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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9) 너희가 계단을 아느냐
2004/10/17 00:00
입력 조회수 : 594
장마철 집중호우로 불어난 급류가 얼마나 무서운지 건너본 사람은 안다. 탁마처럼 흐르는 거센물살에 발을 담그는 순간 생명의 위험을 온몸으로 느낀다.
들어가면 갈수록 물살은 더욱 거세지고 양다리는 후들거린다. 자칫 한발이라도 삐끗하여 중심을 잃으면 곧바로 황천객이 될 수도 있다. 그쯤 되면 아무리 담이 큰 사람이라도 오직 살고 싶은 생각뿐 아무 정신이 없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순간에 징검다리가 있다면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평소엔 무심하다 못해 아예 비켜가는 징검다리가 그럴땐 자신을 지켜주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계단도 마찬가지다. 계단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파른 언덕도 계단이 있으면 평지를 걷는 것처럼 쉽게 오를수 있다.
계단은 지하철 환승역을 연결한 에스컬레이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출근길 전철을 갈아타려는 승객들로 에스컬레이터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고 인파에 떠밀려 에스컬레이터로 빨려들어간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컨베이어벨트 계단이 자동으로 이동하여 무사하게 목표지점으로 데려다 준다.
겨우 두사람이 비켜갈 정도로 비좁은 통로지만 그많은 사람들을 요술처럼 잘도 실어나른다. 바로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수십만명의 유권자를 동원한 대선 유세장보다도 더 복잡한 출근길 전철 환승역. 콩나물시루같이 빽빽한 그곳에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없다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도 힘이 들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에 걸리고 채이고 밟혀서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렇게 인생에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계단도 때로는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가파른 산에 오르다 다리를 다쳤다. 올라갈땐 계단이 있어 그렇게 편하고 좋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려올때는 정반대였다.
발목과 무릎이 아파서 도저히 계단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한발 옮길때마다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나중에는 무릎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장애인이 생각났다. 어쩌다 한번 겪는것도 이렇게 죽을 맛인데 평생을 그런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을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결국은 계단을 포기하고 말았다. 가파른 산비탈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도 계단없는 길로 내려오니 비로소 살것 같았다.
정상인에게는 한없이 편리한 지하철 환승역의 계단도 장애인에게는 걸림돌이 될뿐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들에게 계단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이기적으로 살아온 내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작아짐을 느낀다.
김명수
2000/04/12 16:04
[
김명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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