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눈부시게 하얀세상을 맞이한다.
올들어 첫 눈, 12월 중순을 지나고 올해도 얼마남지 않았다.
올해 첫 눈이 조금 늦었지만 오감으로 느끼는 첫 눈이 반갑다.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동심세계로 빨려든다.
연말이고 모임이 많은 계절이지만 올해는 조용하다.
코로나 확산으로 모임 약속을 메모장에서 지우고 또 지운다.
주말에도 집에 갇혀 조용하게 보내는게 일상이 된지 오래다.
집콕이 답답한데 하늘에서 하얀세상을 열었으니 설경보러 가야겠다.
집 근처 도덕산으로 간다. 길도 산도 모두가 하얀색이다.
밤새 내린 눈은 아침 햇살에 녹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만든 하얀선물이 금새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이 급하다.
순백의 아름다운 하얀색의 세상을 렌즈에 담고 또 담는 즐거움에 빠진다.
겨울바람이 먼 곳으로 외출을 갔는지 추위도 없다.
나무에서 눈이 녹아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고 일부 물방울은 작은 고드름이 된다.
겨울 도덕산 야생화 공원, 꽃은 없지만 눈꽃이 만발했다.
꽃밭은 봄을 준비하며 긴 겨울잠에 든지 오래됐다.
곳곳에 심어진 소나무만 푸름을 자랑한다.
듬직한 소나무들이 꽃대신 하얀 솜사탕을 주렁주렁 달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작은 바늘잎들이 붙잡은 눈고깔이 꽃보다 아름답다.
첫 눈은 어른들도 순식간에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다.
남녀노소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첫 눈의 마력이 참 대단하다.
소나무 트리 앞에서 겨울 추억을 담고 또 남긴다.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치면 감성이 무딘 것이 아니라 목석같은 사람이다.
"아우~ 크리스마스 트리네!"
"우리 여기서 한 장 찍고 가요"
낮모른 사람들 사이에 사진 찍어주는 품앗이에 사람사는 정이 느껴진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정이 넘치는 곳이 훨씬 많다.
본격적으로 도덕산행에 나선다.
오르막 길가에 심어진 전나무가 눈송이를 욕심 껏 담았다.
바늘잎마다 한아름 붙잡고 있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처진 나뭇가지가
애처롭다. 앙상한 아카시는 모든 잎을 모두 버리고 홀가분하게
겨울을 보내는데 전나무와 잣나무는 잎을 달고 가지마다 눈을 차곡차곡 품는다.
전나무 눈고깔 풍경이 보는 사람은 멋진데 나무는 얼마나 힘들까?
눈이 내리는 날 겨울추억이 쌓인다.
하얀 눈은 멋지고 아름다운데 길은 미끄러워서 걷기에 불편하다.
눈이 내릴수록 걷기 속도가 뚝 떨어진다. 비탈길 내리막은
조심스럽게 지난다. 하지만 휘날리는 눈송이에 눈이 호강한다.
도덕산 멋진 설경을 보기위해 산객들이 몰려든다.
하얀 눈이 만든 선경이 바로 앞에 있다.
전나무가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가 앞길을 막고 있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처진 나뭇가지에 눈이 솜사탕이고
백설기처럼 생겼다. 먹음직스럽게 푸짐한 눈송이에 군침이 돈다.
솜사탕이든 백설기로 보이든 나무가 만든 풍경은 한 편의 수묵화다.
눈이 내린 산의 풍경은 어디를 찍어도 그림엽서가 된다.
적막한 산자락에 딱따구리가 탁탁 나무를 두드린다.
목탁 치는 딱따구리가 겨울산의 고요를 깬다.
겨울나무들은 동안거 수행에 들어간 산사의 스님처럼 긴 시간 묵언수행중이다.
'서리 내려 잎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단단한 겨울나무'
이재무 시인의 '겨울나무'에서 언급한 것 처럼 코로나로 멀어진 친구와 이웃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터 놓고 지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산은 겨울모드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도 지난 가을의 추억을 붙잡고 겨울시간을 보내고 있다.
단풍나무 한 그루가 빨간 잎을 매달고 눈서리를 맞고 있다.
지난 여름과 가을의 미련이 깊어서 떠나지 못하고 겨울바람을 맨 몸으로
맞고 견딘다.
무슨 인연이 저리도 깊어서 단풍 잎은 봄에 새잎이 날때까지 기다리는 것인가.
호젓한 길이 길게 이어지고 굽어지며 휘돌아 넘어간다.
도덕산 산길은 어느 코스를 선택해도 실망하지 않는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체감하면서 잠자는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산길을 걷으며 갑갑생활을 잠시라도 잊고 안전한 야외에서
코로나 블루도 벗어날 수 있다.
설경 매력에 빠져 한눈팔다가 언덕에서 미끄러진다.
제법 눈이 두툼하여 아프지는 않다. 정상에 서지만 바람도 잠잠하다.
겨울바람이 휴가중인가, 매서운 찬바람이 없어 되레 포근해 걷기 좋다.
정상 앞에 철쭉은 솜뭉치로 변신했다. 하얀 눈송이가 겨울에 핀 꽃이다.
철쭉이 만든 눈송이 앞에서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대부분 산행객은 단체보다는 가족동반이 많다.
둘이 가는 산행은 부부동행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이다.
아이들이 눈사람 만들고, 어른들이 나무에 눈사람 그리며 동심세계로 들어간다.
눈이 내리면 아이도, 어른들도 신이 난다.
도덕산 정상에 있는 신갈나무에 눈사람 그림이 겨울잠 자는 나무를 깨운다.
눈 바탕에 그린 그림이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것 처럼 생명력이 있다.
누구의 장난인지 모르지만 익살스런 눈사람 그림에 찬사를 보낸다.
흰색과 빨간색의 멋진 하모니가 멋지다.
산수유 열매에 눈이내려 빨간색이 눈에 띄게 돋보인다.
바람 불어 눈이 날리며 빨간색이 하나씩 들어난다.
산수유는 잎이 지고 나면 열매만 남아 봄까지 매달려 있다.
일부는 산새들의 겨울양식이 되고 선택받지 못한 열매는 꽃이 필때까지
달려 있다.
눈 속에 달린 산수유 열매를 보면서 시인 김종길 '성탄제'를 소환한다.
'어두운 방 안에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눈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산수유 붉은알을 보면서
성탄절을 앞두고 시인의 '성탄제'가 생각난다.
겨울이지만 황국화의 생명력이 대단하다.
국화는 역시 사군자답다.
찬서리 맞으며 가을에 피는 국화의 생명력이 질기다.
가을 꽃인 국화가 한겨울인 12월에도 꽃이 살아있어 놀랍다.
눈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고 도도한 표정에 감탄한다.
사실 나무와 꽃은 겨울에서 부지런히 다음세대를 준비한다.
겨울이 되면 나무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추위에 얼어 붙은
땅 밑 어딘가에서 봄에 띄울 새싹을 빚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부작 사부작 도덕산 눈길 한바퀴 돌고 돌아간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모퉁이를 돌고 눈길 오솔길이 정겹다.
넓직한 캠핑장은 고요한데 눈사람만이 눈알을 굴리며 문지기 역할을 한다.
어린이 숲체험 공원에도 나무기린이 눈을 맞고 현장을 지키고 있다.
잠시 외출한 바람이 돌아왔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송이가 휘날린다.
바람에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송이가 떨어지고 일부는 물방울이 된다.
오후들어 바람이 세차진다. 땀에 젖은 옷에 한기가 몰려든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