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4.14.09:47 |
 [실미도684부대시리즈 2부] (7) 실미도 취재길 한밤중 바다에서 죽음과 싸운 4시간의 사투(1)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 생사가 달린 위험에 내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평소에는 그 무슨 생각을 하고 그 어떤 행동을 해도 마음의 여유가 있지만, 훨훨 타오르는 불속이나, 급류가 들이닥친 물속이라면 생사의 기로에 선 그 순간만큼은 터럭 같은 생각하나, 행동하나에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바로 나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다.

2004년 8월29일 저녁부터~30일 오전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실미도를 품고 있는 섬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에서 열린 전국보습교육협의회 임원 워크숍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의 초청으로 우연히 참석하여 평생 잊지 못할 죽음의 체험을 했다.

갯벌체험을 하다가 한밤중 실미도 근처 서해바다 한 가운데에 빠져 조난당하는 사고로 두 시간동안 필사적인 몸부림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나왔다.

밤은 깊어 이미 자정으로 기울고 아무리 천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멀리 불빛만 아스라이 보일뿐 날 구원해줄 사람도, 내가 의지할 구조물도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 나홀로 버려져 생사의 기로에서 허우적거리는 체험을 내가 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상상 못했다.

워크숍 일행 70여명은 29일 저녁 하나개 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물이 빠진 썰물 때를 이용하여 갯벌체험에 들어갔다.

주어진 시간은 저녁 9시 30분부터 11시30분까지 두 시간. 70여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의 대표는 주의사항으로 11시 30분이 넘으면 빠졌던 물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하므로 위험하니 철수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는 순간 곧바로 빠져 나오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였다.

마침내 갯벌 체험의 시작을 알리는 9시 30분. 나를 워크숍에 초청한 사람과 둘이 짝이 된 나는 한손에 손전등을, 다른 한손엔 구두와 양말을 젖지 않게 담은 비닐 봉다리를 들고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갯벌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 짝은 개펄에 묻힌 바다 골뱅이를 잡으려는 생각으로 더욱 빠른 걸음으로 초반부터 나를 앞서가기 시작했고 주기적으로 뒤를 돌아보면서 빨리 따라오라고 손전등 불빛을 빙빙 돌리면서 “피플...피플...” 크게 외쳐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     ©피플코리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짝이 흔들어대는 손전등 불빛과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손전등 불빛도 피플코리아를 운영하는 나를 빗대서 부르는 "피플...피플..." 소리도 아예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간 내 짝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전진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 짝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주변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걷다 보니 해수욕장으로부터 5Km 거리까지 왔다 싶었을 때 갯벌바닥 골이 파인 부분에 조금씩 물이 차기 시작했다.

아하! 이러다가 물이 다시 들어오는 건 아닌가 싶어 조금 긴장은 하였지만 설마 호루라기 소리는 들리겠지 하고 더욱 깊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간절히 기다리던 호루라기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갯벌 체험에 뛰어든 대부분 사람들이 초반에 조금 전진하다가 되돌아서 빠져 나왔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앞서간 내짝이 전진하는 중간중간 몸을 돌려 나를 부르며 외칠때마다 출발지점 불빛을 확인하고 안쪽으로 계속 방향을 틀면서 전진을 했다는 것을 하루가 지나고 나서 알았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전진을 계속한 내 발길 앞에 물찬 웅덩이는 더욱 자주 나타나고 어느 순간부터  “끄으윽 끄윽”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 졌다.

앞에 간 사람이 있으니 앞으로 가다보면 누군가 있겠지 하고 앞만 보고 갔다가 앞에도 뒤에도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긴장이 되었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얼굴을 아는 단체의 회원이라 가다가 자신의 조와 떨어져도 뒤따라오는 또 다른 조와 합류되어 행동을 했지만 나는 우연한계기로 참석한 이방인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혼자 행동하다 보니 방향을 잘못 잡아 완전히 떨어져 혼자가 된 것이다.

유일하게 나를 초청한 내 짝도 초반에 잠깐 앞으로 뛰쳐나가면서 다른 일행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소리만 들었을 뿐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유일한 그마저도 놓치고 혼자가 되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나.  순간 머리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갯벌 속으로 걸어 들어온 거리가 워낙 멀다 보니 전진하는 쪽의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도착지점에서는 엄청난 거리 오차가 생기는 것을 계산 못한 것이다.  


▲     ©피플코리아


어림짐작으로 이미 출발지점으로부터 6Km는 떨어진 거리. 아! 큰일났다 싶어 발길을 돌렸다. 마음이 급해 지면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돌아나오는 길인데도 갯벌바닥 음푹패인 골 웅덩이는 더욱 길고, 더욱 넓은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웅덩이를 피해가는 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강처럼 빠르게 변해가는 갯벌 바닥의 물웅덩이가 더욱 빠르게 자주 나타나면서 밀물이 밀려오나 보다 생각이 드는 순간 아무 정신이 없었다.

앞뒤를 잴 시간은 더욱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전진 할 뿐이었다. 뛰고 달리고 별짓을 다했다. 

마음속으로는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전진을 계속 했지만 사실은 방향감각을 잃어 자꾸만 왼쪽으로 걸어들어가는 결정적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때는 그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는 전후좌우 불빛을 분간 못한 나는 왼쪽에서 나오는 불빛을 오른쪽에 있는 하나개 해수욕장 불빛으로 잘못 알고 그쪽으로만 전진을 계속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전진할때 계속 가다 보면 앞에간 내 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진을 하다가 돌아나올때 그만 방향 감각을 잃은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전진할때 생긴 오차와 돌아올때 생긴 오차가 더욱 큰 오차를 만들어 하나게 해수욕장 왼쪽  바다속으로 들어간 꼴이 되었으니 어쩌면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내가 처한 극한상황에서 시간관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급하면 다급할수록 지금 당장 처한 현실에 인간의 지능지수는 단순세포가 되어간다.

이제는 바닥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그토록 넓게 바닥을 드러냈던 갯벌에 생긴 물웅덩이마저 모두 사라져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디가 물웅덩이가 있던 자리고 어디가 발목까지 물이 찬 갯벌 바닥인지 그것마저 분간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 내 앞에 현실로 벌어진 것이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전진을 했지만 이 위기를 빠져나가기에는 이미 시간이 촉박했다. 

 
▲     ©피플코리아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느껴지는 시간관념 거리관념은 오직 체감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극한상황에 빠져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 내 머릿속 생각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행동은 민첩해서 100M 세계 신기록 선수보다 더 민첩할 뿐이다.

지금 1초는 평소 한 시간보다도 더 길고 중요할 뿐이다. 숨이 막히도록 달리고 또 달렸지만 아직도 나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이제는 어찌해야 할까.

이미 물은 계속 차올라 무릎까지 잠겼다. 죽을힘을 다해 달려도 눈앞에 닥친 위기를 빠져 나갈 방법은 없었다. 

물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나를 약이라도 올리는 듯 내 주위를 빙빙 돌면서 내 귀를 어지럽히는 갈매기 울음소리는 더욱 잦아졌고 해면 수위는 계속 높아져 죽음의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 김명수 인생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구나. 그래도 지금까지 나름대로 가치있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현실에 충실하며 누구못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우리 마누라 나 없으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 아아 내마누라 불쌍하고 가엾어서 어이할꼬... 내 딸 민주, 내 아들 현식이... 내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를 제몸처럼 아껴준 친구....

순간순간 머리를 전광석화처럼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이 아직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하지만 그런 절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을수 있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내가 나보다는 남을 위해서, 밝고 건전한 세상을 이루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 왔고, 내 마누라가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꼬박 밤을 새우는 철야기도를 일주일에 한번, 두 번씩 계속 해왔기 때문에 나는 죽지 않는다는 확실한 믿음이 내 마음속에 차고 흘러 넘쳤다.

아무리 집채만한 파도가 나를 덮쳐도 단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모든 지혜를 다 짜내고 최선의 노력을 한다면 여기서 반드시 살아나갈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나를 안정시켰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사방에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불빛이 적어도 4~5Km는 떨어져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거기까지 가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될까를 머리가 터지도록 생각했다. 불빛을 향한 전진은 계속 하면서 생각도 함께 계속 하면서.

▲     ©피플코리아
물론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을 계속 흔들어대면서 구조 신호도 계속 했다. 하지만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불빛이 눈에 뛸 리가 없었다. 

이미 물은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이제는 물속에서 걷기조차도 힘이 들었다.  뒤로도 달려보고 앞으로도 달려보고 좌로도 달려보고 우로도 달려봤지만 어느 한쪽 더하고 덜한 곳이 없는 사방이 모두 물바다였다.

우선 손에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정성스레 묶었다. 손에 힘을 다해서 몇 번을 반복해서 묶고 또 묶어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그 비닐봉지 속에는 내가 물에 젖지 않게 집어넣은 내 구두와 내 양말이 들어있다.

그리고는 웃옷을 벗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모두 4개. 팬티. 러닝셔츠. 하얀 반팔 라운드티. 그리고 얼룩덜룩 체크무늬 반바지. 일단 손에 든 비닐봉지를 묶어 밀봉을 시키고 나니  마음의 위안이 조금 되었다. 그 다음에는 반팔 티셔츠를 벗어 비닐봉지 끝에 묶고 다시 내 팔목에 묶었다. 

내가 지치고 탈진을 하여 비닐봉지를 잡을 기력조차 모두 빠져 나갈 경우 손으로 묶어 놓았으니 그만큼 안전하게 내 생명을 지켜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연신 까마득한 불빛을 향해 전진을 하면서 1천분의 1, 아니 1만분의 1%라도 구원자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손에 든 손전등 후레시 불빛을 사방으로 빙빙 돌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다. 

 후레시를 들고 비닐봉지를 들고 그 상태로 옷을 입고 벗고 매듭을 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이제 물살은 더욱 빨라져 바다수면이 내 허벅지를 덮었다. 다시 상의 러닝셔츠를 벗었다. 아무래도 물을 오래 먹으면 그 얇디얇은 러닝셔츠 한 장이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 그만큼  몸놀림이 둔해질 것 같아서 취한 긴급 행동이었다. 

 그 옷을 한쪽 손에 묶고 티셔츠를 풀러  연결했다. 내 팔목과 러닝셔츠와 티셔츠와 나의 목숨을 지탱해줄 구명용 비닐봉지를 모두 연결해 묶은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반바지를 벗었다. 

그것 역시 물을 먹으면 나중에 몸을 움직이는데 그만큼 둔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벗은 바지 역시 버리지 않고 오른쪽 팔에 끼어 붙잡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구명기구를 모두 완성했다. 길고도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 되었다.              

수심은 더욱 깊어져 이제는 몸을 헤치고 나가기가 힘이 들었다. 체력 소모를 최대한 줄여야 겠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이지 않고 후레시를 사방으로 살펴 지형지물이 있는지 살펴 보니 멀리 바위인지 무엇인지 해수면위로 튀어 오른 것이 보였다. 일단 접근하여 위로 올라갔다.

단 몇 분이라도 물이 차올라 내 몸을 덮치는 것을 연장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다시 지형지물을 살펴보니 멀리 어장 그물을 표시한 부표가 보였다.

사력을 다해 접근했다. 드디어 부표가 있는 곳에 가서 부표를 손에 잡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물끝에 매달린 동그란 배구공 모양의 부표는 내가 만든 밀페 비닐봉지보다 훨씬 안전한 구명 기구였다.

▲     ©피플코리아

 
하지만 어장 그물의 상단을 지탱해주는 길고 굵은 밧줄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행여나 그물을 잡고 해안까지 갈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물을 잡고 따라 가보니 몇미터 안가 그물이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있어 다시 그물 끝으로 가서 부표를 떼어내려고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 굵은 밧줄은 꼼짝도 안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만약에 그물에서 부표를 분리하지 못한다 해도 부표를 잡고 그 자리서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까지 버틴다 해도 그 방법이 더 안전하다는 생각에 부표를 떼어내는 작업에 혼신을 다했다. 

얼마나 실갱이를 했을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손에 부표가 들려 있었다. 한 시간의 사투 끝에 그 굵은 밧줄에 고정된 부표를 떼어내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부표의 양쪽에는 끈을 연결할 수 있는 U자형 쇠고리가 박혀 있었다. 다시 부표를 잡고 바위 위로 올라와서 사방을 살펴보니 멀리 어장을 표시한 막대가 보였다. 그곳으로 다가가서 막대를 손에 잡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고 가장 튼튼해 보이는 막대기를 선택했다.

급하면 조금이라도 더 튼튼하고 높은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해수면이 거기까지 차오를 때까지 버티면 그만큼 내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취한 조치였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한다. 체력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날이 밝아 지나가는 어선의 눈에 띄어 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아침 8시까지 바다위에서 버텨야 한다. 그래야 구조가 되더라도 될 수 있고 살수 있다. 그래기 위해서는 침착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모든 지혜를 한 올 남김없이 모두 짜내고 냉철하게 행동해야 한다.

단순히 나는 살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그저 욕심이고 과욕일 뿐이다. 그저 그냥 살수 있을 것이라는 허망하고 맹목적인 욕심마저 버리고 어떻게 해서든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노력과 행동을 아낌없이 다 쏟아 부어야 살려는 나의 정성과 노력이 하늘에 닿아 살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고 생각했다.

마지막 죽어가는 순간까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안 되면 그때서야 하늘에 매달려 기도를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출발한 하나개해수욕장이 아니라 어디 어느 섬에 떨어질지 모른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고 나서야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을 바닷물 속에 집어 던져 버렸다.
 
▲     ©피플코리아

아무래도 오늘밤 그 불빛이 나를 구원해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난시 구원의 필수품인 비상 손전등을 버릴 때 심정은 지금 상황에서 오직 나를 지키고 나를 물밖으로 끌어낼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를 짓누르던 마음의 긴장이 한결 풀렸다.

하지만 기온이 떨어져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추위에 이대로 가다가는 아침이 되기 전에 얼어죽을 것 같았다. 다시 벗었던 옷을 하나 하나 풀렀다. 러닝 셔츠를 입으니 물에 젖은 옷이지만 바람 막이 구실을 해줘 추위가 훨씬 덜했다.

다시 반팔티를 입으니 그제서야 살 것 같았다. 물속에 잠긴 하체는 그래도 덜한데 몸 밖으로 나온 상체는 그래도 추워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반바지를 거꾸로 몸에 끼워 한쪽은 머리로 집어 넣고 한쪽은 왼 팔로 끼워 추위를 막았다. 일단 비상조치 모두 완료. 그리고 다음은 마지막으로 손에 들고 있던 비닐 봉지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밀물이 들이닥치기 초반 나의 생명줄이 되어준 비닐봉지를 바다에 던진 것이다. 그속에 들어있던 나의 구두와 양말도 함께 나와 생 이별을 했다.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인 내 신발을 바다에 집어 던지는 그 심정을 누가 알까.
 
그렇게 생존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나는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할수 있는 모든 노력과 지혜와 행동을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다 쏟는 다면 내가 살아남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확실한 믿음이 불같이 솟구쳤다.

추위를 막으려고 물속에서 부표를 잡고 이리 저리 떠내려 가는 연습을 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이미 바닷물은 계속 차올라 이제는 어장 그물 막대기도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나를 향해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나를 향해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파도와의 기싸움이 나를 긴장시켰다. 파도와의 기싸움에서 내가 밀리면 밀리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죽음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두려움을 떨쳐 냈다.

누가 들을 사람도 없고 나는 큰 소리를 냅다 질러 파도를 상대했다.

“파도야 나를 이기려면 나를 죽이고 나를 넘어가라”

이제는 그만큼 살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이다.

나의 살기 위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을 때 나는 드디어 내가 잡고 있던 나무에서 손을 놓았다. 이미 물은 내 키를 훌쩍 넘어 내 몸은 부표에 의지한 채 떠밀려 갔다. 

아! 김명수 인생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와 노인처럼 떠돌고 있구나.

▲     ©피플코리아
실미도를 간다는 초청자의 말에 실미도를 꾸준히 취재해온 실미도 전문기자로서 실미도를 갈 욕심으로 선뜻 따라나섰다가 실미도를 끼고 있는 무의도 앞 해상에서 이런 기이한 죽음의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수영도 제대로 할줄 모르는 나를 살려준 것은 두터운 신앙심으로 살아가는 아내의 헌신적 기도가 하늘을 움직여 나에게 부와 명예와 권력보다 더욱 크고 창대한 지혜를 주었고 또 하나는 다름아닌 실미도 훈련병들이었다. 실미도 훈련병들이 극한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실미도를 취재하면서 많이 알았기 때문이다.

명령만 내리면 언제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북에 침투하여 주석궁을 폭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뭉친 그들의 강인한 정신력이 나를 자극시켜 위험 속에서 구해낼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평소 꿈을 꾸면 꾸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희망이 나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다. 

실미도를 가기 위해 세 번이나 무의도를 찾았지만 그때마다 물때를 잘못 만나 실패를 하고 이번에 네 번째로 다시 무의도를 찾았다가 해상에서 조난을 당했고 또 그들의 살아남는 방법을 응용하여 내 목숨을 지킬 수 있었으니 참으로 실미도와 기이한 인연이 아닐수 없다.

부표에 의존하여 떠밀려 내려오다보니 그렇게 멀리 느껴지던 불빛이 어느 순간 가까이 보였다.

아 이제는 살았구나 싶어 부표를 손에 잡고 발을 땅에 대어 보았다. 아! 그런데 발이 땅에 닿는 게 아닌가. 이제는 살았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부표를 손에 들고 바다에서 빠져 나왔다. 아직도 해수욕장쪽으로 갯벌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내가 해수욕장으로 올라왔을때 이미 해수욕장 백사장 턱밑에 까지 바닷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바다와의 길고도 외로운 싸움은 끝이 나고 드디어 나는 나를 지켜준 부표를 바다에 띄워 버렸다.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 가까이 가니 노래소리가 들린다. 아!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가.

숙소에 들어와 시간을 보니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전날 밤 9시 30분에 물 빠진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 밀물이 밀려와 갯벌이 망망대해로 변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무려 4시간동안 바다속으로의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자신의 영위와 호의호식을 취하는 대신 혼탁하고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혼돈의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밝고 건전하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언젠가는 내가 던진 계란이 쌓이고 모여 바위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 틈에 작은 씨앗이 붙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날을 기대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비록 지금 이 순간 내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죽어 사라진다 해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았노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잘되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주의보다는 내년에 잘 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과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냉철한 판단으로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살아왔다.

사람이 한일을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만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

한 밤중 바다 한가운데 나홀로 버려져 처절한 사투 끝에 살아나온 지금의 내심정은 오히려 담담하다.    
   
보름 중에서도 백중날인 음력 7월15일 전후를 해수면이 가장 높이 올라간다고 하여 백중사리기간이라고 한다.

하필이면 일년 중 해수면이 가장 높이 올라가는 백중사리 물때를 직격탄으로 맞은 것이다. 그것도 간만의 차가 가장 크다는 인천 앞바다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와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해봤다. 8월 28일 국립해양조사원이 밝힌 백중사리기간 지역별 최고 해수면 높이를 보니 내가 갯벌 속으로 뛰어든 인천이 9M 30Cm로 가장 높았다.

한순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험악한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사는 한 우리 주변에는 항상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기에 누구라도 언제 어느 때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자신이 그렇게 죽을 지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다음날 실미도에 들어가는데 성공을 했다. 실미도 훈련병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더욱 진하게 느낄수 있었다.

실미도에 들어가 꼭대기에 올라서 내가 허우적 거린 바다를 내려다보니 실미도 684부대 훈련병들이 3년 4개월 동안 지옥훈련을 받으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바로 그 실미도 앞 무의도가 코앞에 있는 그 바다였다.  

지금 내몸은 완전히 상처 투성이다. 발바닥 손바닥은 모두 예리한 칼로 짝짝 그어놓은 듯 찍히고 찔리고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개운하다. 실미도 훈련병들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체험할수 있었던 것만으로 작은 위안을 삼는다.

이날 바다에서 죽다가 살아난 경험은 내 평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과 용기가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주변에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작은 웅덩이나 강물에 빠져도 살아 남으려는 냉철하고 강인한 의지와 작은 지혜를 조금만 발휘하면 목숨을 구할 일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미리 절망하여 허둥대다가 하나밖에 없는 아까운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다는 옛말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이 글이 역경과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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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4년 08월31일 15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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