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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젖어있는 열한 개의 소품] 이야기 하나 (4)
2005/04/27 00:00
입력 조회수 : 617
◇까만색 반부츠-누군가를 대신한 사랑 (4)
사장님께 당신에 대한 말을 들은 이후 당신과 몇 차례나 마주쳤지만, 저는 그냥 가벼운 목례만 하고는 쫓기듯 자리를 피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꼬인 부분이 있으면 마음 속으로 꿍하고 있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풀어버리기를 좋아하는 제 성격답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항상 매고 다니시던 그 넥타이의 장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만나면 이상하게도 연두색 바탕에 선명한 장미의 모습이 먼저 눈을 파고들었으니 말입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넥타이에 신경 쓰지 말고 얼굴을 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막상 당신을 만나면 시선은 어느새 넥타이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애처롭게 서 있는 까만 줄기에 못다 핀 꽃망울을 드리우고, 곧 떨어질 듯한 잎새 하나를 매달고 있는 그 모습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날 나눈 대화가 떠오르면...
지난해 여름에 아내가 결혼 십 주년 선물로 만들어 준겁니다.
솜씨가 뛰어나신 분이네요. 저는 엄두도 못 낼 일인데...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넥타이에요. 그렇긴 한데 가끔 가슴이 아픈 게 탈입니다. 가시가 자꾸 찔러서 말입니다.
줄기에 비해 가시가 날카로운 걸 보니 그럴 것도 같네요.
장미의 검은 가시가 찌르는 것인지 바보 같았던 제 말이 가시가 되어 찌르는 것인지 찌르르한 통증이 가슴을 타고 번져 나갑니다.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지낸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급한 결재 때문에 사장실로 향하던 저는 문을 열고 나오는 당신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아... 안녕... 하세요...
머뭇거리는 제 인사말 위로 당신은 언제나처럼 서글서글한 미소를 던져 주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이주연씨. 네...
마력에 이끌리듯 넥타이 속 장미에 고정되려는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사장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제 어깨 위로 당신의 목소리가 얹혀졌습니다.
주연 씨는 항상 바쁘시군요.
우뚝!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어졌습니다. 상대를 부를 때 성을 빼는 것이 조금 더 정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오랜 친구가 시간 없음을 책망하는 듯한 어투 때문이었을까요? 당신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그것은 단순한 정감 이상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약간 놀란 감정을 담아 돌아보는 제 시선이 처음으로 당신의 얼굴에 고정되었습니다. 넥타이 속의 장미가 완전히 잊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만큼은 당신의 서글서글한 미소가 먼저 제 눈을 차지했습니다. 그러자 저절로 말문이 열렸습니다.
죄송해요. 괜히 저 혼자만 바쁜 척하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어떻게... 회사 분위기는 적응이 잘 되시나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말이란 참 묘한 부분이 있지요. 이미 만나고 있으면서 한 번 만나고 싶었다니... 물론 그 말이 따로 시간을 내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잠시 당황했었다는 뜻이지요.
타 부서장들과는 간단히 식사 할 시간을 한 번씩 가졌는데 주연씨와는 아직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점심이든 저녁이든 좋으니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을 내 주시죠. 저는 향후 일주일 내에 잡혀 있는 스케줄이 없으니까 주연씨 편하신 날로 정하면 맞추겠습니다.
오늘 저녁이라도 괜찮습니다만...
장소는 제가 정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럼 오늘 저녁은 예약 된 겁니다.
시간을 비워두겠습니다.
그때 활짝 웃으며 돌아서는 당신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서글서글한 이면에 항상 존재하던 우울한 그늘마저 잠시 지워진 듯한 미소였기 때문입니다.
백산
[
피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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