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으로 변신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빛바랜 선운산의 영웅들이다.
단풍은 아름다운 소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소멸하는 진리앞에서
나뭇잎도 초록에서 빨갛고 노랗게 삶을 마무리한다. 단풍은
찬란한 색상으로 지상에서 최상의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난다.
11월 첫 토요일, 선운산 단풍 나들이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는 하연리에서 청룡산으로 가는 오르막, 길가에 꽃이 없는
꽃무릇 새싹이 푸릇푸릇 생기가 넘친다. 배맨바위가 멀리서
선운산 이름을 알리고 ‘기 받으라는 거북바위 표지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벼베기를 끝낸 벌판이 한 눈에 들어오고
산줄기에서 골짜리로 흘러내린 물감색이 곱다. 30여분 거친숨을 몰아쉬면
도달한 곳이 청룡산, 먼저 큼직한 노란 감국과 산부추가 산객을 마중한다.
가을 떠나 보내는 배웅길에서 반가운 꽃들이다. 청룡산에서 숨고르기를 끝내고
이제부터 능선으로 이어진 긴 길을 걸어야 한다.
단풍산행인데 단풍은 없다. 단풍은 능선길보다 계곡으로 가야한다.
단풍의 명소는 용문굴에서 도솔암까지가 환상적이다.
낙조대를 지나서 천마봉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울퉁불퉁한 넓직한
바위에서 앞산 쥐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진 능선을 보면서 점심은 꿀맛이다.
천마봉의 넓은 안부는 수 많은 사람들의 쉄터이지만 사실상 절벽 위다.
높은 곳에서 조망되는 도솔암에서 도솔천으로 이어진 계곡이 단풍길이다.
하지만 계곡길을 버리고 견치산으로 긴 산행을 선택한다.
대장금 촬영장소로 유명해진 용문굴에서 잠시 머무른다. 용문굴 앞에 단풍이
절정이 아니다.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환상의 단풍을 맛보기할려고
했는데 살짝 아쉽다. 용문굴 앞은 초록과 노랑의 공존이다.
단풍 명소를 뒤로하고 먼 길을 재촉한다. 밋밋한 낙엽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조망도 볼거리도 없는 산길은 조금 지루하다. 견치산을 찍고 다시 되돌아오는
길은 몸이 지친다. 다행이도 가을날씨의 공기가 상큼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의 시간이다.
수리봉을 지나서 마이재에서 선운사로 내려선다. 곳곳에 애기단풍이 눈길을 잡는다.
산사는 단풍나들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고즈넉한 사찰이 아닌 유원지다.
도솔천에는 단풍 그림을 담기위해 대포카메라를 장착한 사진작가들의 무대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보다 물에 비친 반영이 한폭의 그림이다.
선운사 뒤뜰에 동백꽃은 없지만 차나무 꽃이 초록속에 무수히 피었다.
벌써 서리에 꽃잎이 상처 입었지만 아직은 당당한 모습이다.
농익은 선운사 도솔천의 가을빛이 요염하다. 새봄을 꿈꾸는 가을 빛깔이 너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