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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1) 일상탈출 테마여행
2004/10/09 00:00
입력 조회수 : 659
그곳에 가면 산정호수가 있다.
우리는 지금 산정호수로 가고 있다. 1박2일 워크샵. 주제가 있는 테마 여행이다. 선발대와 본진에 이어 우리가 막차로 출발했다. 2000년 3월3일저녁 8시 본사 출발. 주말엔 말할것도 없이 금요일 오후부터 교통체증이 극심하기로 유명한 코스인데 이날만은 예외였다. 마치 우리가 도로를 전세내기라도 한 듯 전혀 막힘이 없었다.
뻥뚫린 도로위를 바람처럼 질주하니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이 들뜬다. 도착지점까지 가는데 빨라도 서너시간은 예상했는데 2시간도 안걸렸다. 본사~불광동~송추~의정부~포천~운천~문암삼거리를 거쳐 밤9시 50분 현지 산정호수 한화콘도 도착. 참석자 모두 23명. 사장 이사 부장 나를 포함하여 사원들이 총출동을 한셈이다. 이번에 새로 뽑은 경력까지 동참했다.
숙소는 한화콘도. 세미나 룸에 모였다. 자기소개와 포부등을 차례로 돌아가면서 발표했다. 평소에 발견하지 못했던 숨은 재주와 끼가 툭툭 튀어나와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발표자마다 아이디어와 패기가 넘친다.
자리를 옮겨 술과 함께 하는 회식시간. 미리 미리 준비한 고기와 각종 음식 재료들로 푸짐한 성찬이다. 맥주로 시작하여 취기가 돌자 소주로 돌린다. 그다음엔 양주. 양주에 맥주를 탄 폭탄주를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마신다.
폭탄주를 제조하는 사장님의 손놀림이 빠르게 움직인다. 꼬리가 길어 순서가 끝쪽은 술맛다시는 소리가 짭짭. 빨리 먹고 싶어서 자리를 옮기고 싶어하는 주당도 보인다. 취기가 오를데로 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장소를 1층 노래방으로 옮긴다.
신세대들 세상. 부르는 노래마다 처음들어보는 레퍼토리다. 흥얼흥얼 중얼중얼.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수도 이해할수도 없지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넘친다. 서로 마이크 쟁탈전. 기발한 춤도 등장했다. 평소엔 말이 없던 박남주도 활기 넘치는 댄서로 돌변한다. 박남정 닮은 박남주. 배힘을 무기로 내세우는 장원수의 유연한 허리춤이 압권이다. 사장의 신세대노래도 눈길을 끈다. 이 자리를 위해서 미리 미리 연습을 해둔 모양이다.
다시 숙소로 옮겨 술판을 벌인다. 사장과 나를 포함한 쉰세대들은 술자리에서 슬슬 빠져 잠자리 찾기 바쁘다. 누가 뭐라해도 워크샵은 신세대들의 마당이다. 업무에 찌든 스트레스를 단칼에 날려버리기 위해 놀고 즐기라는 멍석을 깔아준 것은 아닌지.
밤이 깊어가면 갈수록 술잔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잠결에 들리는 왁자기껄 소리가 밤새도록 이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니 7시. 가벼운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경관이 너무 아름답다.
우리가 묵은 한화콘도도 깨끗하고 시설도 좋은 편이다. 아침메뉴는 우렁된장과 콩나물국밥. 배가 출출하고 속이 부글부글 하던 터라 하나같이 한그릇 뚝딱 해치운다. 물이 좋아서 음식맛도 좋은 것같다. 아침먹고 서둘러 산행길에 나섰다. 해발 삼사백 미터로 보이는 작은 산들이지만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산행은 명성산코스로 잡았다. 조금 걸어 올라가다 보니 호수가 있다. 말로만 듣던 산정호수다. 나의 예상을 깨고 호수가 산중턱에 있다. 천지나 백록담정도는 아닐지라도 운치가 있다. 제법 큰 줄 알았는데 한눈에 쑥 들어올정도로 아담하고 작은 호수다. 산행대신 호수를 따라 걷는다.
호수 둘레를 따라 걸어서 완주하는데 1시간 30분정도 거리.호수를 끼고 있는 산들이 마치 병풍같다. 여기 저기 서있는 산들의 모습이 앙증맞기 그지 없다. 호수면이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 그런데 참 이해할 수가 없다.
날씨가 따뜻한데 어떻게 저렇게 호수표면 전체가 꽁꽁 얼어붙을수가 있나? 며칠전까지 계속되었던 늦추위 때문이라고 추측은 하지만 서울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진풍경이다. 한강에 살얼음이라도 얼면 뉴스가 되는 그런 삭막한 도심에서 쳇바퀴럼 살아오다보니 그만큼 감정이 무뎌졌는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호숫가를 걷다보니 별별생각이 다 떠오른다. 호수위에서 얼음낚시를 하는 주민들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빙어낚시다. 동네사람들 7∼8명이 모여서 얼음에 구멍을 내고 그속에 낚시를 집어넣어 빙어를 잡고 있다. 산정호수의 명물인 빙어를 잡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낚싯바늘을 집어 넣기만 하면 덥석 덥석 물어댄다. 손가락 만한 작은 고기들이 서로 먼저 물리겠다고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퉈 튀어나오는 것 같다. 연신 빙어가 낚여 올라오니 낚시꾼의 손놀림도 따라서 바빠진다.
한쪽 옆에는 시려운 손을 녹이려 했는지 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불의 열기에 얼음판이 녹아 내리지는 않을까 노파심이 든다. 또다른 옆에는 잡은 빙어를 담아놓은 얼음구덩이가 있다. 어망이 아닌 빙망인셈이다. 속이 투명해 내장까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고기라는 말에 자세히 보았지만 그정도는 아니다.
낚시꾼의 손놀림도 바빠진다. 낚시바늘에 코가 끼여 연신 올라오는 빙어를 보고 있노라니 마치 나도 강태공이 된것같은 착각이 든다. 특이한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낚시에 낚시밥이 없다. 낚시바늘만 있는데도 고기가 올라온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빼놓을수 없는 것은 술.
잡아 올린 고기를 즉석에서 초장에 푹푹 찍어 먹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수함이 엿보인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군침이 돈다. 마치 내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낚시꾼 일행이 내게 젓가락을 건네 주며 먹어보라고 권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초장에 묻혀 꿀꺽 삼켜버렸다. 씹을 것도 없이 저절로 녹아 버린다. 맛이 기가 막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산좋고 공기맑은 이곳 산정호수. 표면이 꽁꽁 얼어붙은 호수위에서 먹는 이 빙어맛이 어떤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보다 더 맛있을 수는 없는 천하제일의 별미가 된다. 비록 손가락 만한 작은 고기지만 통째로 먹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고기의 똥도 오줌도 피도 살도 눈깔도 눈썹도 오장 육부도 모두 버리지 않고 그냥 먹는다. 입에 넣어 몇번 오물거리면 저절로 녹아 버리는 이맛. 그래 바로 이맛이야. 호수위 얼음위에서 먹어본 빙어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고기를 먹어보라고 권한 그 낚시꾼이 계속 자신을 장가보내 달라고 졸라댄다. 사연을 들어보니 차마 발길을 돌릴수 없다. 장가못간 농촌총각들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낀다. 내게 고기를 권해준 총각도 이대로 늙어죽을 수는 없다고 내 소매를 잡고 애원한다.
도대체 워디가 부족해서 장가를 못간단 말이냐며 얼음이 꺼져라 신세한탄을 한다. 내손을 붙잡으며 제발 장가좀 보내 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한다. 차마 외면할수 없어 명함을 주고 연락해 달라고 하니 고맙다며 계속 빙어를 권한다.
덕분에 빙어고기 실컷 먹었다. 초장속에서 펄떡펄떡 뛰는 빙어를 한입에 꿀꺽꿀꺽 삼키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신선이 따로 없고 저렇게 얼음위에서 빙어를 잡으며 소주한잔에 활어를 먹는 저분들이 바로 신선놀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빙어를 권하는 그총각은 아무래도 나이가 많이 들어보여 물어보니 35살이라고 한다. 이름은 조명천. 아니 세상에 이럴수가 다있나. 나는 그 노총각의 나이를 아는 순간 기절할뻔 했다. 외모로 봐선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살은 먹었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나보다 열살이나 적은 35살이라니 너무 당황해서 말이 안나왔다.
왜 저렇게 늙어버렸나 안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저렇게 변해 버렸을까? 사연을 들어보니 기구하다. 지금은 비록 9백만원짜리 전세를 살고 있지만 양봉을 하면서 미래의 꿈을 키워나간다고 한다. 만약 자신에게 여자만 생긴다면 평생 고생 안시키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자신이 있다면서 제발 장가한번 가고 싶은 노총각 소원좀 풀어달라고 애원하고 또 애원한다. 여자 생각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명성산에 오르다 보니 힘은 불끈 불끈 넘쳐나는데 남는 기운 쓸곳 없어 긴긴 밤이 더 길게 느껴져 견딜수 없다고 한숨을 푹 푹 내쉰다.
자신의 처지가 서러운지 얘기중에 눈물을 주루룩 흘린다. 나도 모르게 내눈에서도 이슬이 맺힌다. 아이쿠. 빙어 먹는 재미와 이야기에 빠져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시간을 너무 잡아먹다 보니 일행을 놓쳐버렸다.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함을 건네주었다.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처와 이름을 알려주면 장가갈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말로 노총각을 위로한채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일행을 따라가려고 부지런히 걷다보니 금새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먼저 떠난 일행을 다시 만났다. 나는 일행에게 맛있는 빙어고기를 왜 먹지 않았냐고 물었다.
대답속에 뼈가 있다. 혹시라도 민물인지라 간디스토마가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그말을 듣는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아무려면 그럴리 있겠나 싶어 몇번이고 도리질을 했지만 만에 하나 그럴수도 있겠거니 생각하니 먹은 고기를 도로 물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지난일.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먹으니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콘도에 도착. 길거리 축구로 몸을 푼다. 땀이 쏟아진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현업에 매달리며 살아온 탓에 몸이 약해진 탓이다. 온천물에 몸을 담근다. 유황온천이다. 흐르는 냇물일지라도 두손에 퍼담아 그냥 마셔도 될만큼 깨끗한 이곳. 온천물은 말해 무엇하랴. 뜨끈뜨끈한 온천수가 샤워기를 타고 내몸에 쏟아져 내릴 때 너무 상쾌하다 못해 짜릿한 전율이 흐린다. 유황속에 함유된 특유의 성분 때문에 몸에 닿은 물기가 비눗물처럼 끈적끈적하다. 그러나 신비의 불로장수처럼 온천물에 녹인 내몸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낮열두시. 드디어 일정이 끝났다. 숙소를 출발했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온다. 날씨가 너무 좋다. 꽃샘추위도 모두 퇴각하고 포근하다 못해 더운 느낌이다. 달리는 차밖으로 거니는 행인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성급한 상춘객은 아예 반팔 차림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2시가 조금 넘었다. 별로 막히지도 않고 왔다.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전철을 타고 집에도착하니 오후4시가 다 되어간다. 집에 오니 슬픈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일박이일의 합숙에 들어간 그시간에 친구가 죽었다는 것이다. 세상사 참 알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우울해 졌다. 작년 연말 망년회때 참석하여 즐겁게 놀다간 친구였는데 죽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인명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 실감난다.
벌써 친구 여러명이 세상을 떠났다. 나이 40줄이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인데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으니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릴때 같이 지낸 고향친구였는데 이제는 추억만 남긴채 돌아올수 없는 먼길을 떠났으니 마음이 아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슬픈 일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나마 나를 즐겁게 했던 합숙워크숍이 끝나기도 무섭게 친구의 죽음이라는 비보가 내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주어진 삶에 더욱 충실하고 살아있는 동안에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김명수/
www.pkorea.co.kr
>
2000/05/16 17:05
[
김명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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