않으면 흥행을 장담할 수가 없다. 홍보에 산소같은 존재인 스틸사진을 찍는 스틸작가가 그래서 중요하다.

바늘 가는 곳에 실 가듯이 한 영화에 스틸작가 한 명 이상은 꼭 붙어 다닌다. 촬영기간은 보통 3~5개월. 횟수로 따지면 40회가 기본이지만 대부분 50회 이상이고 70~80회가 넘는 경우도 많다.

스틸 작가라고 해서 다 같은 스틸 작가는 아니다. 아예 스텝으로 참여하는 스틸작가가 있는가 하면, 기획 홍보실에서 홍보용으로 필요할 때마다 사람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는 처음부터 영화제작의 한 스텝으로 참가해 오고 있다. 

17년전 조수(어시스트)로 이 바닥에 첫발을 들여 놓은 이후 오늘에 이른 그는 현재 황기성사단에서 장나라,  박정철 주연의 '오! 해피데이'를 찍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황기성사단에서 찍은 영화만 해도 무려 10편에 이른다. 지난 12월 11일(수) 제작발표회를 가진 이 영화는 내년 1월말께 제작을 완료하고 4월중 개봉할 예정이다.
 
스틸사진 촬영은 스케줄을 자기 마음대로 잡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제작스텝들과 함께 움직인다. 그가 스틸을 맡고 있는 '오! 해피데이'는 양수리 영화진흥공사 세트장에서 3일 크랭크인 찍고 나머지는 주로 서울 근교에서 찍었다.

앞으로 이 영화의 제일 중요한 촬영으로 한강대교에서 찍는 것이 남았다. 지금 계획으로는 주변 교통을 차단하고 내년 1월1일 촬영할 예정이다.

스틸 촬영 현장에서 위치선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촬영팀이 찍을 타이밍과 장소를 미리 눈여겨봐 두었다가 배우들이 연기하는 표정을 보고 방해가 안되게 찍는다.

▲     © 피플코리아
조명이던 스텝이던 카메라에 잡히지 않으려면 카메라 옆에 최대한 붙는 것도 노하우. 그러기에 촬영부, 조명부와의 자리싸움 또한 치열하다.

현장에서 떨어져 있어도 모니터로 지켜 볼 수 있는 지금과 달리 감독, 조감독, 촬영 포스트, 조명포스트가 모두 카메라 옆에 붙어있어야 했던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리싸움이 심했다.
 
그러니 스텝들과 친해져야 함은 당연한 일. 알력싸움이 있으면 좋은 자리를 잡기가 그만큼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하는 일도 힘들지만 현장에서 좋은 구도를 찾아서 찍는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찍은 사진 중에서 맘에 드는 사진을 찾았을 때, 그리고 신문이나 잡지에 자신이 찍은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올라와 있을 때 가슴 벅찬 기분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예전에 조수로 가서 찍은 사진이 대형 포스터가 되어 극장 간판에 걸렸을 때는 자신의 이름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도 그 좋은 기분은 말로 다 표현 못한다. 바로 그런 것들이 그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큰 기쁨이 되고 에너지가 되고 활력소가 된다. 

그는 왜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을까. 세상에는 그가 할수 있는 일이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드세기로 소문난 이 바닥에 겁도 없이 뛰어들었을까.

신구대 사진과를 졸업하고 학교에 남아 조교로 근무하다가 사진작가로 유명한 홍순태교수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거기서 연극사진을 주로 찍었다.

그러다가 연극잡지 '한국연극'에서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일하던 중 연극을 소개하는 신문 '까망'의  발행인이던  권영일씨 소개로 86년 스틸작가 윤진호씨를 만나게 되면서 스틸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스틸인생이 된 것이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영화스틸작가 협회에 가입된 사람만 스틸사진을 찍게 했다.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진 협회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거기 들어가려고 하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조수 생활 1년만인 87년부터 프리랜서로 독립. 영화스틸을 해보니 자기 체질에 딱 맞고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다니 타고난 스틸작가가 아닌가 싶다. 일하다 보면 밤낮이 없다.

스틸작가는 혼자 하는 활동이 아니라 제작 스텝진과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영화 촬영기간에 연출제작팀에서 스케줄을 잡아주면 철저하게 거기에 맞춘다.

그가 지닌 스틸용 장비로는 캐논 'EOS5'와 렌즈 28-70, 70-200L 렌즈가 있다. 그리고 RB67 카메라가 있다. 작은 체구에 육중한 카메라를 메고 살다보니 직업병으로 어깨가 결린다고 푸념아닌 푸념을 한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이 일은 특히 자신이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중노동이라고 그는 말한다.

영화를 찍다 보면 날씨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한다. 비 오는 촬영도 막상 비가 오면 펑크가 난다. 영화 속에서 억수같은 장대비가 내리는 장면도 사실은 맑은 날 살수차로 물을 뿌리고 찍는 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눈 오는 촬영도 마찬가지로 눈이 오면 펑크가 난다. 폭설 촬영도 바닥에 소금을 깔고 기계로 물비누 뿌리고 찍어야 하는데 눈이 오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참으로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닌가. 

영화스틸만 올해로 17년째. 하지만 갈수록 영화판이 새로운 감각과 신선한 감각을 찾다보니 경력이 자랑이 아닐 수도 있다. 옛날에는 물론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영화 화면과 틀려도 홍보효과가 있다면 연출을 해서라도 찍을 만큼 세태가 변했다. 그래서 그는 경력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감각을 익히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예전엔 현장에서 스틸 찍는 일이 힘들었다. 자리싸움에서 밀려나기가 일쑤였다. 카메라 옆에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은 촬영기사와 촬영 제 1, 2 조수, 조명 제 1조수, 조감독, 감독, 그리고 스틸기사 등등으로 그 사이에 비집고 서있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늘 캐치라이트를 주는 조명기사를 만나면 홀로 눈물의 파티를 해야 한다. 여자라고 봐주지 않을까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하는 작업이라 서로의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마음고생이 심한 작업이다. 모든 일이 그럴 테지만 일보다는 사람관계가 더욱 기본이다.

자리싸움에서 밀려나면 카메라 옆에서 못 찍고 엉뚱한 데 가서 자리를 잡고 전혀 다른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우연일 뿐이다.

초보 때는 자리싸움에서 밀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잠깐만 비켜달라고 해서 비켜 줬다가 영영 밀려난 적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자리에서 결코 밀려나는 법이 없을 만큼 인간관계를 잘 맺어 놓았고 스텝들과도 친해졌다.

스틸을 찍기가 가장 힘들었던 영화로 그는 아프리카를 떠올린다. '아프리카'에서 그는 처음으로 여자만이 주인공인 영화를 하게 되었다.

당시 KBS에서 '푸른안개'로 주가를 올리던 이요원과 영화 '여고괴담2' 및 드라마에서 막 알려지기 시작한 김민선 그리고 영화 '눈물'에서 열연한 조은지와 영화 '여고괴담2'에서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준 이영진 등 네 명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다.

개인적으로 그는 이 영화의 스틸을 찍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 놓는다. 파인더로 네 사람의 표정을 한꺼번에 읽기가 어려웠을 뿐더러 각자 다른 개성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영화 홍보를 하려면 기자들이 많이 몰려온다. 바로 그 홍보를 위해 그는 영화 촬영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스틸북을 만든다. 스틸북을 만들어 필름과 사진에 넘버링을 해주면 홍보사에서 뽑을 사진을 선택해서 뽑는다.

영화 한편 스틸에 그는 보통 36컷짜리 필름으로 70~100롤 정도를 찍는다. 어림잡아 3만여장. 거기서서 700~800장 정도를 골라 스틸북을 만들고 그 중에서 홍보용으로 선택되는 사진은 더욱 줄어든다.

좋은 촬영기사를 만나고 좋은 스텝을 만나야 스틸사진도 좋은 작품을 찍을 수 있다. 그 다음에는 홍보사에서 좋은 사진을 고를 수 있어야 스틸사진도 빛을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프리랜서로 독립하고 찍은 스틸 영화는 대략 25편. 유현목 감독의 '바다와 소년과 말미잘', 신승수 감독의 '계약커플' 과 '아프리카', 홍종오 감독의 '유아독존' 등을 찍었고 지금은 윤학렬 감독의 '오! 해피데이'를 촬영중이다.

그가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처음 찍은 스틸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외인구단이다. 지금까지 스틸작가로 활동하면서 전국 촬영지를 누비고 돌아다녔다.

작년 아프리카 촬영때는 한달하고도 보름이나 집을 떠나 지방에서 있었다. '바다와 소년…'을 찍을 때는 서해 위도 옆에 있는 작은섬 '장자도'에서 두 달이나 장기촬영을 했다.

여성이 그것도 가정주부의 몸으로 몇 달씩 집을 비우고 영화현장을 쫓아다닌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스틸 여성작가로 그 험악한 영화판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굳힌 맹렬 여성.

중장비 분야까지 여자가 진출해 있는 마당에 영화판이 그 아무리 드세다 한들 여자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오기가 발동하여 힘들수록 더욱 열심히 뛰었고 그런 각오로 지금까지 왔다. 지금도 현장에서 여자 스텝들이 무시라도 당하면 자기 일이 아닌데도 흥분해서 펄펄 뛸 정도로 당차고 똑소리 나는 여자다. 

그가 태어난 고향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의 그 유명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이효석 생가가 바로 그와 한동네다.

자라면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그 아버지에 그 딸. 칠순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집에 암실을 차려 놓고 무성 8mm 영화를 촬영할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분이라고 소개한다.

강릉여고를 졸업하고 신구대 사진학과를 나온 뒤 91년 결혼. 자녀로는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과 7살짜리 아들이 있다.

남편 내조를 위해 96년부터 3년 동안 쉬었다가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99년부터 다시 스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남편이 이해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남편은 모 대학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공기업의 연구원으로 있다.

말도 많고 화제 거리도 많은 영화판에서 살다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이규형 감독의 '공룡선생'을 찍을 때 스텝과 배우를 통 털어서 여자는 달랑 그 혼자였다. 그래서 몇십명이 들어가는 유스호스텔 숙소에 그 혼자 잤다.

넓은 곳에서 혼자 자니까 꿈속에서 가위눌릴 정도로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못 견디고 다음날부터 거기서 나와 인근 여관에서 잤다.

‘공룡 선생’은 고등학생 수십명이 공동 출연한 영화.  공룡 선생의 스틸을 찍었던 당사자인 그는 그 영화에서 엑스트라 여선생님으로 딱 한 컷 출연하기도 했다. 스틸사진도 찍고 생애 처음 엑스트라로 출연까지 한 영화라서 기억이 남다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스틸작가는 어림잡아 20~30명 정도. 그 중에서 여성작가는 절반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녀를 통 털어 현역 스틸작가중 최고참은 그를 불러준 윤진호 사부. 그리고 여자로는 그가 최초이자 현역 최고참이다.

영화판 현장의 전체 스텝 중에서도 영화 연륜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그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고참이 되었다. 앞으로 갈수록 스텝연령이 더욱 젊어질 것으로 그는 본다.

“앞으로 50대까지 계속 스틸작가로 뛰고 싶어요. 욕심 같아서는 후배도 한 명 키우고 싶고,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스틸작가 그룹을 만들어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마지막으로 던진 그녀의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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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eoplekorea.co.kr>  

2002년 12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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