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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64) 아버지와 아들
2004/12/11 00:00
입력 조회수 : 667
아버지와 아들이 보는 눈높이는 다르다.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샐러리맨 K. 30대 후반인 그는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아들이 있다. 앞통수 뒤통수가 툭 튀어나온 짱구형. 고집이 황소불통이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아들은 동네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다. 또래의 아이들을 쥐고 흔들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깡패. 툭하면 동네아이들이 깡패에게 얻어맞고 울고 가기 일쑤였다. K는 그런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아들이 이대로 컸다가는 나중에 진짜 깡패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K는 어린 아들의 성격을 고쳐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틈만 나면 아이를 불러 앉혀 놓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타일렀다. 절대로 때리지 말고 싸움을 하려면 차라리 얻어맞고 들어오라고 정신교육을 시켰다. 싸움에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빠의 잔소리가 먹혀들었는지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싸움을 하지 않았다.
하루는 해가 서쪽에서 떴다. 아이가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 집에 들어온 것이다.
얻어맞고 들어온 일이 한번도 없었던 아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들어왔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K는 놀라서 이유를 물었다.
"아빠, 나 오늘 친구한테 신나게 얻어맞았다. 유치원 다닐 때만 해도 내가 맨날 두들겨 패주던 놈인데 오늘은 내가 얻어맞기만 했다. 아파도 꾹참고 나는 한 대도 안 때렸다. 그랬더니 이놈이 사정없이 나를 두들겨 패더라. 그래도 맞기만 했다. 아빠, 나 잘했지?"
K는 아들이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의 거친 성격이 고쳐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하루는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성적표를 내놓았다. 성적을 보니 뒤에서 꼴찌. K는 기가 막혔다. 학창시절 수재소리를 듣던 K였다. 시골출신인 K는 초중고시절 한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그런 K를 동네사람들은 수재라고 불렀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K는 공부를 못해도 너무 못하는 아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내놓은 성적표를 살펴보니 기가 막혔다. 국어 20점, 바른생활 50점, 미술 40점, 산수 10점 등등. 50점이 최고점수였다.
아빠는 아들에게 말했다. "야이 녀석아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그렇지 10점이 뭐냐, 챙피하지도 않아? 도대체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참 한심해도 너무 한심해서 말이 안나온다. 종아리 걷어"
아빠의 말을 들은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아빠에게 한마디 던진다.
"아빠, 아빠는 무슨 말을 하는 거여. 왜 내가 10점 맞은 건 칭찬 안하고 틀린 것만 가지고 그래. 산수 10문제 중에서 9개는 틀렸지만 한 개는 맞았잖아. 한 개 맞은 게 어딘데. 그거 대단한 거 아니야? 맞은 것만 가지고 얘기를 해야지. 한 개 맞았는데 왜 때리려고 해. 싫어 안 맞을래"
아빠는 아이의 항변에 말문이 막혔다. 비록 산수 10문제 중에서 9개는 틀렸지만 한 개는 맞았다면서 따지고 드는 아들. 아들은 당당했다. 성적이 나쁘다고 회초리를 대려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1등만 한 아빠. 공부엔 관심이 없는 아들. 이들 부자의 눈높이는 다르다. 달라도 한참 다르다. 아빠는 아들에 거는 기대치가 너무 높다. 아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 아들은 아빠의 잔소리가 너무 싫다. 잘하는 건 인정 안하고 항상 '이거 하라, 저거 하라'며 강요만 하는 아빠가 싫다.
눈높이가 다른 아버지와 아들. 서로의 입장을 바꿔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루 아니 반나절이라도 아버지가 아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아들이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면 서로의 눈높이를 맞출 수도 있을 텐데…
김명수
2001/07/03 16:53:49
[
김명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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