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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실버] (16) 산속에서 수십년째 100일기도를 반복해온 안순용
2006/03/13 00:00
입력 조회수 : 766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한눈팔지 않고 혼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인생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결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뜻을 이루지 못하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해 보시라.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몸과 마음을 바쳐 간절히 기도를 하면 그 갸륵한 뜻이 하늘에 닿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안순용(64)씨를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적이 드문 산속에 들어가 나홀로 움막을 짓고 살면서 지극 정성으로 100일 기도를 밥 먹듯 드리는 사람이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100날을 하루같이 노숙(露宿) 기도를 해왔다.
한두번도 아니고 일이십번도 아니고 무려 30번이나 100일기도를 한 사람이다. 평생에 단 한번 하기도 쉽지 않은 100일기도를 마치기가 무섭게 하고 또 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이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도대체 그의 인생에 무슨 사연이 있기에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서 그토록 100일 기도를 반복하면서 수십년 세월을 살아왔을까.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그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는 경기도 포천군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4살 때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14살 때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자손이 없는 큰 집에 양자로 들어가 살다가 큰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19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 1년만에 입대하여 군 복무 중 큰아버지(양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큰어머니(양어머니)는 아예 집을 나가 버렸다. 아내는 처가로 가서 생활을 하였고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여 다시 아내와 신혼살림을 시작했지만 살길이 막막했다.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팔아서 근근이 먹고 살아야 할 판에 엎친데 겹친 격으로 나라에서 나무를 하지 못하게 하자 그는 결국 고향을 등지고 무작정 상경, 서울 근방 허름한 곳에 방을 얻어 살면서 닥치는 대로 노동을 하였고 급기야는 연탄공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노동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던 그 시절에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불합리하게 대우를 받으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가서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공장 동료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젊은 혈기와 패기로 똘똘 뭉쳤던 그는 문제점을 뜯어고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런 와중에 그는 노조위원장에 선출 되었고 그의 노동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노동운동을 시작으로 각종 선거(국회의원, 대통령)판에 뛰어들어 야당선거운동을 하였으나 번번이 낙선하는 아픔을 겪었고 그때마다 노동운동을 빌미로 다니던 공장에서 쫓겨나 결국 동일한 직종의 공장에는 아예 취업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살길이 막막해지자 세상 살 의욕도 사라져 죽으려고도 해 보았다. 바로 그때 고향 동네 어른들로부터 들어오던 옛이야기(민담이나 야사정도) 하나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바로 “산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통하면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나 같이 돈 없고 빽 없는 노동자들도 차별 받지 않고 떳떳이 사는 세상,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백일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그 백일기도라도 한번 해보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사무쳐 들어왔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해고수당도 퇴직금도 없던 그 시절에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쫓겨난 회사에 찾아갔다. 그때가 65년 4월경.
그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고 노조활동으로 불이익을 받고 쫓겨난 이상 힘들게 일한 대가(퇴직금, 해고수당)를 받아야겠으니 내놓으라고 회사 담당자에게 요구했다.
그러자 회사에서 바로 봉투를 두 개 가져왔는데, 하나는 퇴직금, 하나는 해고수당으로 당시 합쳐서 3만원쯤 되는 제법 큰 돈이었다. 그 돈을 받아가지고 그 길로 집에도 알리지 않고 곧장 서울역으로 향했다. 갈 곳을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호남선 열차에 몸을 실었고 새벽 4시 50분경 목포에 내렸다.
생전 알지도 못하는 타향에서 다시 시골버스를 타고 작은 마을이 있는 곳까지 가서 내렸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무주 부근이었다. 거기서부터 산속을 헤매다가 우연치 않게 선운사 참선당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 선운사 스님 한 분께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죽기로 맹세하고 서산대사나 사명대사같은 재주를 부릴 수 있도록 100일 기도를 드리고 싶다고 떼를 썼지요. 그랬더니 스님께서 ‘백일기도란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니 어서 돌아가 가정생활에 충실하라’ 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렇게 가정까지 포기하고 왔으니 꼭 한번만이라도 백일기도를 하게 해달라고 거듭 간청하면서 매달린 끝에 마침내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말로만 들었던 백일기도에 대해 스님은 그간 사찰을 통해 전수되어 오던 기도의 경문과 규례를 그에게 하나하나 알려주었고 그는 그대로 따라 했다.
그때 기도를 통해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믿음 및 정성이 갖는 기도의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백일이 차가면서 발생한 신비한 일과 현상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기억으로 마음속에 남아있다.
26살 때 처음으로 백일기도를 마치면서 아직은 ‘내가 세상을 더 경험해야 하고 가정도(아들이 이때 4살)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아직은 때가 아니다, 언젠가 때가오면(마음에 확신이 서면) 기필코 기도의 세계를 통하여 뜻을 이루어 보겠다.” 라는 각오와 판단이 들었다. 결국 후일을 약속하며 백일기도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닥치는 대로 열심히 노동을 했다.
평범한 노동자로써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오다가 아들이 장성하여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스스로에게 약속한, (평생 마음속에서 한시도 잊어보거나 떠나지 않았던) 지워지지 않는 기도의 세계에 대해 이제는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가정을 꾸려오면서도 중간 중간에 직장을 그만둔 일이 몇 번 있으며 그때마다 백일을 잡아 집에서 혹은 산에서 혼자 천막을 치고 기도했다.
맨 처음 산에 들어갔을 때에는 앞서 말한 대로 선운사 스님이 시키는 대로 기도를 했지만 막상 백일이 지난 후에도 특별한 변화가 없어 다시 몇 번을 동일하게 해봐도 기도중 신비한 체험은 동일한데 뜻한 바가 언제 이루어질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기도 중에 나타나는 할머니, 할아버지(흔히 산신이라고 표현)의 계시의 말 혹은 허공에서 들려오는 말(백일기도 7번째 ‘ XXX대통령의 운세는 이렇다’ 등)에 속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아들의 대학 졸업을 계기로 기도에 몰입하기로 작정하고 식구들이 모인 가운데 그간 살아온 날들에 대한 정리를 한 다음 가정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젊어서 느꼈던 세상살이에 대한 여러 가지 소망을 늦게나마 기도로 이루어 보겠다는 집념으로 제일먼저 천주교의 산지라고 불리는 경기도 광주 천진암에서 천막을 치고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천진암에서 대략 7년 동안 그간의 백일기도와 합쳐 22번의 백일기도를 했고 중간중간에 막노동을 하며 기도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고 뜻을 이루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백일기도를 준비하면서 이따금씩 노동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보는 사람의 운세가 저절로 입에서 튀어 나오려 하고 말을 안 하고 참으면 입이 돌아가는 현상이 일어난 적도 있다. 시대적인 정치 상황과 향후의 일들이 마구 떠오르기도 하고 기도의 자리(소위 명당자리)를 잡아주는 신기한 경험도 많이 접했다.
천진암에서 7년간 경험한 것을 토대로 강원도 모곡 암산(바위)으로 들어가 87세의 신통한 할머니를 모시고 6년간 백일기도를 드렸다. 할머니를 찾아가는 날 할머니께서 ‘3년전에 당신이 이 산에 온다는 선몽(계시)을 받았는데 왜 이제 오느냐?’ 며 ‘여기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
많은 방문객들로 기도에 방해가 되자(백일기도 중에는 일체 사람을 만나지 않음)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할머니가 아는 분의 소개로 춘천 대룡산으로 가서 또 백일기도를 드렸다.
백일이 끝나갈 무렵 기도중에 웬 할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이제 네가 소망하는 일이 다가오는데 왜 미륵불앞에 가서 기도하지 않느냐’고 말하곤 사라져 버렸다.
백일기도를 마치고 다시 아는 분의 소개로 부랴부랴 미륵불이 있다는 상주의 작은 절을 찾아 자초지종을 털어 놓은 후 지난 2002년 12월 2일 마침내 30번째 백일기도를 미륵불 앞에서 드렸다.
“26살에 백일기도를 시작한 것이 어느 덧 30번째의 백일기도가 끝났고 제 나이 64살인 지금도 100일 기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소망이 현재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해서 오늘의 저를 비관하거나 지난 기도 세월을 후회 하는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제 기도할 여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금강산에 가서 기도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다. 대한민국에서 기도를 통해 보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북녘 땅 화합을 위해서도 꼭 금강산에 가서 백일기도를 해보고 싶단다.
기도를 하면서 신비의 체험도 많이 접했다. 22번 기도 때는 불덩이가 머리로 들어와서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깜짝 놀라 몸이 수십 번 공중에 떴다 내려앉기를 반복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몸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할머니가 나타나 “무슨 나무뿌리를 해먹어라. 내가 가르쳐 주는 나무뿌리를 먹어야 인간 노릇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눈을 떠보니 그 나무뿌리가 바로 움막 위에 있어서 그 뿌리를 먹고 몸이 가뿐하게 나았다. 뿐만 아니라 몇십년을 앓아왔던 관절염까지 완전히 나았고, 그 뒤로 지금까지 약이라는 건 먹어본 일이 없다고 한다.
홍천의 할머니 절에서 드린 세 번째 100일 기도 중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할머니를 들쳐 업고 정신없이 내려오는 순간에 할머니가 살아나셨다. 그래서 100일기도를 또 시작했는데 거의 1주일 남았을 때 심부름 하는 아이가 올라와서 “아저씨,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큰일 났어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려가 보니 완전히 숨이 멎어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 손을 붙잡고 그는 울부짖었다. “할머니, 내가 여기서 누굴 의지하겠소. 할머니를 의지하고 기도를 하는데 날 성공시켜야지 이렇게 돌아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할머니의 이마가 빨개지면서 핏기가 코밑에서 입술까지 내려오더니 할머니가 숨을 내쉬면서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119 구급차를 불러 할머니를 병원에 보내고 100일기도 끝내고 병원에 가서 모셔왔다.
8번째 100일기도중에는 호랑이가 토끼를 입에 물고 그의 움막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호랑이한테 “그렇게 귀중한 몸을 인간이 보면 숨겨야지 왜 그렇게 입에 물고 눈을 뻔히 뜨고 보고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니까 호랑이가 눈을 감고 있다가 입에 물었던 토끼를 움막 앞에다 뱉어놓고 슬금슬금 산으로 뒷걸음질쳐 사라졌다는 것이다.
“제가 일만 벌이면 제일을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신에서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6살에 100일 기도를 시작해서 100일 기도로 일생을 다 바친 사람입니다. 기도에서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지요. 인생의 모든 것을 저는 기도에서 배웠습니다.”
기도는 움막에서 나와 밖에서 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하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기도를 한다. 식사는 아침 점심만 먹고 양치하고 몸을 씻고 기도 준비를 한 다음 무릎 꿇고 앉아서 기도를 한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2-3시간씩 4차례 기도하고 100일이 그렇게 쳇바퀴처럼 돌아간다. 기도가 끝나는 시간, 잠들어서 못 일어날까 봐 깨는 시간, 시작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계를 여러 개 갖다놓고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 기도 중에 깜빡 졸아도 안 되고, 빨라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되고 항상 그 시간에 시작해서 100일 동안 하나로 끝난다.
“기도중에 신비한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언제 총을 맞을지 기도 중에 그 말이 내려오는데 그 말을 어떻게 사전에 발설합니까. 내가 알고 있지도 않고 잠깐 기도 중에 들은 말인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정확하게 들어맞더라구요. 그때는 말이 내려왔지만 이제는 그런 말이 안 내려 와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생긴 것 같아요. 기도 중에 스치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지금은 밝힐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아직은 하고자 하는 일이 그게 아니라 따로 있기 때문이란다.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기도 중에 할머니가 “너는 부처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지금 제 마음의 신조는 부처와 같은 일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또는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그런 걸 한번 해봤으면 하는 게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올바른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어떤 종교든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결국엔 모두 하나가 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큰 소망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백일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절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꼭 금강산에 가서 백일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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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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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3월23일 23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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