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젖어있는 열한개의 소품] (39) 이야기 둘 (11)
2006/01/21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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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돈으로 거래 된 사랑 11

전화를 걸어보고 싶어도 다인은 휴대전화가 없다. 그리고 통화가 된다 해도 오늘은 이미 은행 영업시간이 지나서 송금도 불가능하다. 꼭 필요하면 전화하겠거니 생각하며 차를 몰아 거리로 나왔다.

이런...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꽉 막혀 있는 도로가 나를 맞는다. 빌어먹을 토요일 오후... 도대체 이 많은 인간이며 차들이 어디서 다 쏟아져 나온 것일까? 짜증이 난다.

빠아앙!

진입로에서는 한 대씩 교차해서 진행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시내버스 한 대가 막무가내로 클락션을 울리며 밀고 들어온다.

"야, 임마! 차 크면 다냐? 대중교통이든 지랄이든 기본적인 예절은 지켜야 할 것 아냐!"

창문을 내리고 소리쳐 보지만 상대방은 뉘 집 개가 짖느냐는 듯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라질 자식. 교차로가 나올 때까지는 천상 경유 냄새를 맡아야 할 것 같다. 경유차 배기가스 냄새는 정말 지독한데... 짜증에 짜증이 더해진다.

가만... 그러고 보니 짜증을 내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그전에는 운전 자체가 스트레스여서 핸들만 잡으면 인상부터 쓰곤 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짜증내고 있는 내 자신이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질 지경이니 정말 이상한 일이다.

휴우,,, 여의도를 빠져 나오는 데만 무려 40분이나 소비했다. 지금 가고 있는 강변대로도 교통상황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굴러가기는 하니 살 것 같다. 지긋지긋한 신호대기에 비하면 말이다.

중간, 중간에 꽤 속도를 내기도 하며 달리다보니 문뜩 눈에 익은 다리 모습이 들어온다.

-동호대교

다인을 알기 전에는 그냥 지나쳐본 적이 없는 다리다. 집으로 가려면 잠실대교를 이용해야 하지만 물 좋은 단골집에 들르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봐야 다인도 없는데 오랜만에 저쪽으로 빠져볼까? 생각만 했을 뿐인데 내 손은 어느새 핸들을 그쪽으로 돌리고 있다. 타고난 천성이야, 천성...

음... 어디가 좋을까? 영계 카페에 가더라도 아직은 주민득록증 검사 없이 무사 통과 할 자신이 있지만, 아무래도 좀 꺼려진다. 나이트에 가서 기분 전환이나 해볼까? 단골 웨이터 녀석에게 십만 원만 찔러주면 최고 등급으로 부킹을 시켜주는데... 아냐, 오늘은 왠지 흔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갈 데는 한 곳 뿐이군.

-판도라 룸 비즈니스 클럽.

겉보기에는 그다지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노땅들이 주로 가는 일반 비즈니스 클럽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우선은 술값이 일급 룸 싸롱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놈팽이들은 들어올 엄두도 못 낸다. 물론 비싼 값을 확실히 하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종업원들의 써비스가 틀리니까.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이 인사 한마디로 끝이다. 책이라고는 학교 다닐 때 본 교과서 껍데기가 전부인 놈이 내 책을 전부 봤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TV에서 봤다며 호들갑 떠는 일이 절대 없다. 단골 손님에 대한 성향을 철저히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괜히 아는 척 하며 따라붙으면 정말 술맛 뚝이니까.

"룸 하나 비워두고 홀에 괜찮은 자리 있으면 하나 잡아주지?"

나도 이 한마디면 끝이다. 그러면 내가 걸어들어 가는 사이에 주번 웨이터가 직접 나서서 확실하게 해결해 두니 말이다.

홀에 들어서니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귀청을 달군다.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심한 소음이지만 오랜만에 들으니 고향에 온 느낌이다. 나는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스테이지가 내려다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기 위해 커다란 색안경을 꺼내 썼다. 웨이터가 허리를 직각으로 꺾으며 메뉴판을 펼쳐 보여주지만, 항상 그렇듯이 나는 메뉴판을 들여다보지 않고 주문했다.

"술은 항상 마시던 걸로 하고, 안주는 과일로 해주게."

"알겠습니다, 선생님."

대답도 똑부러진다.

 

백산

 

2033년 03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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