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코리아]박석철 기자=6월 짧은 장마가 끝나고 7월들어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연일 평균 기온 30도는 기본이고 오존경보까지 동반한 기록적인 폭염이다.
더운 날씨 탓에 휴가철도 7월에 일찍 시작되었다.
불볕더위에 집에 있으면 되레 답답하여 산과 바다를 찾는다.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 한다”고 했다.
남해 금산에 보리암이 있다. 20여년 전에는 아들을 동반한 방문이고
10여년 전에는 가족 휴가로 보리암에 머물렀다.
유치원생 아들과는 보리암에서 상주주차장으로 걸어서 하산했고
가족여행때는 버스길로 편하게 내려갔다.
두 번 방문 후 다시 방문이다. 이번에는 금산에 오르는 정식 산행이다.
비단옷을 입은 산, 남해 금산
기묘한 바위군이 수두룩한 수석 전시장 같은 금산
보리암을 품고 있어 수 많은 불자들이 찾는 산이다.
또한 남쪽 섬의 남해 금산은 유배지로 유명하다.
상사바위에서 본 남해바다
고려말 장수인 이성계는 남해 금산을 찾아 새 왕조를 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임금이 되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100기도, 기도발이 들었는지 그는 조선왕조 건국의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어디 마음 먹은대로 되는 일이 있는가.
이성계는 비단 대신에 비단금자를 써서 금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금산은 기묘한 바위군과 바다가 어우러져 해안절경으로 유명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금산은 화려함 뒤에는 애절한 사연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서포 김만중은 조선 숙종때 남해 장희빈을 둘러싼 정치에 연루되어
남해 노도에 유배된다. 그는 가택연금 신세에서 울분을 달래며
‘서포만필’과 ‘사씨남정기’를 유배중에 완성했다. 조선 서예가 김구도
기묘사화 정쟁에서 남해로 유배와서 청춘을 보내면서 남해의 비경을
글로 남겼다.
금산산장에서 본 풍경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 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고두현 <유배시첩-남해 가는 길> 전문
고두현 시인은 남해 상주 출신이다. 한국경제 기자시절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이 시로 당선되어 문인의 길을 걷고 있다.
남해 금산에 오르며 같은 부서에서 함께 근무했던 시인의 유배시첩이 생각난다.
보리암에서 본 다도해
남쪽 끝 남해는 멀다. 서울에서 차로 장장 5시간 넘는 먼 거리다.
조선시대 당시엔 한 번 내려 오면 인생 끝이다.
밤새 달린 버스는 새벽 6시에 두모주차장에 들어선다.
금산 산행의 들머리는 두모주자창에서 시작한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다. 길바닥에는 태풍의 상흔이 남아 있다.
하얀꽃 송이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노각나무 꽃이다.
동백을 닮은 통꽃으로 바닥에 뚝뚝 떨어져 다시 핀다.
그래서 여름동백이라고 부른다. 노각나무는 수피가 사슴뿔인 녹각(鹿角)을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 동백과 노각나무는 같은 차나과에 속한다.
완만한 산길에 떨어져 수 놓은 노각나무 꽃을 따라 오르면 부소암을
앞두고 앞이 확 열린다. 바다에 뜬 조각배와 흰구름의 절묘한 조화는
환상적인 그림이다.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 봐
한없이 흘러가네 밤하늘
잔별들이 아롱져 비칠 때면
작은 노를 저어 저어 은하수
건너가네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서
잠들텐가 음음 볼 사람 찾는
이 없는 조그만 밤배야
둘다섯 <밤배>의 일부
다도해를 보면 낙엽이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배들이 보인다. 넓은 바다에서
아무리 큰배도 점에 불과하다.
둘다섯의 멤버인 이두진씨가 1973년 보리암에 머물다가
밤바다의 풍경에 반해서 이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상주해수욕장에 노래비까지 세워졌다.
보리암
부소암을 지나면 풍광은 더욱 매력적이다. 오밀조밀한 바위군에 얽힌 전설 속으로
빨려든다. 헬기장을 지나서 상사바위로 간다. ‘광양에서 온 청년이 이웃부인을 사모하여
상사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되자 부인이 이 바위로 몰래 불러 상사를
풀어줬다‘는 애잔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통의 상사바위는 투신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진한 러브스토리는 풍광만큼 재미를 더 한다.
한발 건너 기묘한 바위가 줄지어 연결된다. 금산산장에서 멋진 풍광을 보면서
간식을 즐긴다. 이곳에서 막걸리와 파전 등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여행자이든 산객이든 상관없다. 대부분 발 아래는 바다가 보이고 눈앞의 바위군을 감상하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다시 제석봉, 금산 정상, 보리암으로 이어진 볼거리에 피곤은 없다.
남해 보리암은 석모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도도량이다.
3곳 모두 바다를 품고 있다. 남해는 보리암, 동해는 홍련암, 서해는 보문사이다.
산과 바다가 어울어진 곳이 기도발이 잘 받는가 보다.
느린걸음으로 들어선 보리암, 추녀 선 끝으로 쪽빛바다가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기도발의 명소답게 불자들이 모이는데 산객과 어울려져 좁은 암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보리암 3층석탑은 영험한 기운이 서려있다고 전한다.
이제 하산이다. 보리암 바로 아래 쌍홍문을 지난다. 어두운 굴에서
시원한 바람이 산객들의 땀을 씻어주며 질을 내어 준다.
길가에는 산객들을 환영하듯이 보라색 산수국이 곱다. 길은 내리막 돌길의 연속이다.
진시왕의 아들 부소의 유배, 진시왕의 방사였던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이곳에
왔다가 세겨 놓았다는 ‘서시과차’, 이성계의 기도, 청년과 이웃부인의 로맨스,
서포의 유배생활, 원효의 좌선했던 좌선대 그리고 이 시대의
밤배 작곡 등 수 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뒤로하고 상주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