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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바람의 꽁트] (20) 물먹는 하마
2005/04/28 00:00
입력 조회수 : 606
샐러리맨 설진수. 올해로 17년째 외길을 걷는 직장인이다. 그가 직장에서 P를 만난것은 지독한 악연이었다.그의 꼬이고 꼬인 인생역정을 들어본다.
내인생에서 지우개로 지울수만 있다면 P라는 인물과 함께했던 인연은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언젠가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 세권짜리 책으로 써도 한맺힌 사연을 다 풀어내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나는 직장생활 10년차일때 지금의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와서 보니 한마디로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산만해서 제대로 일을 할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동종업계로 옮긴탓에 부서인원의 절반정도는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럭 저럭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적응을 해나갔다.
그때 그 P라는 인물이 우리부서를 기웃거리는 것을 곁눈질로 보았다. 우리부서는 업무의 성격으로 볼때 수문장이다.
수석부서라고도 한다. 부서조직편성상의 제일먼저 오른다는 의미의 수석부서로 불리지만 일의 뒤치닥꺼리를 맡기 위해 마지막 자리를 지킨다는 의미의 수석부서로도 통한다. 그래서 타부서의 모든 데스크들이 업무성격상 하루에 몇번씩은 우리부서를 꼭 거쳐간다.
나는 이회사에 입사한지 한달쯤 지나서야 P라는 인물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소위 잘나간다는 S대출신이었다. 그는 모부서의 데스크였는데 하는 모습이 꼭 물에 흠뻑 젖은 새앙쥐꼴이었다. 윗사람들에게 살살이었다.
그러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높은 자리에 앉았다. 그것은 거의 파격이었다. 도저히 오르지 못할 인물이었다. 그때부터 기막힌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사권을 제멋대로 쥐고 주물렀다. 자신의 명에 순응하면 살것이요 거역하면 모가지였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옛날의 살살이가 아니고 아랫사람들에게 완전 폭군이었다. 업무는 뒷전이요 무게로 사람들을 자기 주변에 세웠다.
회사 말아먹을 인물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고개 뻣뻣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P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걸어다니는 괴물이었다. 자신의 마음에 안드는 인물은 사정없이 외곽으로 축출인사를 했다.
그래도 찍소리를 못했다. 바른말을 하고 직언을 하면 자신의 명에 불손하게 거역을 하는 것으로 낙인을 찍었다. 그런 인물을 어떻게 높은 자리에 앉혔나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열심히 일해온 많은 선후배들이 무참하게 보복인사를 당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다고 P를 따르는 자들은 새로운 스타로 단번에 떠올랐다.
P는 기분이 좋았다. 회사를 쥐고 흔드는 지존이었다. 그는 자만심에 세상무서운줄을 모르고 설쳐댔다. 그러나 단 한사람에게는 꼼짝을 못했다. 바로 회사의 오너.
인사권이라는 막강한 칼자루를 쥐고 온갖 만행을 자행하던 P가 오너만 만나면 고양이앞의 쥐꼴이었다. 각하처럼 모시는 그의 꼬락서니를 보면 배꼽이 빠질정도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의 무서운 인사권칼자루를 알기 때문에 죽으면 죽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야 자리보전이라도 할수 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수가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런 부류의 인간은 딱 질색이었다. 사무실에서 마주쳐도 나는 고개를 외면했다. 세상무서운줄 모르고 오만방자하게 날뛰는 P의 눈에 되레 내가 오만방자한 놈으로 낙인찍힌것은 당연지사였다.
나는 일주일도 못가 보복인사를 당했다.직장생활 10년이 넘도록 한업무만 파다가 처음으로 다른 업무로 추방당했다. 들어가 따졌다. 도대체 내가 왜 내자리를 뺏겨야 하느냐고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두눈을 부릅뜨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당돌한 내모습에 어이가 없었는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눈을 바라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기싸움을 하는것 같았다.
나도 질수가 없었다. 눈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나는 오기가 넘쳤다. 회사를 물러나면 물러났지 여기서 단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다.
그가 먼저 눈꼬리를 내려깔았다. 그리고는 내게 정색을 하고 물었다. 도대체 자네 어느학교 나왔는데 그렇게 자신있고 당당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잘못한게 추호도 없는것 같은데 왜 엉뚱한 부서로 나를 내모는 것이냐고 물었다. P는 대답을 못하고 주저주저했다. 그러면서 엉뚱한 얘기로 기를 꺾으려고 했다.
자신은 명문고에 명문대를 나왔어도 아무소리 안하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그리 잘나서 여기까지 와서 소란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대들었다. 당신이 나를 추방한것이 분명한데 그 이유를 알고 싶으니 사실대로 말해주면 두말않고 승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따지듯 말했다.
그러자 그는 언성을 높였다. 나보다 하늘같이 높은 선배들도 내말 한마디면 찍소리 않고 모두 명을 따르는데 당신같은 사람은 구제불능이라면서 혀를 끙끙 찼다. 그러면서 회사 그만두고 싶으냐고 은근히 겁을 줬다. 나는 그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요. 회사 그만둘 각오로 지금 이자리에 찾아와서 묻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내가 왜 내자리를 박탈당해야 합니까.
P는 그제서야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자신은 20여년 직장생활 하면서 온갖 물을 다먹어도 꾹 참고 참아 오늘의 자리에 이르렀다면서 직장생활 하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으니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하라고 은근슬쩍 달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넘어가지 않고 다시 물었다. 나는 당신에게 묻노니 내가 왜 내자리를 빼앗기고 엉뚱한 곳으로 축출?돼야 하는지 이유만 말해주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했다.
그는 은근히 우리데스크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때 나는 그인간의 인간성을 알아보았다. 잘먹고 잘살아라고 속으로 한마디 외쳐주고 자리를 나왔다. 그뒤로 나는 철저하게 보복을 당했다. 물론 드러나게 하지는 않았지만 인사때마다 자리가 여기저기로 옮아다녔다.
나는 물먹는 하마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더욱 그앞에서는 당당하게 행동했다. 그는 아예 내가 오면 나를 피했다. 처음에는 몇번 눈을 마주쳤다. 마주칠때마다 내가 외면하고 본체만체 하자 나중에는 나에게 상사대접받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봐도 못본척 했다.
서로가 서로를 지나가는 개처럼 보았다. 그러나 입장은 하늘과 땅이었다. 나는 철저히 물먹는 하마였고 그는 철저히 나에게 보복의 칼을 휘두르는 높은 자였다.
회사에서도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다. 두사람의 악연은 그렇게 골이 깊어져갔다. 인사가 있으면 아예 포기를 했다. 세상에 영원한 자리는 없다고 자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천년만년 지존을 누릴것 같던 그를 향해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불만의 소리는 봇물처럼 쏟아졌다. P는 약간 당황한듯 했지만 전혀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오너의 절대적 신임을 갖고 있다는 오만함이 그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두고보라 얼마나 가나. 그는 그래도 계속 인사권을 악용했다. 자신의 보위를 지키기 위해서 사정없이 눈엣가시들을 아웃사이드로 내보냈다.
어떤 동료는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면서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났다. 그때 소문이 돌았다. 사표를 절대로 쓰지마라는 것이었다. 사표를 쓰려고 하는 것을 P가 알면 빼앗어서 수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럴정도로 야비하고 치사스러운 인간성 더러운 P였다.
일년이 넘고 이년이 지나면서 P는 더욱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그는 하늘높은줄 모르고 설치고 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가랑비에 옷젖듯 회사가 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언제나 오너에게 회사의 경영이 탄탄대로요 순풍질주라고 아부를 했다. 오너는 그런 P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그러나 오래가면 꼬리가 밟히는 법이었다. 회사내에서 위기설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런 말들이 오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오너는 그제서야 P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P는 보복인사를 자행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목을 치는 비굴함을 계속 보여주었다. 측근들도 나중에는 P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회사내에 타도 P의 구호가 높아져갔다. 그는 그때까지도 전혀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사원들도 강경해졌다. 그는 회사를 말아먹은 악덕으로 철저하게 규탄을 받았다.
결국은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임기를 맡은지 3년만이었다. 사원들은 앓던이 빠진것처럼 시원해했다. 그러나 그의 더러운 칼에 모가지가 달아난 수많은
동료들은 회사에 돌아올줄 모르고 실직자가 되어 한을 씹으며 밖에서 맴돌고 있다.
나는 안다 물먹는 하마가 얼마나 힘들고 비참하고 어렵다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겠지 습기를 모두 빨아먹는 물먹는 하마를. 그러나 물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하는 하마는 죽을 맛이다. 올때는 마패를 차고 출두하는 암행어사처럼 당당했던 P가 쫓겨날때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뒷문으로 꽁무니치듯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만든 당신도 언젠가는 인생의 쓴맛을 한번 체험해볼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나를 물먹는 하마로 만든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겠노라. 지금도 그때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샐러리맨 설진수. 철저하게 물먹는 하마였던 그는 P가 쫓겨나자 단숨에 사내 스타가 되었다. 서슬 퍼렇던 시절의 P에게 맞섰던 유일한 사원이라는 점이 부각되어 나는 물먹는 하마를 딛고 일어나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래서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는가.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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