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젖어있는 열한개의 소품] 이야기하나 (27)
2005/11/01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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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색 반부츠-누군가를 대신한 사랑 27

 

<회사를 그만두는 대신 사장님의 권유에 따라 토론토로 가오. 신설 된 지사여서 할 일이 많다고 하시더군. 오랜만에 미친 듯이 일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 승낙했소. 그리고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을 대용품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오. 최소한 근래 들어서 만큼은... 다시 시작해 보고픈 욕심이 있어 이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오. 다만 당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대용품이란 말을 떨쳐버렸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오. 그럼, 당신이 원하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하겠소.>

저는 곁에 사장님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일기의 뒷부분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오. 과연 나는 당신을 떠올리기 위해서 그녀를 만나는 것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오. 도대체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뭔가 더 쓸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일기는 매우 짧게 쓰여 있었습니다.

<그녀와 영화를 봤소. 그런데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더군. 영화 관람 내내 그녀와 손을 꼭 잡고 있었기 때문인가 보오. 그 감촉은 당신과 연애 할 때와 같았지만...>

글이 왜 이렇게 끊겨 있었을 까요? 아마도 당신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고 싶은 심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음을 저는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와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당신을 만나고 있다고 늘 외쳐대면서도, 그녀를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녹아버리고 말기 때문이오. 손을 잡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쩌다 그녀의 체취가 확 느껴지기라도 하면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요. 정말 두렵소. 과연 이런 만남을 계속 해도 되는 것인지...>

그동안 당신이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있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내용이었지요. 그 뒤로도 한 동안 비슷한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일기 쓰기를 중단 한 것 같았지요. 하지만 그 뒤로도 지면이 많이 남아있기에 계속 넘기다 보니 마지막 장에 긴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을 놓아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오. 나 편한 대로 생각한다고 욕을 해도 좋소. 정말 그런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며칠 간 당신에게 편지도 쓰지 못했소. 더 이상 당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러나 한 편으론 이런 생각도 드오. 만약... 아주 만약이라도 우리가 말하는 저승이란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래서 당신도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면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누군가 그러더군 이미 떠난 사람을 너무 그리워하면 그 영혼도 편한 세상으로 가지 못하게 된다고.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오래 전의 추억을 떨쳐 버리지 않으려는 내 집착이 나 뿐 아니라 당신까지 옭아맨다면 정말로 슬픈 일이지.

사실은 오늘 그녀에게 청혼을 한 뒤 당신을 놓아주려고 했었소. 나는 정말 욕심쟁이인가 보오. 그래서 벌을 받아 그녀가 떠나간 것이겠지. 그렇소. 그녀는 이제 떠나갔소. 그녀를 위해서는 잘 된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매우 허전 하다오. 나도 이러니 당신도 그럴 수 있는 것 아니겠소? 그래서 하는 말이오. 그곳에서 부디 당신만의 새 삶을 다시 찾아보구려. 나는 땅에 발붙인 채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소.

이제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 없이 새로운 세상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구려. 이미 떠내 놓고도, 다시 떠나 보낸다 생각하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는구려. 하지만 이제는 울지 말아야겠지. 당신도 나도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야 할 테니까. 그럼, 부디 행복하구려.>

 

백산

 

수정일 2002년 12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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