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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바람의 수필] (28)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
2006/10/13 00:00
입력 조회수 : 727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은 세상의 끝인가. 아니면 죽음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일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살아생전에 풀기 어려운 문제일 것 같다.
나라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는 삶과 죽음은 세상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달라지는 가장 큰 일이다. 왜냐면 세상은 내가 살아있을 때만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살기 좋은 낙원 같은 세상이 온다 해도 나 자신이 죽은 후라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전체를 놓고 볼 때는 나 같은 개인의 삶과 죽음은 별로 큰일이 아니다.
내가 죽는다고 잘 돌아가던 세상이 갑자기 멈출 것도 아니다. 또는 다른 누가 사망한다 하더라도 태양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개인의 차원과 사회의 차원에서 보는 삶과 죽음의 의미가 이렇게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삶과 죽음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본다. 죽음도 삶의 연장으로 보고 싶다. 내가 죽었지만 내 자손이 살고 내 이웃이 살고 내 민족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나는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내 핏줄이 내 민족이 내 인류가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이상 나는 영원히 죽은 것이 아니다.
어머니 가슴에 자식을 묻는 다는 말이 있다. 어린 자식이 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뜰 때 죽은 자식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자식은 가고 없어도 부모의 가슴속에는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가 죽었다고 세상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꽃나무를 보라. 꽃이 피고 바람에 날리어 꽃씨가 되어 다시 싹이 트고 자라서 그때가 되면 똑같은 꽃이 핀다.
꽃나무 하나를 볼 때는 일생이 짧지만 꽃씨로 남아 해가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다시 피고 자라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자기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본다. 죽음이 두려워서 살아있는 동안에도 고민하고 방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흔들리지 말고 오늘 할 일을 다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나는 아주 어려서 죽을 번한 고비를 넘겼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음식을 먹고 급체를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나를 부둥켜안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허둥대던 모습만 기억이 난다. 결국 동네 어른한테 침을 맞고 위기를 넘겼지만 그 순간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아마 마약을 먹고 환각상태에 빠진 기분이 그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느낀 묘한 쾌감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고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잠이 들었다. 잠결에 괴로워서 몸부림을 치다가 눈을 떴다.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다. 한밤에 실내에서 피우는 난로의 연탄을 갈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때도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기분은 묘한 환상을 느꼈다. 병원에 까지 실려 가서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또 한번 군에서 제대하고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종업원들이 장난을 한답시고 나의 목에 두른 목도리를 양쪽에서 잡아당겼다. 양쪽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잡아당기는 힘에 중앙에 앉아있는 나의 목이 조여들었다. 나중에는 환각에 빠졌다. 가물가물하면서 의식이 몽롱해지더니 몸도 마음도 붕 뜨는 기분이 들면서 정신을 잃었다. 내가 느껴본 무의식중의 최고의 환각상태였다.
그 뒤로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내가 눈을 떴을때는 나의 목도리를 양쪽에서 잡아당긴 친구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내가 살아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가만히 있어서 위험에 처한 것을 몰랐다고 한다. 나역시 내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양쪽에서 서서히 내 목에 감긴 목도리 양끝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내가 깨닫지 못할 정도로 목이 졸린 것이다. 살아있는 개구리를 가마솥에 넣고 끓일 때 개구리가 죽을 때까지 도망갈 시도도 안하고 꼼짝없이 죽는 것도 서서히 달구어지는 물에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는다면 뜨거워서 기겁을 하고 죽는 순간까지 발악을 하면서 펄떡거릴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염세주의자도 낙관주의자도 아니다. 가톨릭 신자이긴 하지만 영세만 받은 신자일 뿐 성당에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 사이비신자이다.
굳이 내가 나를 분류하자면 현실론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 때문에 현실을 허송세월하면서 괴로워하지도 않을뿐더러 미래에 대한 환상의 장밋빛 꿈만 바라보면서 살지도 않는다.
그냥 현재 처한 현실에서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할 뿐이다. 현실이 견디기 어렵거나 괴롭다고 현실을 도피한다면 아무일도 할수 없다고 본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주변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군에 있을 때였다. 같은 내무반에서 같이 먹고 자고 훈련하는 졸병들이 사고로 떼죽음을 당했다.
수십명이 타고 이동중이던 작업차량이 낭떠러지계곡으로 추락한 대형사고가 났다. 7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생사가 엇갈리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도 고참이 죽었다며 서럽게 통곡하던 후배가 있었다. 조금 지나니 그 후배도 말이 없었다. 확인하니 서럽게 울던 그 후배도 죽은 것이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앉아 식당에서 농담하며 밥을 먹던 동료들이 무더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기가막히게 노래를 잘하던 운전병 이상병. 하필이면 그날 그 이상병이 몰던 차가 사고가 난 것이다. 그런데 사고 차량에 타고 있던 한 졸병은 사고가 나자 10KM가 넘는 부대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와서 사고가 났다는 신고를 하고 기절을 했다.
그 졸병의 신고를 받고 부대서는 사고가 난 것을 알았다. 죽어도 신고를 하고 죽어야겠다는 한가지의 신념 때문에 사력을 다해 먼길을 달려와서 신고를 하고 쓰러진 것이다. 대학에 다니는 예쁜 누나를 소개해 주겠다는 부산에서 온 졸병도 죽었다. 작업차량에 사람이 없어서 다른 사병대신 대타로 나간 후배도 죽었다.
한사람 한사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왜 그리 죽은 후배 모두가 가슴아프고 마음 저린지 지금까지도 그때의 악몽을 잊을수가 없다. 어디 그 뿐이랴. 한번은 회사로 전화가 왔다. 중학교 동창이었다. 20리길이 넘는 거리를 함께 통학하던 친구였다. 중학교 졸업후 몇십년만에 처음 들어보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다음날 당장에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철도청에 다니는 친구였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으니 눈물이 핑돌았다. 장남으로써 허리가 휘도록 쓸 것 안쓰고 먹을 것 안먹고 돈을 모아 이제서야 겨우 작은 아파트를 한채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집에 시골의 부모님을 모셔오게 되었다며 환하게 웃던 친구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아보였다. 그러나 웬비극. 며칠후에 전화가 왔다. 그친구의 부인이었다. 내가 만난 그친구가 죽었다는 것이다. 웬 이런 날벼락이 있나 싶어 놀래서 뛰어나갔다. 기가 막혔다. 근무중에 피곤해서 누웠는데 그대로 돌연사 한 것이다.
며칠후 다시 만나 술한잔 하기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한채 몇십년만에 만난 고향친구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갔다. 겨우 집장만해서 부모님 모셔오게 되었다며 좋아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생각만 해도 가슴아픈 고향친구 하나. 키가 작달막하지만 제법 속으로 꽉차보이는 야물딱진 녀석이었다. 이친구 뱀을 유별나게 좋아했다. 뱀이 몸에 좋다면서 날것으로 껍질을 벗긴채로 아작아작 씹어먹곤 했다. 그리고는 뱀을 먹어서 기운이 솟아난다면서 힘자랑을 해대던 친구였다. 막걸리도 바가지로 가득 퍼서 단숨에 꿀꺽 꿀꺽 마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친구가 그토록 몸에 좋다는 뱀 때문에 결국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생으로 먹은 뱀이 사망원인이었던 것이다. 뱀속에서 기생하는 사충이 몸속에서 살아서 번진 것이다. 되늦게 병원에 실려갔지만 이미 손을 쓸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몸에 이것보다 더좋은 것은 없다면서 자랑스럽게 먹은 뱀이 독이 되어 결국은 생목숨을 빼앗아간 것이다.
비운에 간 또 한명의 친구가 있다. 같은 회사 동기였다. 그러다가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둘이는 서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친구의 회사와 내가 다니는 회사가 걸어서 10분밖에 안되는 거리였기 때문에 둘이는 자주 만났다. 주로 덕수궁을 끼고 걸어 중간쯤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는 이런 저런 얘기등을 많이 나누었다. 둘이는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만나서 풀곤 했다. 언제나 말이 적고 인정이 많으며 순박한 모습의 친구였다.
나는 고향도 비슷한 그친구가 마음에 끌려 몇 년동안 거의 일주일에 한번꼴로 만났다. 그런데 이친구도 비명에 가고 말았다. 직장에서 피곤하다면서 집에 일찍 왔다. 그런데 이친구 머리가 아프고 춥다고 하니까 부인이 감기 몸살인줄 알고 약국에 가서 감기약을 사와 먹이고는 한숨 자고나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결국은 한밤에 사태의 심각함을 알게 되었고 병원에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고혈압으로 인한 돌연사였다. 잠실의 13평짜리 낡은 아파트를 장만했다면서 들어갈 때 대출받은 돈을 아직도 못갚았다고 걱정하던 그 친구는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을 남겨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나는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보면서 나름대로 배운 것이 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억지로 욕심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져 살아있는 동안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가진 것 없고 부족하더라도 때로는 아래를 내려다 보며 자신의 처한 환경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것인지 살아있는 동안에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다고 본다.
<피플코리아/김명수
www.p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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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4년 04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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