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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쓰는 막노동판의 하루] (44) 노판은 요지경
2007/04/28 00:00
입력 조회수 : 936
[인터뷰 전문기자가 쓰는 막노동판의 하루] (44) 노판은 요지경
2004년 03월 11일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산다. 가수 신신애가 불러 히트친 노랫말 가사중 일부 내용이다. 노가다판에서도 그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속된 말로 노판(노가다판) 역시 요지경이다.
굴러 굴러 이곳까지 들어온 사람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천태 만상의 직업 다 놔두고 하필 이면 왜 여기까지 굴러 들어 왔을까. 알고 보면 그들의 사연도 천태 만상이다.
잘 나가던 기업인이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아 전 재산을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막장 인생으로 추락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코리안 드림을 안고 바다 건너 멀리 한국에 와서 노가다 판에 뛰어든 조선족도 있다.
막장인생치고 사연 없는 사람 없기에 이곳에서는 상대방에 대해 서로 묻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게 불문율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호기심이라면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내가 아닌가. 특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것을 천성적으로 좋아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낯선 사람도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면 마음이 열리고 대화가 통하는 법. 대화가 통하고 마음의 문이 열리면 겹겹이 쌓인 양파껍질이 하나 하나 벗겨져 결국에는 속이 훤히 드러나듯이 호기심도 절로 풀리기 마련이다.
누굴 만나더라도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내가 먼저 경계심을 풀고 내가 먼저 대화를 청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 내가 먼저 다가가다 보면 굳이 묻지 않아도 스스로 입을 연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보니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늘 사람 이야기가 화제로 등장한다.
오늘도 친구 흥기와 아침 식사를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감초처럼 끼어든 식당 아줌마가 세상에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면서 간밤에 왔던 손님 이야기를 꺼낸다. 무슨 말인가 싶어 귀가 솔깃했다.
건축 공사장 인부로 일하는 48세 남자가 17세 연상의 65세 할머니와 나이를 초월한 부부연을 맺어 행복이 넘치는 닭살 커플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48세 남자의 어머니도 아내와 같은 65세라니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이다. 남들 앞에서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는데 이 남자가 딱 그렇다.
자신의 어머니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어머니, 우리 색씨 예쁘죠?”하고 묻는 다니 팔불출도 지독한 팔불출이다. 며느리와 나이가 같은 어머니는 아들의 묻는 말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전화를 탁 끊는다고 한다.
공사장 인부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할머니 아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내는 그 남자를 보면서 세상은 참 요지경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식당 아줌마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할머니 아내’에 대한 이 남자의 특별한 사랑은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혼한 조강지처와의 사이에 낳은 4자녀중 한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노가다 일을 시키는데 그 이유가 다름아닌 할머니를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기야 국경도 인종도 초월하는 것이 사랑인데 그까짓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오늘은 처음으로 안전모를 쓰고 일했다. 경사로를 오르내리면서 차광막을 덮는 일이 너무 위험해서 아찔할 때가 많았는 데 안전모를 쓰고 하니 불안감이 조금은 덜하다.
오후에는 그토록 바라던 안전벨트도 지급 받았다. 하지만 로프는 여전히 어제 사용하던 나일론 끈이다. 미끌미끌한 나일론 끈에 안전벨트를 착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결국 안전벨트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변대리가 하루종일 안보여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회사를 그만두었다. 측량을 하는 변대리가 그만 두었으니 정과장의 걱정이 태산 같다. 변대리가 하던 일을 정과장이 고스란히 떠맡게 됐기 때문이다.
오늘 친구와 선배가 찾아왔다. 벌써 두 번째 위로 방문이다. 고생한다면서 저녁식사와 술을 사준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자기 일 제쳐두고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서울에서 이곳 용인 현장까지 찾아와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넘넘 감사하고 고맙다.
만날때는 반갑지만 헤어질때는 아쉬운 법. 언제봐도 정이 듬뿍 넘치는 친구와 선배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의 바다에 빠져 새벽 3시가 다 되어가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을 위해서 아니 오늘의 노가다를 위해서 잠은 오지 않더라도 누워 있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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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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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4년 10월21일 23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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