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인에게 흔히 보이는 식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접시 위에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음식은 서로 먹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양보하는 겸양의 미덕같지만 사실 하나가 남기까지는 서로 열심히 먹다가 마지막 하나를 두고 그만 젓가락질을 멈추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맛있는 숯불갈비 조각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음식물 쓰레기로 변하여 버려지게된다. 그러나 버리면서 서로 양보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자위한다면 큰 착각일 수 있으며 결코 바람직한 식습관이라고 할 수 없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음식문화는 윤택한 식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절제하지 못하고 함부로 즐긴다면 그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음식은 처음 음미하는 맛이 그대로 유지되기까지가 식도락의 쾌감을 느끼게 하나 포만감을 느낄 정도에 이르게 된다면 그 때부터는 음식 본래의 맛을 음미하기에도 부적절하고 오히려 건강에는 화가 될 수 있다.
과거에 식량 자급자족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한끼 먹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고 두끼로 하루를 지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우리 조상들은 아침 인사를 “좋은 아침입니다(Good Morning)”대신에 “진지 잡수셨어요”로 하였을까? 싶다. 우리 조상들은 항상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적이 없으며 현재처럼 풍요롭게 살았던 적도 없었다. 과거 우리는 뭐든지 고봉으로 달라고 하고 일본어인 이빠이(いつぱい)가 전혀 생소하지 않게 가득 채워달라는 말을 대신하였을까 싶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항상 부족한 상태로서 가득함을 동경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행복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조금은 부족한 마음이 가득 채우는 마음보다 풍부하고 행복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성경에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되어 있으니 마음이 가난한 자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미국, 일본 및 유럽의 G-7 선진국이 아니라 최빈국 뱅글라데시이다. 사실 풍요로움이 행복을 가리키는 바로미터가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나는 최근에 “TV 동화 행복한 세상”이라는 책을 보았다. 이것은 매주 5분 간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책으로 편찬한 것이다. 이 책에는 마음속 깊이 흐르는 인간다운 사랑이 잔잔하고 감동력있게 그려져 있으며 진솔한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중에 가슴 뭉클한 “어머니의 밥그릇”이라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배고픈 가정의 여러 형제를 둔 어촌의 한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서 가져온 뒤에 자식들과 함께 먹고 항상 자기 밥은 반쯤 남긴 상태로 상을 물리는 것이었다. 배고픈 가정에서 어머니가 밥을 남긴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다. 마침내 배고픈 막내가 남은 어머니의 밥을 먹으려고 상다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만 어머니의 밥그릇은 떼구루루 굴러서 엎어지고 말았다. 이 때 어머니가 왜 밥을 남긴 채로 밥상을 물리는지 그 이유가 밝혀지고 말았다. 어머니의 밥그릇 밑에는 매끼마다 하얀 무가 하얀 밥을 바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배고픈 자신보다도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 한 톨을 행복하고 흐뭇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행복은 여기에 있었으며 이것을 체험한 자식의 어머니 사랑에 대한 행복이 GNP 2만불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으며 우리가 간직하여야 할 감동이 아닌가 싶다.
나는 얼마전 어머님의 무릎에 인공관절을 끼워드림으로 2년 전에 오른편 무릎에 이어 이번에는 왼편을 함으로서 그 동안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 수 있게되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사실 퇴행성 관절염은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이고 농사꾼으로 사신 어머니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올 수밖에 없던 병으로 대부분 농촌의 나이 드신 어머님들이 겪는 질환이다. 나의 어머니는 농번기에는 무거운 콩깍지 둥지나 볏단을 머리에 이고 먼 들길을 걸어 집으로 오시기도 하고 농한기에는 자식들의 등록금 걱정에 무거운 엿판을 머리에 이고 몇일씩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시기도 하였으니 이제 자식된 나에게 있어서 어머니 양 무릎에 인공관절이라도 끼워드려 걸으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마음이 있겠나 싶다. 지금껏 교회의 텃밭에 손수 심어놓은 배추, 상추, 무, 시금치 등을 가꾸는데 큰 소일거리를 두셨던 어머니에게 더 큰 즐거움이 있기를 바라고 싶다. 가난한 시절의 마음 아픈 추억이 이제는 나에게 작은 행복으로 다가옴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을 나는 마음속의 소중한 재산으로 여기고 싶다.
그러나 나는 풍요로움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비뚤어진 마음을 경계하고 싶다. 그들은 마음의 풍요를 물질의 풍요를 통하여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극히 환경친화적인 사회건설에는 역기능을 유발시키며 사회의 병리현상을 양산한다.
최근에 미국의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 존 더 그라프가 저술한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책에는 쇼핑중독에 의한 사회 병리현상 및 환경문제를 지적한 바 있는데 여기에서 “Affluenza"는 Affluent와 Influenza를 합성한 신종 단어로서 풍요로워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이로 말미암아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등을 유발하는 유행성 질병으로 정의된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병리현상으로 인해 쇼핑센터의 수가 고등학교의 2배를 넘어서고 있으며 미국인들은 일주일에 쇼핑을 위하여 6시간을 할애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40분에 지나지 않으며 가계평균 빚은 7,500 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Affluenza에 의한 중독현상이 얼마나 심한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에만 그치지 않으며 우리나라에도 인터넷쇼핑, 홈쇼핑에 의한 중독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동일한 기능을 가진 물건을 소유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그리고 새로운 물건을 소유하고자 하는 지나친 탐닉현상에 기인한다. 또한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주요 원인은 재력은 없으면서 남처럼 누리고 싶은 충동구매에 기인하기 때문에 Affluenza는 그야말로 망국병으로 말할 수 있다.
요즈음 초등학교의 분실물 센터에는 각종 학용품에서 시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신제품과 똑같은 물건이 쌓이지만 찾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중에 주요한 이유는 어린이들이 알면서도 찾아가지 않는데 그것은 부모에게 다시 새로운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기 위해서라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왜 이런 의식구조가 생겼을까? 그것은 모두 기성세대의 교육부재라고 생각하는데 새로 입주한 멀쩡한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모두 뜯어내고 새로운 인테리어로 바꾸는 부모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문자답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되면 으레 자기 서명이 들어있는 금장 손목시계를 주요한 인사들에게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과거 군사정부에서부터 최근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의례적인 것이 되어있다. 그것은 일치감을 주기 위한 것인지 통치권자의 권위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사실은 새로운 대통령마다 시계를 준다면 이전 대통령이 준 시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 버려야할 지 염려된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되실 분께서는 부디 시계를 선물하지 마시고 주요 인사들에게 멋진 환경 재활용품을 선물하시면 어떨지 간청하고 싶다.
이와 같이 우리는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부지불식간에 Affluenza에 오염되어 있으며 각자가 풍요로움은 절제를 통하여 누려야 함을 깨달아야 하며 마음은 풍요를 누리면서 생활은 검소하게 할 수 있는 최대 공약수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현대의 이러한 무분별한 과소비 문화는 경제적으로도 국가에 큰 부담을 줄뿐만 아니라 환경 친화적인 사회구축에도 역기능을 만들어 더 많은 환경비용을 지불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나는 꽤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부엌 찬장이며 욕실이며 거실 등이며 이제는 그야말로 한물간 재질과 디자인들이다. 그 뿐 아니라 방안에는 집사람이 결혼시 가져온 장롱과 화장대가 20여년 전 그대로이다. 최근에 분양된 아파트를 방문할 때다 우리 집의 가구와 비교하면 요즘 유행하는 리모델링을 하여 새 것으로 바꾸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기능에는 별다른 차이도 없고 특히 아이들 교육비 걱정에 봉급쟁이 실력으로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 물건들이 모두 폐기물로 버려져 처리되어야 하니 환경사랑을 외치는 나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남의 집 2층 전세에서 출발한 신혼살림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그 때 신혼의 기쁨이 칠 벗겨진 장롱의 세월만큼이나 중후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특히 나는 지난 해 대전시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공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폐목재를 파쇄하여 수분 조절제인 톱밥을 대신하고 있었으나 가재도구로부터 발생된 폐목재에 붙은 라커성분이 퇴비 제조시 문제가 된다고 담당자가 보고하였다. 이러고 보니 동사무소에 처리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스티커를 폐가구에 붙여놓았다고 해서 폐기물 처리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임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가끔 이사를 떠나기 전에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가재도구나 가전제품 또는 옷가지 등을 자기 집 안마당에 전시하고 속칭 “Garage Sale”을 몇일씩 실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내게는 효용가치가 다소 떨어진 물건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소중한 그리고 필요한 물건이 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서로 궁합이 맞는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경제원리가 어디 있으며 이런 환경사랑이 어디 있겠나 싶다.
그래서 나는 환경사랑은 경제원리를 극대화하며 국가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근검절약의 실천에 있음을 말하고 싶다. 남보기에 화려하지도 않고 첨단 유행을 좇아가는 삶은 되지 않을 지라도 자기의 분수를 알며 부족하지만 자족하는 기쁨을 소유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지 우리는 안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뜯어내고 고급 인테리어로 치장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고 수치임을 인정하는 의식구조가 우리 사회에 시급히 뿌리내려야 한다. 외모를 자랑하기보다 아름다운 환경사랑의 마음을 자랑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따라서 나는 부족함으로 넘치게 하는 환경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몇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는 음식물의 유통기한에 따른 가격 차별화의 제도적인 정착이다. 가끔 백화점에 가면 테이프로 둘둘 말아놓은 유제품을 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덤으로 파는 것이다. 이것은 제품의 하자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가지고 가서 냉장고에 차게 보관하였다가 금방 소비하면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가끔 제 집사람에게 “여보 저것 업었다 업었어” 하면 저의 집사람은 금방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장바구니에 넣는다. 사실 이것이 내가 집사람과 함께 누리는 쇼핑 재미중의 하나이다.
유통기한의 문제는 비단 유제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식품은 유통기한이 있는데 유통기한이 지나면 모두 폐기물로 처리하여야 한다. 몇 년 전 경기도 안산의 한 폐기물 처리장을 가보았는데 그곳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과 양념김 등 가공식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 많은 식품들이 포장도 뜯어지지 않은 채 모두 소각로에 들어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비용은 모두 제조원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고 결국에는 소비자 물가를 상승시키는 원인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하루 두끼로 연명하는 결식 아동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편에서는 귀중한 식량자원이 모두 재로 변한다는 사실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료품에 대해서는 가격을 차별화하여 저렴하게 팔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거나 고아원이나 양로원 또는 영세민 또는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기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식품제조 또는 유통업체에 대해서는 정부의 인센티브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어떤지 제안하고 싶다.
미국에서는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을 판매하는 Thrifty Store를 운영하는 곳이 있으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함으로서 식량자원의 낭비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울러 폐기식품에 의한 환경오염문제를 개선하고 있다.
둘째는 국민의 자원이용에 대한 의식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폐기물을 버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처리 스티커만 붙이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폐기물 전문 처리업체에 위탁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지속된다면 Affluenza에 의한 망국병을 다스릴 방법이 없다.
이와 같이 폐기물 처리문제를 처리비용 인상에 의한 단순한 논리에 의하여 끌고 갈 경우 불법매립 및 불법투기의 문제는 오히려 증가할 수밖에 없고 가진 자는 처리비용의 부담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처리비용에 의존하는 폐기물 발생억제 정책을 Positive 정책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발상을 전환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정해진 내구연한 이상을 유지하는 건물을 지속적으로 소유할 경우 다량의 폐기물을 발생시키고 리모델링을 한 동일한 내구연한의 건물과는 별도의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재생골재를 사용한 건물이나 중수 재이용시스템을 갖춘 건물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제공할 수 있는 각종 특혜방안을 적극 강구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것은 폐기물 발생에 대한 책임이 처리비용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인식시켜주고 불편하지만 자원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자에게 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자긍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환경보존을 위한 자원절약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학용품 오래쓰기 운동이라든지 재활용품 이용 장려운동 등을 되살려서 무조건적으로 새것만을 선호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기존의 물건을 오랫동안 사용하도록 하고 재활용품을 사용하는 것이 자랑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대롱에 꽂은 몽당연필로 침을 묻혀가며 한 자 한 자 누런 갱지에 받아쓰던 그 시절과 모나미 153 볼펜심을 갈아 끼워가며 공부했던 시절의 가난한 마음 없이는 오늘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원이용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자원절약 정신을 어려서부터 심어주는 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현재의 망국병을 근절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가 될 수 있으며 환경사랑 실천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셋째 국가는 체계적인 자원 순환형 사회구축을 시급히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국가자원의 고갈 또는 부족현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골재부족으로 인하여 외국 골재의 수입이 거론되고 있으며 물부족 현상으로 인하여 자치단체끼리 물확보전이 일어나거나 갈수기의 격일제 급수 또는 3, 4일제 급수는 기본이 되고 있다. 전력부족 현상도 발전소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몇 년 내에 도래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인구 증가율은 답보상태인데 반하여 자원고갈 현상을 훨씬 증가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Affluenza에 의한 부작용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의 크기도 소형 평수보다 대형평수를 선호하고 이에 따라 골재 사용량은 비례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 물 또는 전기의 사용량도 필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대형화 또는 자동화되면 될수록 자원은 그만큼 고갈되고 환경은 파괴될 수밖에 없고 국가적인 환경 지불비용도 증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마음 가운데 자리잡은 허례허식과 외형을 자랑하는 의식구조의 혁신이 필요하며 차선책으로 필요한 것은 자원순환형 구조를 통하여 자원의 활용을 최대한 극대화시키는 방안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가용 자원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확보하고 이 자료를 근간으로 하는 가능한 자원순환구조가 무엇인지 계획을 세워 파악하는 것이 부족한 자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선책이며 부강한 국가 건설의 초석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발달한 문화문명으로 인하여 자본주의가 주는 최대의 혜택과 안락함을 누리고 있으며 미래에 과학의 힘에 의한 어떤 시대가 도래할지 상상을 초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이 주는 편리함 및 안락함은 우리 인류에게 마약처럼 우리를 유혹하고 있으며 더 좋은 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차별이 사회의 큰 병폐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자신이 소유한 옛 것을 불만족스럽게 여기고 유행과 풍조를 좇아 새 것을 추구하는 시대의 가속화를 의미하며 결국 이러한 세태는 가정경제의 부실 더 나아가 국가경제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현재도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상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도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부족함을 만족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자원사랑의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때이며 이런 가운데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지혜가 무엇인지 각자의 해법과 원칙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 나라가 일제 점령기와 한국 전쟁의 폐허로부터 일어났음을 상기하여야 하며 가난한 시절의 고통을 감내하며 허리띠를 졸라맨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와 땀이 어려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환경사랑의 정신은 가난함을 부족함으로 여기지 아니하면서 자기 소유를 만족할 수 있는 자족의 정신이며 덜 쓰면서도 풍요롭게 살수 있는 실천의 정신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수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폐기물열분해연구센터, 공학박사>
수정일 2003년 03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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