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이렇게 번다] (95) 잉크폐카트리지에 인생을 바친 개발자 이용수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리필잉크 전문회사 프린톤 사무실에서 잉크 폐카트리지에 인생을 바친 개발자 이용수(50)사장을 만났다.

출발은 작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야심찬 꿈을 펼쳐나가고 있는 그는 프린터용 잉크리필사업에 뛰어들어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고 있다.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는 1인 1컴퓨터 시대에 컴퓨터가 있으면 주변기기 프린터가 있고 프린터가 있으면 잉크가 있다. 잉크가 있으면 카트리지가 있고 카트리지가 있으면 키트가 있다.
카트리지는 쉽게 말해 잉크통이고 리필키트는 잉크를 다 사용한 후 빈 카트리지에 다시 잉크를 주입해서 쓸 수 있도록 한 ‘썩션툴’이다.
현재 국내 PC 보급은 약 4000만대로 그에 따른 프린터 또한 약 2500만대로 추정된다. 프린트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잉크사용량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 잉크제품 시장 규모는 연간 3조6000억으로 추산하고 있다.
잉크충전은 소모품인 잉크, 토너를 정품보다 50%~70%이하로 저렴하게 재활용이 가능하다. 정부에서도 ‘친환경상품구매 촉진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여 모든 공공기관은 환경부 인증마크를 딴 상품만 사용할 수 있게 의무화하고 있어 잉크 충전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본다.
특히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의 기술 향상으로 직접 출력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가격이 저렴한 잉크충전이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연간 2500만개의 폐카트리지가 버려지고 있으며 이중 13%만이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소각, 매립되고 있습니다. 프린톤은 차후 환경문제로 블록화 될 세계시장으로의 새로운 경쟁력입니다.”
프린톤은 HP, Lexmak, 그리고 Epson, Canon 등 잉크카트리지의 국내외 모든 제품을 리필할 수 있는 잉크 리필키트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세계특허를 받았다.
개발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남들이 못한 것을 이루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밤낮으로 개발에 매달리다보니 과로하여 건강하던 몸이 망가져 한때 반신불수가 된 적도 있다. 원래 성격도 낙천적이었으나 말도 못하게 급해졌다.
그런가 하면 개발에 성공하고 너무 기뻐서 이불속에서 괴성에 가까운 환호성을 지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개발자의 희열을 모른다. 그만큼 자부심 넘치는 일이고 그 기분에 산다.
그는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모든 잉크카트리지를 리사이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잉크카트리지는 1회용만 쓰라고 만들어놓은 것인데 환경문제로 리사이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잉크 카트리지 정품은 미국의 두 회사, 일본의 두 회사만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두 나라에서 나오는 카트리지가 전 세계에 보급되고 전 세계에 버려진다.
35년 전 미국에서 잉크 카트리지 리사이클을 시작했으나 현재 상황으로는 백기를 든 상태다. 한마디로 리필은 기계도 망가지고 품질도 안 좋아 리사이클은 안 된다고 결론이 났다.
대학 졸업후 그는 일본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한국에 오기 전에 미국 여행을 갔다가 리필현장을 봤다. 프린터 잉크를 리필하고, 리사이클 하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던진 말 한 마디가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것은 바로 리필은 안 된다는 말이었다.
1988년 당시 미국은 기술도 경제도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들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미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전 세계에 커버되는 데 그 쓰레기가 다 어디로 가나? 하는 생각이 문뜩 스치는 것이었다.

“관리가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나라에 가서 묻냐? 그건 아니다 이거죠. 이는 역발상으로 완벽한 리필은 엄청난 부를 창조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됐죠.”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고 카트리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미국 리사이클 세미나에도 참석해보고 미국 전역을 다녀 봐도 리필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죠. 어느 정도까지는 미국에서 리사이클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나머지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공교롭게도 그는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일보에서 인터넷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강의를 마치고 나와서 무릎을 탁 쳤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 시대가 오면 잉크 리사이클 시장은 무한대로 커진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이 확산되면 될수록 잉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앞으로 인터넷 시대가 오고 칼라시대인데 칼라 잉크는 무조건 있어야 된다고 판단했다.
“유지보수 없이 두 달만 프린터를 안 쓰면 잉크가 말라버려요. 카트리지 정품은 미국, 일본에서 100% 수입하는데 그 정품을 쓰고 100% 버려요. 그 버린 것을 회수하여 리사이클하면 그 자리에서 프린트가 선명하게 나온다는 것이죠.”
그런 것을 그가 엡손하고 캐논은 4번에서 무한대까지 리필이 가능하고 HP하고 IBM 제품은 최소한 10번에서 20회 이상까지 리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보는 앞에서 소비자가 가져온 카트리지에 리필하는 자체를 보여준 업체는 없죠. 미국 일본 유럽 등 전 세계 어디서도 일원화가 안 돼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정확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못했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합니다.”
리필키트는 리필원액이 들어있고 부품개발을 해놓은 걸 가지고 100% 충전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그걸로 소비자에게 소비자 앞에서 직접 보여준다.

“제가 개발한 리필키트는 기계가 훼손될 염려가 없고 잉크가 한 방울도 안 흘리고 다 됩니다. 그걸 소비자 앞에서 직접 보여주면 소비자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리필이 안 된다는 것을 저희 기술로 소비자가 보는 앞에서 되게 만들은 거죠.”
그는 미국의 HP, IBM, 일본의 엡손, 캐논 그리고 그 다음 회사가 모든 제품을 100% 리필 할 수 있는 프린톤이라고 자부한다.
99년 회사 설립하여 개발비에만 30억을 쏟아 부었다는 이용수씨. 리필해서 원하는 대로 안 나오면 소비자에게 못 보여주고 개발한 것을 모두 버리는 비용 손실을 감수한 것이다.
“연구하는 동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고무 금형이 필요했어요. 돌아가신 선친께서 운영하시던 의료용 고무회사를 지금은 형님이 맡아서 하는데 그쪽 도움을 많이 받았죠. 실패하면 새로 금형 떠서 다시 찍기를 수없이 반복 했는데 완성될 때까지 계속 도와준 거죠.”
선친도 개발자. 100% 수입에 의존해오던 의료용 고무마개(링거용 병마개)를 선친께서 국산화에 성공했다.
“잉크 카트리지 한 개 썩는데 1000년이 걸립니다. 열 번을 리필하면 쓰레기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죠. 더욱 심각한 것은 잉크 카트리지 하나 정화시키려면 살수차 1대 들어갑니다.”
그가 개발한 휴대용 리필키트는 아주 간단하다. 잉크원액을 포함해서 1만원대로 3~4번 리필이 가능하니 안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프린터 저가보급형은 4~10만원대 수준인데 프린터용 잉크카트리지 정품은 3~4만원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정품 한 개 쓰고 나서 한 개를 더 쓰면 프린터 값이 넘어간다.
무한대 충전이 가능한 것은 엡손하고 캐논. 엡손과 캐논은 노즐이 본체에 붙어 있어 노즐에 손상을 안주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리필키트를 개발하고 구조를 알기 위해서 무조건 새 프린터 사서 때려 부수죠. 지금은 1년이면 새 기종이 나오는데, 나오면 즉시 구입해서 10분이면 망가뜨립니다. 리사이클을 해야 하는 데 기술이 따라주지 못해서 그냥 버려 환경이 오염되면 안 되잖아요.”
그의 인생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스승으로 그는 일본 대학원에서 행위심리학 공부를 할 때 만난 가끼기시오지 교수를 꼽는다. 너 자신을 팔수 있을 때 팔라고 하신 일본의 교수님과는 지금도 스승의 날 통화를 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그는 국제특허 4개를 보유하고 있다. 소비자가 그의 말대로 하면 분명히 리필이 됩니다 할 때 에러율 제로에 도전하는 것이 꿈이었고 그는 그 꿈을 이루었다.

잉크 넣는 것이 취미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는 완벽한 잉크가 돼서 출력이 될 때 희열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를 15년 동안 연구에 몰입하게 해준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영광 뒤에는 시련이 있듯이 그도 예외가 아니다. 선친에 이어 개발자로 2대를 이어오고 있는 그의 기억으로는 선친과 외식한번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공장에 투자하고 공장에만 매달렸어요. 아버지께서 이루어 놓으신 국산화 업적은 대단하셨지만 전 사실 자장면을 더 원했죠. 어린 마음에 한마디로 재미없었지요.”
선친께서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니 너무 야위어서 돌아가실 때 체중이 36kg이었다니 사업열정을 알만하다.
대학 때 전시회도 열고 도자기도 만들고 응용미술, 사진도 한것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한 계속 연구를 할 작정이다.
새 제품이 나오는 대로 새로운 리필키트를 하루에서 한 달 이내에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하나 개발하는데 6년까지 걸리던 것이 지금은 어느 제품이 나오더라도 한 달이면 끝난다.
미국에 가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그는 손에 잉크가 마를 날이 없는 ‘잉크박사님’으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리필키트에서 제 인생의 가치를 찾았다고 생각해요. 지구상의 수십억명이 연구를 해서 안 된 것을 제가 해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걸 제 가치라고 생각해요.”
리필이 되지 않는 리필키트는 없다는 신념으로 리필키트를 개발하면서 칼로 손을 베이고 주사 바늘로 찔리는 등 다치기도 수없이 다쳤다. 잉크가 살 속에 들어가 손에 문신이 돼 버렸을 정도다. 지금은 소비자에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세배나 더 비싼 비용을 감수하고 의료용 주사바늘을 특수 주문해서 날을 죽여 버렸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경제도 창출하고 환경도 살리겠다는 집념과 열정으로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온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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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 김명수기자 people365@paran.com>
2006년 06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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