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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23) 출퇴근길 요지경
2004/10/31 00:00
입력 조회수 : 604
퇴근길. 전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향해 걸어가는데 고함소리가 들린다. 사건현장은 길건너편. 웬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택시기사가 차를 한쪽에 세워놓고 누군가를 뒤쫓고 있다.
"야이 새꺄! 너 거기 안서. 너 잡히면 죽여버려. 야이 도둑놈아. 타고 왔으면 돈을 내야지. 이도둑놈아. "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에 섞여 거친 욕설이 간간히 들린다. 연신 입으로 고함을 질러대며 붙잡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미 저만치 달아나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택시기사는 억울하다는 듯 연신 거친 욕설을 퍼부어 대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택시를 잡아타고 먼거리를 달려온 승객이 요금을 안내고 달아난 것이다.
꽁무니에 불이난것처럼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니 기껏해야 스무살 남짓 젊은이로 보인다. 요금뺑소니 승객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순간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왜 했을까? 이세상에 어느누구도 태어날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다만 갈수록 각박하게 돌아가는 이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본인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누가 무슨일을 저질렀다면 본인에게 가장 큰책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권력과 금전만능주의가 판치는 사회에서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그런 풍조속에 무감각해질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짜 요금이 없었다면 택시를 타지도 말아야 할텐데… 술한잔 걸친김에 돈이 있으면서 객기를 부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웬지 못볼걸 본것같았다. 그순간 이후로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고찝찝한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출근길. 전동차에 들어섰다. 선반에 서류가 담긴 봉투를 올려놓고 책을 보면서 갔다. 책속에 내용은 안들어오고 어제 퇴근길의 요금뺑소니 사건이 자꾸 떠올라 오버랩된다.
어느새 목적지에 다와간다. 꾸물대다 내리지 못할 것 같아 미리 미리 출입문쪽으로 나왔다. 그런데 자꾸 무슨 소리를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아저씨! 아저씨!" 누군가가 뭐라고 자꾸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혹시 서류봉투 놓고 그냥 가시는거 아닙니까?" "예에∼?" 앗 뜨거라.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잊어버릴뻔 했던 서류봉투를 마음씨 착한 지하철승객 덕분에 다시 찾은 것이다. 그순간 우울했던 어제일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출근길 발걸음이 나도모르게 가벼워졌다.
말한마디가 천냥빚갚는다는 우리속담이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하루업무가 시작되는 아침. 마주치는 사람에게 가볍게 던지는 "좋은아침" 한마디가 그날을 즐겁고 기분좋게 보내는 청량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분좋은 아침이었다.
김명수
2000/04/12 15:03
[
김명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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