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 2025.04.06.18:26 |
[클릭이사람] (337) 국내 록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전인권

전 인권. 이름 석 자 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한국 록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걸출한 4명의 싱어송 라이터들이 1982년 결성한 들국화의 리드보컬로 1985년 한국음반사에 빛나는 들국화 1집을 발매하여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80만장 판매라는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한국 록의 전성기를 몰고 온 바로 그 유명한 전인권이다.

1980년대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을 비롯해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 수록곡 모두 히트하여 라디오 전파를 휩쓸고 들국화와 함께 하는 폭발적 무대는 완벽에 가까운 창작력과 연주력으로 한국의 비틀즈라는 찬사가 붙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들국화 멤버 자신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열렬한 반응은 이후 가는 곳마다 젊은이들의 환호 로 이어졌다.

타고난 보컬 전인권의 허스키하면서도 폭발력 있는 보이스와 최성원, 허성욱, 주찬권 등  멤버 구성원 특유의 개성을 맘껏 발휘하며 한국 대중음악계에 강렬한 획을 그은 그들이 남긴 음반은 최고의 명반에 오르며 오늘도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이 되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들국화 1집은 가요 평론가들이 선정한 한국대중음반 100대 명반 순위 1위에 꼽히는 영광도 함께 얻는다.

1998년 음악전문잡지 서브(SUB) 12월호에 국내 대중 음악사를 빛낸 음반으로 선정된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 중에서도 전체 1위에 들국화 1집이 뽑혔다.

전인권은 허스키하면서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필 하나만으로 공연장 분위기를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다.

가슴깊이 파고드는 목소리로 수많은 히트곡과 화제를 몰고온 그는 이제 록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들국화의 보컬리스트로서 카리스마적 보컬을 선보인 전인권은 1988년 솔로 음반에서 진짜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다.

전인권 불후의 걸작 ‘돌고 돌고 돌고’와 ‘돛배를 찾아서’가 수록된 '전인권 1집' 앨범은 마치 그의 일인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는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2집 이후 14년이 흐른 뒤 '전인권 3집' 이 나오고 그만이 가지고 있는 깊은 목소리로 온몸의 세포를 자극해 소름 돋게 만드는 노래들이 담겨 있는 4집 앨범을 가지고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4집 앨범 타이틀은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 그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사랑한 후에'를 강렬한 록 버전으로 새로 편곡한 '사랑한 후에 2004' 등 전인권 특유의 사자후 같은 창법이 담겨있다.

타이틀곡은 '걱정말아요 그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으면서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가사가 슬프고 슬프면서도 다시 주먹 쥐고 힘을 내게 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타협과 억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와 희망을 부르짖은 록의 신화 전인권의 에너지는 콘서트 현장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공연장에서 만나는 전인권은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음악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특이한 외모와 독창적인 가창력으로 20대에서 40대까지 폭넓은 관객과 마니아층을 가진 그는 지금 제 5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산에서 노래하고 연습하고 지금도 산에서 살고 있는 산사나이. 서울 인왕산 도렴동이 본적으로 현재 북악산 삼청동에 집이 있다.

3형제 중 막내로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한 그는 언더그라운드 음악활동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무대에서 관객과 분위기가 일치하고 연습한대로 소리가 잘 나올 때 신이 난다는 그는 인간답게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만해도 월트 디즈니 만화를 그리고 싶을 정도로 그림이 취미였고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둘째 형의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19살 때 작은 형님이 ‘넌 가수가 돼라. 그러면 가수가 될 때까지 10년을 먹여 주겠다.’고 했어요. 작은형님과 둘이 듀엣으로 기타 치면서 에브리 브라더스의 바이바이러브(Bye Bye Love) 등을 곧잘 부르곤 했거든요.”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던 당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던 참에 음악에 소질이 있으니 그길로 가라는 작은 형의 말 한마디가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게다가 목소리 좋은 큰 형이 방송 일을 했던 것도 의지가 됐다.

“방송 연출하시던 큰형님을 친구들에게 감독이라고 자랑하던 기억이 나네요.”

대표적인 싱어송 라이터 전인권은 대중음악이야말로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타이밍을 잡을 때까지는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이 아플 때나 시련이 닥칠 때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갑자기 뇌리에 이거다 하고 필(영감)이 꼽히는 순간 작사 작곡이 동시에 나와요.”

지난여름 서울 대학로 콘서트에서 부른 노래 ‘나는 찌그러지지 않는다’는 공연 하루 전에 만들었다고 한다.

스스로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심이 강하고 좋은 성격이라면서 후배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솔직하면서도 군중속의 고독과도 같은 외로움을 타는 듯했다.

“인기 절정일 때도 노래를 못하는 것 같고 내가 가진 능력보다 더 사랑받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많이 힘들었어요.”

반대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노래가 시원하게 잘 나오고 그것을 공연장의 팬들이 느끼고 이해할 때라고 한다.

“아무래도 세계적인 록이니까 서양가수들 만큼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기분이 좋죠.”

전인권은 록가수도 자기관리를 잘하면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을 통해 입증해 보여주고 있다.

“옛날에는 솔직히 록의 수명 단축이 걱정됐어요. 그래서 40살이 되어도 지금의 목소리가 록에 어울릴지 팬들에게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50대가 되니까 그런 걱정을 털었어요. 열심히 하면 끝까지 갈수 있다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실전보다 더한 연습. 그는 관객 앞에서 실제로 공연할 때 보다 연습할 때 더 열심히 하는 가수로 알려져 있다. 실전보다 더 열심히 연습을 한다는 말이 의외였다.

“연습은 목이 쉬어도 상관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너무 무리를 해서 공연을 앞두고 목이 쉴 때가 많아요. 하지만 막상 무대에 들어가면 관객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강한 에너지가 솟아나지요.”

그는 요즘 신바람이 났다. 자신과 음악적 코드가 딱 맞는 새 멤버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마침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날 밤 합류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인데 베이스기타를 맡게 될 거구요. 호흡이 워낙 잘 맞고 정신적인 교감이 잘되는 친구라서 앞으로 같이 지내면서 새로운 음악세계를 만들어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많이 기대가 되고 설레네요. 록밴드와 함께 죽을 때까지 같이 갈 겁니다.”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그는 등산도 좋아해서 하루에 길면 3시간씩 산을 타기도 한다.

“옛날에는 거의 매일 산에 올랐어요. 산 탈 때는 산에만 집중하는 성격이거든요.”

술은 상황에 따라 아주 못 마신다, 잘 마신다, 끝이 없다고 대답을 한다. 말을 계속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업소공연을 할 때는 술을 마시고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업소에서는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모두 술을 마시는 분위기라서 술을 마시면 마음이 편해지고 리듬이 잘 잡히고 노래도 잘 나오고 부담이 덜할 뿐만 아니라 기분 또한 업이 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단독콘서트 할 때는 한모금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알고 보면 업소에서 술을 마시고 공연을 하는 것이나, 단독콘서트에서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것도 결국 노래를 잘하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이에는 이’식으로 감기에 걸리거나 목이 쉬어도 연습으로 극복한다. 자나 깨나 연습만이 최선이라는 말이다.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목이 쉬어도 밤새 노래해서 풀고 잤다고 한다.

“옛날에는 소리만 잘나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소리 지르는 거에 전념했어요. 요즘은 그게 되니까 다른 모자라는 부분, 괴롭혔던 것들을 해결해나갑니다. 정확한 박자를 탄다거나 그런 것들이 내공이 되려고 하네요. 내가 만족하고 서로 좋으려면 제소리가 좋아야 되고…”

라이브 가수들이 소극장을 찾는 것은 왜일까. 전인권을 만나면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소극장은 답답하면서도 재밌어요. 장소가 좁으면 좁은 대로 그 특징이 있거든요. 소극장 공연도 나름대로 긴장이 엄청 됩니다.”

너무 솔직한 성격. 지금까지 살면서 너무 솔직해서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사생활 별로 신경 안 써요. 소리가 걱정이죠. 노래만 신경 써요.”

선글라스를 줄기차게 끼는 것도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역시 그 다운 대답이다.

“선글라스로 보는 세상이 어두운 것도 재밌어요. 3개월 후에 선글라스 벗고 노래하겠다고 한 적도 있는데 음악이 잘되면 벗을 수도 있겠죠. 연예인으로써 내가 좋게 보이고 내가 장점이면…” 무심히 툭 던지는 말 같지만 말속에 뼈가 들어있다. 그러면서 안경을 살짝 벗어 얼굴을 드러내는 센스를 보여준다.

검은 머리 사이사이로 희끗희끗 흰머리에 흰 수염이 그의 캐릭터를 더욱 강하게 한다. 장발에 검은 선글라스는 이제 그의 독특한 트레이드마크가 된지 이미 오래 되었다.

요즘 그는 진주 광주 등 지방 원정을 많이 다닌다. 오리지널 서울 토박이지만 음악활동은 전국 어디라도 안 가린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집도 시골이거든요.” 서울의 산기슭에 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록 가수는 노래할 때나 말할 때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그는 어떤지 궁금했다. 

“저는 말할 때나 노래 할 때나 목소리 같은 게 좋아요. 자연스러운 게 좋거든요.”

가성을 안낸다는 소리다. 록가수로서 그가 장수하는 비결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노하우를 알려준다.

“고개를 쳐들고 노래하면 느낌이 노래가 잘 되는 것 같아요. 노래 들어가기 전에 소리 크게 악 지르고 잘된 팝송 듣고 카피하면서 훈련하고 하다가 잘 안되면 소리 막 지르죠.”

자신이 만든 노래인 만큼 모든 곡이 특별하고 소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에 담아 두고 있는 곡으로 ‘사랑한 후에’를 꼽는다.

“곡은 제곡이 아니고 작사만 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년간 허무주의에 푹 빠졌어요. 그걸 극복하고 일어선 후에 가사를 만들어서 그런지 애착이 많이 가는 노래입니다.”

그는 2005년 자신의 이름이 저자로 붙은 책도 펴냈다. 제목은 ‘걱정 말아요 그대.’ 열광과 논란의 중심에 있어온 그의 삶과 음악의 토양을 되돌아보면서 70~80년대 대중음악사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함께 그가 작사한 가사들, 틈틈이 기록해 왔던 시와 단상들을 함께 기록했다.

1979년 '맴도는 얼굴'을 발표하며 시작된 그의 음악인생은 올해로 27년이 되었다. 들국화의 해체 이후 몇 차례 마약 복용과 연루 되면서 한동안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젊은 여배우와 사랑했다고 고백하면서 2005년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되기도 했던 그는 여전히 왕성한 음악 활동을 통해 건재함을 보여 주고 있다.

“5집이 나오는 내년에는 더욱  바빠질 것 같아요. 5집은 100% 자작곡으로 신곡들만 담으려고 해요.”

서울 삼청각에서 오후 1시에 만나 4시30분이 되도록 무려 3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제 됐나요?”라는 말을 던지면서 인터뷰가 끝났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만 자리에서 일어난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진다.

“앞으로도 록은 쉽게 사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 말속에 살아있는 록 음악의 전설 전인권의 자신감이 들어있다. 그의 록음악 행진은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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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eoplekorea.co.kr>

2006년 12월17일 15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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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종운기자>  

[ 김명수기자 people365@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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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10년 2월 22일 Copyright ⓒ 2009 피플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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