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4.09.15:17 |
[세상엿보기] (119) 총체적 불황에 시달리는 외식 자영업 사장의 구사일생

50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입니다. 오죽하면 죽을 생각까지 다 했겠습니까. 2009년 3월 10일 오후 태릉에서 만난 외식 자영업자 신 모 사장의 말이다.

지방 국립대학 경영학과를 나와 경영지도사 자격증까지 획득한 전문 경영인 출신으로 그동안 다국적 기업에서 고위직 임원으로 직장생활도 해보고 자영사업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한미 FTA를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2008년이 가장 힘들었다며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2006년 4월 단돈 300만원으로 먹는장사를 시작하여 잠시 한때나마 불같이 일어났다가 거짓말같이 한순간에 장사가 안 돼 죽음까지 생각했다는 외식업자의 이야기는 요즘 불황이 최악이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경기도 양평군 대로변에 위치한 소머리국밥집으로 오픈 3개월을 넘기면서 하루 평균 매출이 100만원을 웃돌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영업 6개월을 넘기면서 하루 매출 130만원을 올리는 날도 있었다. 영업이 잘되면서 은행거래도 자연스럽게 늘어나 신용도도 A급으로 올라가 VIP 대접을 받았다.

신용대출 한도도 크게 늘어 1000만원까지 현금 인출이 가능했다. 식당이 잘된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체인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꾸준히 나타나 몇 개의 분점을 내주기도 하고 지방에 원료를 만드는 공장까지 갖췄다. 신 사장은 본점이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면 중국에까지 진출할 생각으로 청도와 북경에 현지 시장조사까지 몇 차례 다녀올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그러던 그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4월 촛불집회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며칠 매출이 떨어지다가 회복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촛불집회가 장기화 되면서 한번 내려간 매출은 회복될 줄을 몰랐다.

급기야는 하루 100만원 넘게 오르던 매출이 20만원도 올리기 힘들었다. 많을 때는 5명까지 고용했던 종업원도 2명으로 줄었다.

불황이 장기화 되면서 현상 유지는커녕 한 달에 500만원까지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가스비용이라도 아껴보려고 메뉴도 24시간 이상 끓여야 하는 소머리국밥에서 해장국으로 바꾸고 간판 이름까지 바꿔 달았지만 허사였다.

영업 호황으로 은행거래가 활발할 때는 VIP 대접을 해주던 은행도 한두 달 대출금 상환 연체가 되면서 대출을 갚으라는 독촉이 빗발쳤다.

신용카드 회사에서도 하루 수 십 번씩 독촉 전화가 쏟아지고 그것도 모자라 집으로 부동산 압류장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국민연금 체납에 전화비도 못 내고 종업원 월급도 밀리기 시작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몰리자 그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집에서도 생활비를 갖다 주지 못하는 가장을 반갑게 대해줄리 없었다. 식당에서도 집에서도 빚 독촉에 시달린 그는 결국 자살을 생각했다.

2009년 1월 15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민족 최대 명절 설 연휴를 10여일 앞두고 신 사장은 손님이 없어 텅 빈 식당에서 종업원을 불러 모았다.

식당에서 두 종업원을 불러놓고 더 이상 월급을 줄 수가 없으니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가라고 했다. 그러자 두 여종업원이 말했다. 식당 어려운 사정을 잘 아니 밀린 월급도 안 받고 영업이 정상화 될 때까지 월급 안 받고 일하겠다면서 그동안 잘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부담 갖지 말라고 오히려 신 사장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자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종업원들의 진심어린 위로에도 불구하고 식당을 꾸려나갈 의지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식당 앞에 낯선 승용차가 들어왔다. 저녁 5시쯤 식당 앞에 주차를 한 승용차의 앞문이 열리더니 지팡이(목발) 두 개가 문 밖으로 쑥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사람의 다리가 나오고 다음에 몸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스님이었다. 스님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한 모습으로 시선이 마주친 신 사장 앞에 목발을 짚고 섰다. 신사장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섰다.

그 스님은 신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지금 사장님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데요?”

“세상 살고 싶지 않죠?”

“아니 식사하러 오신 분 아닙니까?”

“아뇨. 오늘은 사장님 만나러 왔어요. 살고 싶지 않죠?”

“산으로 가려고 새끼줄 2개 단단하게 꿔 놨습니다.”

신사장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극단적인 말에 옆에 앉아 조용히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두 여 종업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님은 말했다.

“기왕에 자살을 결심했으면 두 달만 참으세요. 보아하니 외국에 아는 여자도 많은데 눈 딱 감고 중국에 가서 두 달만 마음대로 놀다 오세요. 어차피 자살을 결심했으면 지금 죽으나 두 달 후에 죽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온통 죽을 생각으로 꽉 찬 그는 스님이 하는 말에도 처음에는 듣는 둥 마는 둥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마음이 열려서 한마디 던졌다.

“아니 제가 세상 인연을 끊으려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냥 오늘은 사장님 영혼이 절 불러서 제가 무작정 여기 식당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제 말대로 두 달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식당일은 신경 끄고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올 테니까 그때는 해장국 10그릇만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스님은 떠났다.

그리고도 한 달이 지났지만 식당은 여전히 최악의 불황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에도 은행, 카드사, 캐피탈 등에서 수 십 차례씩 빚 독촉 전화와 재산 압류 체납장이 날아 들어오는 상황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국가신용회복 위원회라는 말이 뉴스를 듣던 중 흘러나왔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을 설명하자 위원회 측에서 일단 한번 서울 종로에 사무실이 있으니 들르라고 했다.

사무실에 들러 설명을 듣고 다시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접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뒤로는 그렇게 빗발치던 독촉 전화가 단 한통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신용회복 위원회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신용회복 구제 대상에 들었으니 사무실에 들르라는 내용이었다.

사무실에 가서 간단한 교육도 받고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5년에 걸쳐서 한 달에 18만원씩 국가 신용회복 위원회 통장에 입금하면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알아서 대출금을 갚아나간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회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아무리 전후좌우 사방팔방을 돌아보아도 도저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죽을 고비에서 극적으로 반전의 기회를 얻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은 식당 매출이 10분의 1로 줄어든 것도 죽을 맛인데 손님이 카드로 음식값을 지불하면 결재하는 즉시 카드사니 은행이니 국민연금 공단에서 바로바로 빼가는 바람에 운영자금 한 푼 만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용회복 구제 결정이 되고 나서는 빚 독촉은 물론 결제한 음식값의 단 한 푼도 빠져나가는 일이 없었다.

스님이 다녀간 뒤로 그렇게 그는 다시 살아갈 희망을 품고 힘을 내 영업을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스님이 말했던 2개월이 다가왔다.

스님이 찾아올 당시만 해도 자포자기 심정이었던 신 사장은 이제 한숨 돌리고 나니 그때 일이 생각나서 스님에게 연락을 취해보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스님은 신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 어느 날 갑자기 ‘쨍’하고 나타난 것처럼 떠날 때 역시 명함도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신 사장은 생각지도 않았던 스님을 통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교훈을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깨달았다.

아직도 불황의 터널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다행이 식당 매출도 비수기가 지나면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인간 만사 새홍지마라고 했던가. 힘든 굴곡의 터널을 지난 그의 가게가 호황을 이루는 날 우리나라 경제도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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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 김명수기자 www.peoplekorea.co.kr>  

2009년 03월29일 18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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