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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255) 전통메주로 손된장 만들어 보급하는 이색 국악인 채향주
2006/01/10 00:00
입력
<FONT color=blue><STRONG>[클릭이사람] (255) 전통메주로 손된장 만들어 보급하는 이색 국악인 채향주</STRONG></FONT><BR><BR>남도 문화의 1번지로 불리는 청자의 고을에서 전통의 손메주로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어 보급하는 이색 국악인이 있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중저리 저두마을에 가면 인스턴트 가공식품 등에 밀려 잃어버린 우리의 옛 맛을 되찾아주는 ‘청자골 손된장’ 채 향주(63) 사장을 만날 수 있다. <BR><BR> <TABLE border=0 cellSpacing=3 width=270 align=left> <TBODY> <TR> <TD> <TABLE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border=0 src="http://www.peoplekorea.co.kr/imgdata/peoplekorea_co_kr/201112/2011122436076503.jpg" width=270></TD></TR></TBODY></TABLE>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TBODY> <TR> <TD style="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COLOR: #ffffff; FONT-SIZE: 9pt" bgColor=#999999>▲ © 피플코리아</TD></TR></TBODY></TABLE></TD></TR></TBODY></TABLE> 처음에는 손 된장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었는데, 한번 먹어본 사람들이 맛있다며 더 달라고 해서 만들어주다 보니까 규모가 커지고 그것이 결국은 ‘청자골 손된장’ 사업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BR><BR>결혼하여 수원에 살고 있는 큰 딸 안 홍희(41)씨도 어머니를 도와 작년부터 손된장 판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는 3대를 이어온 손맛으로 전통 된장을 만들고 딸은 판로를 개척하는 모전여전이라고나 할까. <BR><BR>강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해가 없는 바닷가 청정지역이자 공기 좋고 물 좋은 예향의 도시로 그 유명한 다산 정약용선생의 초당과 ‘모란이 피기까지…’의 영랑(김윤식) 생가가 있고 청자골 도요지가 있다. 그리고 국내 유일의 고려청자 박물관이 있다. <BR><BR>채여사의 고향 역시 강진으로 서울에서 살다가 5년 전 이곳에 내려와 지난 2002년 대구면에 고택을 구입하여 본격적으로 손된장을 담그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BR><BR>청자골 손된장이라는 브랜드로 된장 외에 청국장, 고추장도 나온다. 모든 음식은 역시 정성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는 법. 여기에 하나 더 메주를 발효시킬 때는 온도 습도 바람 등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BR><br> 채 여사는 손 된장 기법을 친정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았고, 어머니는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았으니 자그마치 3대를 이어져 내려온 전통 손맛이다. <BR><BR>그의 조부는 1890년대 당시 강진 초대 원님(군수) 등 전국 각지에서 20여년간 군수를 재임한 분이었고, 할머니는 유명인사들을 접대할 때마다 맛깔스런 한국 전통음식 상차림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BR><BR>그는 물좋고 공기좋은 대구, 칠량지역의 농민들과 재배계약을 맺어 구입한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이 메주로 강진 전통의 된장과 고추장을 만드는 데 이 맛의 비결은 다름아닌 채여사의 독특한 비법에 있다. <BR><BR>첫째는 무쇠솥에서 장작불로 콩을 삶고 둘째로는 메주를 숙성시키는 장소로 강진에서만 나오는 청자의 파편과 역시 강진지역의 황토를 혼합해 만든 황토 방을 이용한다. <BR><BR>천정에 소나무 껍질을 붙이고 바닥에 멍석을 깔아 최적의 온도와 자연적인 습도 조절이 이루어지는 황토방에서 적당히 발효과정을 거친 메주는 다시 강진만의 바닷바람으로 말리는 데, 이 해풍도 독특한 청자골 손 된장의 별미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청자골의 무공해 흙과 공기, 황토 등이 어우러져 '청자골 된장'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BR><BR> <TABLE border=0 cellSpacing=3 width=330 align=right> <TBODY> <TR> <TD> <TABLE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border=0 src="http://www.peoplekorea.co.kr/imgdata/peoplekorea_co_kr/201112/2011122438328106.jpg" width=330></TD></TR></TBODY></TABLE>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TBODY> <TR> <TD style="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COLOR: #ffffff; FONT-SIZE: 9pt" bgColor=#999999>▲ © 피플코리아</TD></TR></TBODY></TABLE></TD></TR></TBODY></TABLE>이토록 정성을 들인 손메주로 만든 청자골 손된장과 고추장은 서울의 유명 한식당을 비롯하여 서울 수도권 아파트에서 입소문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BR><BR>"경기도에서도 전통기법으로 된장이나 고추장을 만들어봤는데 여기서 담근 것과 맛이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청자골 전통 손된장이라는 이름으로 강진군청에 사업신고를 했고 올해부터는 보다 많은 된장과 청국장 그리고 고추장을 만들어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공급하려고 합니다." <BR><BR>청자골의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무공해 보리와 콩 등 모든 재료에 채 여사만의 전통 비법과 정성이 가미되어 청자골 특유의 맛있는 손된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R><BR>한편 그는 반생을 판소리에 미쳐 살아온 아마추어 국악인이기도 하다. 강진과 서울을 오가며 국악인 조상현, 안숙선씨 등으로부터 사사 받으며 판소리 공부를 했다. 비록 나이 50 이후에 늦깎이로 배웠지만 아마추어 국악인으로서 각종 판소리대회에서 두루 입상하는 두각을 나타내 보이기도 했다. <BR><BR>나이 50이 넘어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공기 좋은 고향에서 손 된장을 담그고, 하고 싶은 소리공부나 실컷 하겠다는 생각으로 강진에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은 그는 배운 소리를 후학을 위해 쓰고 싶어 한다. <BR><BR>2년 전쯤 대구중학교 교장이 판소리대회에 나갈 7명의 학생들을 위해 소리를 가르쳐달라고 그에게 간절히 부탁해온 일이 있었다. 그는 대회날짜가 일주일밖에 안 남아서 무척 고심했지만, 학교장의 너무나도 간절한 부탁이어서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BR><BR>그는 가장 소리 실력이 좋은 학생에게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가르쳤고, 5명은 진도아리랑을 합창하게 했으며, 나머지 1명은 춤사위를 7일 동안 가르쳐 대회에 참가시켰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대회에 참가한 7명 중 무려 5명이 금상과 은상 등 좋은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BR><BR>채 여사의 가계는 강진에서도 명가에 속한다. 조부시대 할아버지가 닦은 기반이 그렇고 오빠는 미국에서 판사로 재임 중이며, 따님은 성악가 출신이다. <BR><BR> <TABLE border=0 cellSpacing=3 width=330 align=left> <TBODY> <TR> <TD> <TABLE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border=0 src="http://www.peoplekorea.co.kr/imgdata/peoplekorea_co_kr/201112/2011122439244998.jpg" width=330></TD></TR></TBODY></TABLE>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TBODY> <TR> <TD style="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COLOR: #ffffff; FONT-SIZE: 9pt" bgColor=#999999>▲ © 피플코리아</TD></TR></TBODY></TABLE></TD></TR></TBODY></TABLE>특히 미술 애호가였던 그의 조부는 추사 김정희 등 유명화가들과 교분이 두터웠고 국내 유명화가들의 미술품을 빠짐없이 소장하기도 했다. <BR><BR>채여사는 젊었을 때 소장했던 6대 화가의 작품들을 모아 서울에서 한국 근대 6대화가(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 청전 이상범, 의제 허백련, 이당 김은호, 심향 박승무) 소장전을 열기도 했다. <BR><BR>국악인이면서 그림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지금 그녀는 뒤늦게 뛰어든 손 된장 사업에 애착이 많다. <BR><BR>그림이 좋아서 사고 또 다른 좋은 그림을 사기 위해서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팔다보니 TV 진품명품에 나오는 진동만 위원이 인정할 정도로 그림과 골동품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BR><BR>골동품과 그림 및 서예를 사 모으기 위해 전국 구석구석을 돌다보니 거기에 얽힌 사연도 많다. <BR><BR>명성황후때 할아버지와 교분이 두터웠던 추사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나 ‘가화만사성’ 등 친필 서체와 편지를 자주 보내왔다고 한다. 그때 추사가 보낸 서체를 서울에서 감정 해보고 가격이 많이 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BR><BR>편지로 보내온 서체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할아버지가 추사에게 받은 글씨와 그림을 그와 아버지가 인사동 화랑가에 팔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아버지와 함께 유명한 화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BR><BR>한번은 항아리를 사러 다니다가 하천에 내다 버리듯 처박아 놓은 농을 보는 순간 첫눈에 좋은 농이라는 것을 알고 주인을 통하여 40만원에 샀는데 감정을 해보니 600만원이 나왔다. <BR><BR>“화랑가에 좋은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서 종용을 받고 팔기도 많이 했고, 또한 남편이 하던 사업이 부도난다고 해서 있는 그림을 몽땅 팔아 15년전 당시 돈으로 몇 억을 받았는데 결국은 다 말아먹었지요.” <BR><BR> <TABLE border=0 cellSpacing=3 width=330 align=right> <TBODY> <TR> <TD> <TABLE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border=0 src="http://www.peoplekorea.co.kr/imgdata/peoplekorea_co_kr/201112/2011122439569958.jpg" width=330></TD></TR></TBODY></TABLE>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TBODY> <TR> <TD style="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COLOR: #ffffff; FONT-SIZE: 9pt" bgColor=#999999>▲ © 피플코리아</TD></TR></TBODY></TABLE></TD></TR></TBODY></TABLE>남편을 만난 얘기를 하자면 사연이 길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사춘기시절 결혼해서 순천에 살던 언니 집에서 여학교에 다니던 중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어머니가 막무가내로 집으로 데려와 여학교를 중퇴하고 말았다. <BR><BR>어머니께서 바느질, 음식 만드는 법등을 잘 배워 시집가라고 해서 남자 얼굴도 안보고 결혼하던 시절에 자기는 그럴 수는 없으니 남자를 오라고 해서 보니까 대학 3학년이었다. 결혼해서 대학생 남편 뒷바라지 하고, 아들딸 3남매 낳아 대학공부까지 시키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BR><BR>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대학원에 들어가겠다며 시골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작심하고 아들만 등에 업고 집을 나와 서울로 올라갔다. <BR><BR>남편이 취직을 하고 나서도 그는 신촌에 경양식당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때 별명이 인심좋은 이미자 누나. 그러고 보니 가수 이미자를 많이 닮았다. <BR><BR>거기서 번 돈으로 지금으로 치면 수십억짜리 집을 서교동에 지어 살다가 72년 1억7천만원 받고 팔았다. 남편이 사업한다고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BR><BR>남편은 그동안 아내가 벌어놓은 돈까지 모두 날리고 빚더미에 올랐다.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어서 채권자들을 모아놓고 파산신고를 냈다. <BR><BR>그는 남편이 진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이름 앞으로 있는 재산까지 몽땅 내놓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 그때가 80년. <BR><BR> <TABLE border=0 cellSpacing=3 width=330 align=left> <TBODY> <TR> <TD> <TABLE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TBODY> <TR> <TD bgColor=#ffffff><IMG border=0 src="http://www.peoplekorea.co.kr/imgdata/peoplekorea_co_kr/201112/2011122441091358.jpg" width=330></TD></TR></TBODY></TABLE> <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100%"> <TBODY> <TR> <TD style="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 COLOR: #ffffff; FONT-SIZE: 9pt" bgColor=#999999>▲ © 피플코리아</TD></TR></TBODY></TABLE></TD></TR></TBODY></TABLE>먹고 살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3남매만은 반듯하게 키워냈다. 큰 아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고, 캠퍼스커플로 의대를 수석 졸업한 며느리는 분당에서 이비인후과를 개원하여 운영하고 있다. <BR><BR>국악인.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주최로 지난 2002년 6월20일에 열린 제1회 아마추어 명인명창 대회 금상 등 전국대회 판소리부분에서 여러차례 입상을 했다. <BR><BR>생활이 어려운 속에서 한때 그림도 열심히 배웠다. 아들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방안에 있던 TV를 없애고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그는 4군자를 했다. <BR><BR>그런가 하면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살려 강진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받아 서울에서 소장전도 열었다. <BR><BR>“내가 어려운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남은 인생을 시골에서 살면서 어머니에게 배운 솜씨로 된장 고추장 만들어 팔아서 남은 것이 있으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내가 좋은 일 하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해요. 자녀들로부터 ‘우리 엄마가 좋은 일 하다 갔다’는 소리를 듣고 싶거든요.” <BR><BR>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소리를 부탁하자 어머니는 판소리 한대목을 신명나게 부르고 이어서 딸이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소프라노를 열창한다. <BR><BR>청자골 손된장의 두 모녀가 부르는 동서양 음악의 절묘한 조화가 깊은 밤의 정적을 깨고 남도문화의 1번지 청자고을에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BR><BR>* <FONT color=#006600>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피플코리아에 있습니다. </FONT><BR><BR><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A href="http://www.pkorea.co.kr"><FONT color=#1f31ff>www.pkorea.co.kr</FONT></A>> <BR><BR>2003년 03월10일 01시50분 <BR><BR><BR><A href="http://www.peoplekorea.co.kr/"><FONT color=blue size=3>피플코리아 홈으로 바로가기</FONT></A><FONT size=3> <FONT color=#ff0000><STRONG>☞</STRONG></FONT><FONT color=#666666> </FONT></FONT><A href="http://www.peoplekorea.co.kr/sub_read.html?uid=1108§ion=§ion2="><FONT color=blue size=3><STRONG>클릭이사람 명단 1~345번</STRONG></FONT></A><FONT size=3><FONT color=#666666> </FONT><FONT color=red><STRONG>☜</STRONG></FONT></FONT> <BR><BR><BR><br> <P align=left style="font-size:14px;"> <P align=left style="font-size:14px;"> <MARQUEE bgColor=black height=20 width=450 diretion="left" valign="middle"><FONT color=yellow size=4>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클릭이사람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피플코리아 운영자 김명수 / 전화 010-4707-4827 이메일 people365@paran.com </FONT></MARQUEE><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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